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세대 골프가 국내에서 시판되기 시작한 것이 2020년부터였으니 벌써 4년째입니다. 시간이 참 빠릅니다. 물론 아직 9세대 모델이 나오려면 2년쯤 더 있어야겠지만, 우연히 거리에서 검정색 골프가 지나가는 걸 보면서 8세대의 변화를 정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1974년형 모델로 나온 1세대 골프는 거장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jiaro; 1938~)에 의해 디자인됐습니다. 앞 바퀴 굴림 방식의 해치백 소형 승용차로 나왔는데요, 아마도 이 앞 바퀴 굴림 플랫폼이 폭스바겐이 개발한 첫 앞 바퀴 굴림 방식 구조였을 것입니다.

클래식 비틀이 엔진을 차체 뒤에 탑재한 후륜 구동 방식 이었다는 점에서 1세대 골프의 앞 엔진 탑재의 앞 바퀴 굴림 방식은 클래식 비틀과는 완전한 반대 개념의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999년에 등장했던 뉴 비틀은 4세대 골프를 바탕으로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러므로 클래식 비틀과 뉴 비틀은 정반대의 구조이긴 합니다.
앞 바퀴 굴림 방식은 1960년대부터 유럽에서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일찍이 1930년대에 시트로앵이 트락송 아방(Traction Avant)으로 처음 앞 바퀴 굴림 방식을 내놓았습니다만, 그건 후륜 구동 장치를 반대로 돌려놓은 개념이었고, 실질적으로 엔진을 가로로 탑재한 오늘날의 앞 바퀴 굴림 방식과 같은 개념의 구조는 1959년에 등장한 오스틴 미니부터라고 합니다.
이후 소형 승용차 차체의 실내공간 확보에 유리한 앞 바퀴 굴림 방식 차량을 르노와 피아트, 그리고 일본 업체 등에서 내놓으면서 보편적인 방식으로 발전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폭스바겐 역시 비틀을 대체하는 소형 승용차로 앞 바퀴 굴림 방식의 골프를 개발한 것이었고, 그 디자인을 혈기 넘치는 30세의 나이에 자신의 디자인 회사 이탈디자인(ITAL DESIGN)을 창업한 직후였던 죠르제토 쥬지아로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쥬지아로의 디자인 특징은 차체에 거의 평면에 가까운 곡면을 쓰면서도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형태에, 네모난 틀 안에 둥근 헤드램프를 넣은 앞 모습 디자인에 장식이 없이 간결한 모던함으로 대표됩니다. 우리나라의 첫 고유모델 포니 역시 그런 조형을 가지고 있는데요, 1세대 골프의 디자인 또한 그런 특징을 보여줍니다.

사각형 틀 안에 원형 형태를 넣은 디자인은 1세대 골프의 운전석 계기판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런 기하학적 모던 디자인은 이 시기에 어느 누구도 쓰지 않았던 것으로, 1970년대에는 마치 오늘날의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디지털 조형처럼 받아들여졌던 최신의 감각이었습니다.
1970년대의 차들이 전반적으로 크롬이 들어간 몰드 류의 장식이 많이 붙어있으면서 다양한 디테일을 가진 감각의 어중간한 곡선의 디자인이었기에 쥬지아로의 저러한 간결한 기하학적 조형은 그야말로 ‘최신식 이태리 패션’ 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폭스바겐에서 1세대 골프 개발 시에 차체 디자인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로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제작한 테스트 뮬(test mule) 차량의 사진을 찾아보면 중도적 형태의 둥그스름한 차체를 가지고 있는 걸 볼 수 있기도 합니다.


2세대 골프는 1세대 골프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캐릭터 라인에 붙였던 몰드가 웨이스트 라인(waist line)으로 내리고, 도어 위쪽의 빗물 받이 레일을 매끈하게 바꾸었으며, 범퍼는 금속 대신 전체를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 달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범퍼가 비로소 쓰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내는 운전석의 사각형 클러스터에 둥근 계기를 통합시켰습니다.


