호텔에게 ‘성역’이란 단어가 과하게 느껴진다면, 샹그릴라 싱가포르의 가치를 누려 볼 때다.
A tropical sanctuary in the heart of the city
샹그릴라 생츄어리
샹그릴라 싱가포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 ‘생츄어리(sanctuary)’. 라틴어 ‘상투아리움(sanctu-arium)’에서 파생된 단어로, 캐주얼하게는 안식처이자 피난처로 해석된다. 그러나 좀 더 딥한 의미로는 성소(聖所) 또는 성역(聖域)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이자, 신의 구원과 영광이 나타나는 곳. 타인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공간. 샹그릴라 싱가포르가 호텔 홈페이지 소개글에 하필 이 단어를 거듭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제임스 힐튼은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샹그릴라(Shangri-La)라는 가상의 낙원을 등장시켰다. 외부로부터 단절되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히말라야의 유토피아. 호텔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 이 대목을 보면 이들이 어떤 철학으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여행자들에게 진정한 파라다이스가 되어 줄 수 있는 호텔. 바깥의 소란은 차단되고, 평안을 축복처럼 누릴 수 있는 곳. 그러니까, 그들이 표방하는 건 결국 ‘성역’ 같은 호텔이다. 그렇다면 샹그릴라 싱가포르는 과연 그런가.
호텔은 오차드 로드에서 도보 15분 거리다. MRT역과도 근접해 마음만 먹으면 금세 화려한 쇼핑거리로 나설 수 있지만, 완전한 도심으로부터는 묘하게 빗겨나 있다. 분명 사방이 도신데 외딴 섬에 떨어진 기분. 6만 평방미터 이상 규모의 열대 정원 속, 샹그릴라 싱가포르는 뿌리내렸다. 수년에 걸쳐 수집된 13만3,000종 이상의 관상용 나무와 식물, 꽃들이 곳곳에서 싱그러운 숨을 내쉰다. 인간을 넘어 모든 생명체가 무언가의 가호 아래 안전히 보호받고 있는 분위기다. ‘보호 구역’은 생츄어리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이기도 하다.
건물은 타워 윙, 가든 윙, 밸리 윙으로 나뉜다. 윙별로 특징이 너무나 뚜렷해 마치 3개의 다른 영토가 하나의 왕국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먼저, 타워 윙은 모던함을 담당한다. 도심 속 초고층 호텔로, 국제 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정장 입은 이들이 명찰을 목에 걸고 비즈니스 미팅을 하는 건 타워 윙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가든 윙은 녹지를 곁들인 휴양 리조트 분위기다. 폭포, 연못, 잘 조경된 정원이 가든 윙을 감싼다. 가든 윙의 하이라이트인 행잉 가든(Hanging Gardens)은 천장이 뻥 뚫려 있다. 가든 웨스트 트레일(Garden West Trail)을 따라 무성한 녹지를 거닐다 보면 잠깐 시공간을 잊게 된다. 별안간 도시는 사라지고,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여름 햇살과 초록빛 식물 가운데 덩그러니 선 나 자신만이 남게 된다. 어떤 호텔의 의도는 이렇게나 무구하다.
마지막으로, 밸리 윙은 3개의 윙 중 가장 독립성이 짙다. 데시벨부터 다르다. 타워 윙에서 연결 통로 하나만 건넜을 뿐인데, 활기참과 북적임 대신 고요함이 흐른다. 별도의 출입문과 조식 공간, 전용 라운지는 단순한 프라이빗함 그 이상이다. 대성당처럼 높은 층고의 로비와 반짝이는 샹들리에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애프터 눈 티, 칵테일, 이브닝 카나페가 무료고 버틀러 서비스도 제공된다. 하루아침에 급하게 쌓아 올린 유행 같은 품격이 아니다. 오랜 시간 숙성된 와인처럼, 진하고 깊은 클래식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정상들 또는 비즈니스 리더들이 그들의 안식처로 이곳, 밸리 윙을 택하는 이유다.
샹그릴라 싱가포르의 설립 단계에서 관계자들의 콘셉트 회의록에는 ‘도심’, ‘자연’, ‘휴양’과 같은 단어들이 휘갈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 단어들이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 결국 조화롭게 결합되었고, 개중 가장 최고의 것들만을 솎아 내어 그들만의 독창적인 낙원을 도모한 게 지금의 샹그릴라이리라. 자신의 여행을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여행자는 이 성역에 들어설 수 있다. 그 무결한 파라다이스에서 몸을 뉘인 채, 거룩한 휴식을 온전히 누리면서. 이제 나는 샹그릴라 싱가포르가 걸친 수많은 수식어들 중 ‘성역’이야말로 가장 그에게 어울리는 옷임을 확신한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샹그릴라 싱가포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