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브에서 서비스하는 스팀은 사실상 PC 게임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유통 플랫폼입니다.
2003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스팀은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자의 전자장치에 넣을 수 있는 'ESD'(Electronic Software Distribution) 기술을 활용해 PC 플랫폼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실제로 스팀은 전세계 PC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게임을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이기도 하고, "PC로 게임을 내고 싶어! = 스팀 출시"라는 것이 당연해 질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스팀의 매력을 높여주는 요소는 또 있습니다. 바로 ‘세일’(Sale) 즉 할인이죠. 스팀 페이지를 가보시면 언제나 할인이 진행 중입니다. 그것도 24시간, 연중무휴 365일 내내 진행 중인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스팀 할인은 여름, 겨울 등 시즌에 맞춰 70~80%에 이르는 대규모 할인은 심심찮게 진행되고, 이제 막 출시된 게임도 10%~20% 할인한다는 문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스팀은 게임을 유통하는 플랫폼이지,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할인판매를 하면 그만큼 기업은 손해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스팀은 이렇게 365일 할인을 진행할 수 있고, 기업들은 이 할인에 참여하는 걸까요?
[할인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스팀의 ‘세일 Magic’]
물건을 팔 때 기존 가격보다 낮춰서 판매하는 할인은 상업이 등장한 이후부터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유서 깊은 판매 방식입니다. 다만 이 할인을 너무 자주 진행한다면 제품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어 아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죠.
이 점에서 스팀은 엄청난 강점이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ESD' 서비스 플랫폼인 만큼 게임 패키지 같은 부속물 생산 비용이나 게임 유통 비용이 발생하지 않아서 추가 판매에 별다른 비용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개발사 역시 스팀에 사용되는 ‘스팀 CD 키’를 새로 발급하면 그만입니다.
더욱이 스팀의 세일은 즉각적인 판매 증가로도 이어집니다. 벨브는 이 할인 효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요. 2009년 벨브의 창립자인 게이브 뉴웰은 한 발표에서 스팀 할인의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바로 스팀이 10% 할인을 진행할 때 매출의 35%가 증가하고, 50%는 320% 이상, 75% 세일을 진행하면 매출이 1,470% 증가한다는 것이었죠. 실제로 50% 할인을 진행한 ‘레프트4 데드’는 판매량이 3,000% 이상 증가할 정도로, 스팀 할인 정책은 매출 상승에 큰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할인이 매출에 즉각 반영되니 개발사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기존 가격보다 낮게 판매하기는 하지만, 5만 원에 하나를 파는 것보다 3만 원에 3~4개를 파는 것이 더 이익이 크니까요.
게임의 특성 역시 고려해야 하는데요. 많은 분이 아시겠지만, 아무리 기대작이라고 한들 게임은 3~4개월이 지나면 판매량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판매량이 적어질 때 진행하는 할인은 게임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이용자에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추가 고객을 유치하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더욱이 요즘 게임은 몇백억은 우습게 들어갑니다. 2025년 출시를 앞둔 ‘GTA 6’만 해도 제작비만 약 2조가 넘게 투자됐고, 현재 ‘AA’급으로 구분되는 대작 게임들 역시 수천억 달러 이상이 투자되는데, 이 비용을 바로 회수할 수 있는 게임은 손에 꼽죠.
이에 할인과 지속적인 프로모션은 꾸준히 게임을 판매하여 투자 비용을 안정적으로 회수하고, 주기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으로도 이어집니다.
[심리학까지 동원된 스팀 할인의 경제학]
물론, 할인이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장기적인 할인 전략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는 있겠지만, 이 할인이 계속되다 보면 원래 가격 즉 ‘정가’가 너무 비싸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게 되거든요. “기다리면 할인하는데 왜 저 돈 주고 게임 삼?”이라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 겁니다.
이 현상을 스팀은 다양한 할인 형태로 극복했습니다. 바로 할인판매 기간을 정해놓는 겁니다. 스팀을 살펴보면, ‘여름 특집’, ‘연말 특집’ 얼리엑세스(앞서 해보기) 할인부터 온갖 다양한 할인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기간 한정으로 진행됩니다. 이 기간 이후에는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죠.
왜 이렇게 할까요? 바로수요와 공급의 심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심리학 실험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1975년 진행한 ‘수요와 공급’에 관한 심리학 실험입니다.
이 실험에서는 소비자 제품 설문조사인 척하면서, 사람들에게 두 병 중 하나에서 초콜릿칩 쿠키를 제공했습니다. 하나에는 쿠키가 많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몇 개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빈 병에 담긴 쿠키가 더 맛있고, 더 비싼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두 병 모두 같은 회사의 같은 제품의 쿠키였는데도 말이죠.
이처럼 수요와 공급은 물건 가치 평가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일정 기간 진행되는 할인은 대중들에게 한정된 기회로 인식되고, 이는 게임의 구매 욕구가 높아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죠.
한마디로“이 게임 OO이 하는 거 재밌게 봤는데 70%나 할인하네? 이왕 할인하는 김에 한 번 해볼까?”라는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증명하냐고요? 여러분의 스팀 계정에 게임을 구매하고도 설치조차 하지 않는 게임이 수두룩하고, 이 게임 리스트 중 엔딩을 본 게임은 더더욱 드물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여기에 스팀은 특정 기간 할인 이외에 ‘프랜차이즈’, ‘개발사’ 등 다양한 형태의 할인도 함께 진행합니다. ‘프랜차이즈 할인’은 수십 년간 발매된 시리즈 전체를 게임 하나 가격에 구매할 수도 있고, ‘개발사 할인’은 특정 개발사에서 제작한 게임 수십 개가 일제히 할인에 들어가죠.
이중 ‘프랜차이즈 할인’의 경우 시리즈 중 몇몇 작품만 해본 이용자에게 시리즈 전체를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용자가 입문하는 좋은 계기로 작용합니다. 이를 통해 시리즈의 매력을 알게 된 이용자는 추후 출시되는 프랜차이즈 신작의 신규 고객이 될 확률이 높아지게 되니 개발사도 좋고, 스팀은 새로운 물건을 팔 수 있으니 더더욱 좋죠.
이처럼 스팀은 치밀한 계획과 개발사와의 요구(Needs)가 일치하여 진행되는 이 무시무시한 할인을 통해 게임 판매량을 높이고, 꾸준히 이용자를 유입시키는 전략을 펼쳤고, 그 결과 전세계 PC 플랫폼을 사실상 독점하는 중입니다.
물론, 스팀 플랫폼의 수수료가 매출의 30%(1천만 달러 이상 25%, 5천만 달러 이상은 20%)에 육박하는 만큼, 할인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많은 이용자가 찾는 플랫폼이기에 현재까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한국 게임들도 글로벌 진출을 위해 스팀 플랫폼 진출을 더욱 활발히 진행하는 중인데요.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내디딘 이 한국의 스팀 출시 게임들이 어떤 할인 정책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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