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F80은 모든 면에서 정확했고 적확했다. ‘정확’과 ‘적확’은 비슷한 뜻을 갖는 단어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페라리 F80에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일단 정확하다는 뜻은 페라리 슈퍼카 계보의 정통성을 회복했다는 뜻이다. 페라리가 약 10년마다 출시하는 슈퍼카의 의의는 브랜드 위상의 확인이다.
그 위상 확인의 수단은 ‘페라리는 F1에 참가하기 위하여 차를 판매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는 레이싱 테크놀로지이다. 그리고 그 레이싱 테크놀로지는 모델이 발표되는 그 10년의 핵심적 기술 요소에 집중된다. 즉, 페라리의 최첨단 레이싱 테크놀로지의 집대성으로 페라리 브랜드의 위상을 확고하게 만드는 과정이 10년 주기 슈퍼카의 출시라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페라리 F80은 정확하다. F80은 포뮬러 1의 기술과 트렌드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 가지 측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는 공기 역학, 두번째는 전동화 파워트레인, 세번째는 제작 기술이다.
첫번째 공기 역학적 성능. F80의 탁월한 주행 성능은 시속 250 km에서 무려 1050 kg의 다운포스를 만들어 내는 최고의 에어로다이내믹 기술로 완성된다. 이 중에서도 단연 눈에 먼저 띄는 것은 차체 뒷부분의 거대한 액티브 윙으로 대표되는 어댑티브 에어로 시스템일 것이다. 액티브 리어 윙은 차량의 주행 정보를 바탕으로 자동 조절된다. 심지어는 액티브 서스펜션 조차도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의 에어로다이내믹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위하여 적용되었다는 프레젠테이션 내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공기 역학적 설계의 핵심은 F80의 차체 형상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Form follows function.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유명한 디자인 격언이 그대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나. F80을 처음 만났을 때 여늬 슈퍼카를 만났을 때의 가슴이 뛰는 흥분보다는 철저하게 계산된 머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머릿속의 분석이 나를 오히려 차분하게 만들었었다. F80의 정공법은 차체 자체가 다운포스를 추구하는 쐐기형 실루엣을 사용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콕핏 둘레의 헝클어진 공기를 깔끔하게 뒤로 배출시키는 나카 벤트 (NACA vent)도 항공기 공기 역학을 적용한 레이싱 카의 정통 해법 가운데 하나다. 차 바닥에서도 레이싱 머신의 공력설계가 발견된다. 높이에 변화가 있는 플로어 팬은 압력 변화를 통하여 다운포스를 강화하고 499P 내구레이서에서 영감을 받은 블로워 슬롯은 적극적으로 바닥의 유동 경로를 유도한다.
두번째 하이브리드 전동화 파워트레인은 정확하게 레이싱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다. 실제로 F163CF 120도 V6 3.0 터보 엔진은 내구레이스 우승 머신인 499P와 레이아웃을 비롯하여 주요 부품들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앞차축에 2개, 뒷차축에 1개 장착되는 전기 모터는 F1의 MGU-K 유닛에서 설계 사상 및 소재를 가져왔다. 그리고 48볼트 시스템으로 구동되는 e-터보 역시 F1의 MGU-H와 동일한 기능을 발휘한다. 즉, 에너지 회생 시스템의 구성이 F1 머신과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브랜드들이 전동화 기술이 적용된 슈퍼카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적극 채용하는 것에 비하여 페라리는 F80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선택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성능이다. 즉, 페라리는 F80이 시내에서 엔진을 끄고 ‘조용히 달릴 수도 있는’ 것보다 가볍고 강력한 궁극의 슈퍼카가 되길 원했다. 그것이 레이싱 스피릿이기 때문이다. 9200rpm까지 회전할 수 있는 터보 엔진이 리터 당 300마력, 최고 출력 900마력을 발휘하는 것, 무려 30,000rpm까지 회전할 수 있는 전기 파워트레인을 포함한 시스템 출력이 페라리 사상 최고인 1200마력을 발휘하는 것은 이와 같은 과정의 결과일 뿐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제작 기술이다. 나는 F80 안티프리마 행사에서 전시되었던 F80 완성차보다 함께 전시되었던 샤시 모델에 더 매료되었었다. 페라리는 전통적으로 알루미늄을 잘 다루는 브랜드였다. 실제로 경쟁사들은 카본 복합 소재로만 가능한 경량화와 차체 강성을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으로도 거뜬하게 실현하는 실력을 갖고 있다. 경량 카본 소재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F80의 차체는 카본 파이버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콕핏, 그리고 그 앞뒤에 연결되는 알루미늄 서브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하이브리드 구조다. 이것은 강성과 진동 흡수력 등 소재의 장점을 잘 조합한 케이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론트 서브 프레임의 비어 있는 내부를 브레이크 냉각용 에어 채널로 사용하는 효율적 설계였다.
F80의 만듦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가지는 현재의 최고와 미래의 기술이 결합된 서스펜션 구조, 그리고 고전압 케이블이었다. F80 서스펜션의 어퍼 암은 3D 프린터로 제작된다. 그래서 프론트 서스펜션은 조류의 골격처럼 매끄럽고 속이 빈 공기역학적 형상을, 리어 서스펜션은 곤충의 구조처럼 독특한 형상을 띄고 있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설계된 이상적인 구조를 3D 프린터로 완성한 것. 이에 비하여 로워 암은 알루미늄 절삭 부품이다. 페트롤헤드, 모터사이클리스트들에게 절삭 부품은 일종의 종교다. 견고함은 물론 광택이 나는 표면의 절삭 흔적까지도 고품질 부품의 일종의 훈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서스펜션 앞에서만 10분 이상 서 있었다. 황홀했다. 이런 것이 페라리 슈퍼카의 상징이라는 직관적 공감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F80은 12볼트 – 48볼트 – 800볼트 시스템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분명 48볼트 시스템이라고 알고 있었던 액티브 서스펜션과 e-터보에 오랜지색 고전압 케이블이 사용되었던 것. 고전압 케이블에 새겨져 있는 스펙을 확인하니 무려 직류 1000볼트까지 허용하는 ‘과잉살상용’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아서 주변에 있던 페라리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그도 정확하게 모르는 듯, 이 시스템을 개발한 엔지니어에게 곧바로 전화를 건다. 대답은 또렷했다. ‘시스템은 48볼트 시스템이다. 하지만 고부하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60볼트를 넘을 때가 있다. 그래서 고전압 법규에 적합한 고전압 케이블을 사용했다.’ 명료한 설명이었다. 그리고 딜러들에게 고전압 취급에 대한 교육도 뒤따를 계획이라고 덧붙인다. 확실하다.
자, 그렇다면 ‘적확’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름과 형상으로 표현되는 부분이다. 일단 이름이 F80이다. F40부터 F50까지 이어졌던 10년 주기의 페라리 슈퍼카의 계보는 그 뒤에도 이어졌지만 그 이름에서 다소의 변화가 발생했었다. 창업자 엔초를 기렸던 엔초 페라리, 그리고 아예 ‘나는 페라리의 정수(pinnacle)’라는 뜻의 라 페라리는 이름을 선택했었던 것. 브랜드의 시발점으로 되돌아가 정신을 기린다는 점, 그리고 페라리라는 브랜드의 파워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페라리는 F80으로 다시 헤리티지의 연속성을 선택했다. 엔초 페라리와 라 페라리도 실질적으로는 F60과 F70의 자리를 부여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이름은 제자리로 되돌리면서 기존의 모델들도 계보에서 소외되지 않는 효과적인 정리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적확함을 느낀 두번째는 디자인이다. 안티프리마 사전 공개 현장과 이후 온라인에서 보여진 F80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어디서 본 듯한, 그리고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이 깨진 것은 288GTO부터 라 페라리까지 나란히 전시되었던 행사장 전실 공간을 다시 본 순간이었다.
그것은 바로 노즈의 높이였다.
페라리 슈퍼카들을 따로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점이었다. F40부터 엔초 페라리까지는 낮은 노즈와 쐐기형 차체 실루엣으로 낮게 웅크린 레이싱 카의 공력 설계였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라 페라리는 액티브 에어로다이나믹 기술이 적용되어서 여유가 생겼는지 노즈의 높이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래서 레이싱 카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다른 페라리 슈퍼카에 비하여 라 페라리는 로드용 스포츠 카의 최상위인 하이퍼 카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전 세대 페라리 슈퍼카의 레이싱 카 실루엣을 F80이 다시 가져온 것이었다.
이와 같은 F80의 정확함과 적확함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지함이다. 라 페라리와 F80 사이에 페라리, 그리고 자동차 산업은 커다란 변화를 겪었고 겪고 있다. 라 페라리 출시 당시에는 피아트 그룹의 가족이었지만 2014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의 스핀 오프를 거치면서 현재의 페라리는 독자적인 회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이전에는 7000대로 자율 제한했던 연간 판매량을 이제는 1만대 규모로 늘리면서 회사의 매출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그 대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더욱 또렷하게 할 필요가 생긴 것. 따라서 브렌드의 헤일로 모델인 슈퍼카는 보다 명료한 정체성을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느낀 진지함은 ‘멋 내지 않음’이었다. 최근 럭셔리 브랜드들은 영&리치 혹은 컬렉션 시장을 노린 럭셔리 이미지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오랜만에 방문한 페라리 본사와 컬렉션 샵도 이전보다 확연히 고급스럽고 화려하게 단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F80은 멋을 내기 보다는 본질에 집중한 모습에서 자동차 산업의 전환기에 진지하게 대응하는 브랜드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F80은 페라리 슈퍼카이자 아이콘이다. 그리고 자동차 시대의 전환기를 기념하는 이정표다. 799명의 고객이 부럽다. 우리 나라에도 몇 분이 계시다는데…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c) 글로벌오토뉴스(www.global-auto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