한편, 3세대 모델은 둥근 램프의 느낌을 가진 사각형 램프, 어딘가 모순적 설명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그런 헤드램프와, 완전히 차체를 덮는 구조의 플라스틱 범퍼가 적용됐고, 인스트루먼트 패널도 센터 페시아(center fascia)의 개념이 완전히 정착된 디자인입니다. 오늘날의 승용차 차체 디자인의 특징이 자리잡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세대 모델은 차체에 곡면을 더 넣어서 볼륨을 강조했고, 두 개의 원으로 구성된 일체형 헤드 램프를 달았습니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센터 페시아와 앞 콘솔이 연결되는 구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5세대로 등장한 모델은 곡선을 강조한 이형(異型)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의 개구부를 알파벳 U 형태로 마무리하면서 비틀과 뉴 비틀로 이어지는 U 형태의 후드를 가진 앞 모습과 유사한 아이덴티티를 시도했습니다.
지금의 폭스바겐 브랜드의 디자인은 대중 브랜드로서의 특징인 제품 별 특징, 이른바 프로덕트 아이덴티티(product identity)를 더 중시해서 차들 마다 서로 다른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시기에는 메이커 별로 브랜드 통일성(brand identity)을 추구하던 시기였습니다. 한편 실내에는 센터 페시아에 디스플레이 패널이 설치되기 시작합니다.


6세대 모델은 5세대 모델에서 전반적으로 간결하게 다듬어진 차체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실내 역시 센터 페시아에 디스플레이 패널이 적용되면서 앞 콘솔과 연결된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7세대 모델은 6세대에 비해 조금 더 팽팽하게 당긴 면을 쓰면서 슬림 라디에이터 그릴과 아울러 A-필러(실제로는 앞 문의 유리창)에 별도의 삼각 유리창을 달았습니다. 그만큼 카울이 좀 더 앞쪽으로 이동하면서 캐빈의 비중이 높아진 차체 구조를 보여줍니다.
인스트루먼트 패널은 운전석 클러스터가 디스플레이 패널이 설치된 센터 페시아와 합쳐지면서 앞 콘솔과 완전히 연결되면서 마치 대형 승용차나 SUV와도 같은 형식의 육중한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서 8세대 모델은 슬림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로 샤프한 인상을 강조하고 있고, 인스트루먼트 패널 역시 최근의 경향에 맞추어 수평 기조의 디자인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두 장의 디스플레이 패널로 디지털화가 크게 진전된 모습입니다.

첫 골프 이후 지금까지 8세대 모델의 제원과 코드 네임, 양산 시기 등을 다양한 곳에서 자료를 찾아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차체 길이를 비교해 보면 1세대의 3,815mm에서 8세대의 4,284mm로 무려 469mm가 길어졌으며, 차체 폭도 1,630mm에서 1,789mm로 무려 159mm나 넓어졌습니다. 이 정도의 차이면 체급을 두 단계 정도 높인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늘어난 치수의 대부분은 실내 공간을 넓게 만드는데 쓰였습니다.
과거에는 소형 승용차들이 차체가 작아지면 실내도 작아졌지만, 이제는 차량 세그먼트가 작아져도 실내 공간보다는 엔진 룸 등의 기계적 요소를 줄이면서 사람을 위한 공간은 그다지 많이 줄이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설계 개념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골프의 1세대 모델이 등장한 것이 1974년이고 이제 2024년에 이르기까지 50년동안 8세대의 진화를 거쳐온 모습은 실용적인 해치백 소형 승용차-사실상 1세대 골프는 소형 승용차였지만 지금은 크기로 본다면 중형에 필적하는 공간을 가진 거주성을 높인 차가 됐습니다-이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역대의 골프 승용차는 각 시기를 대표하는 가치의 변화를 반영해왔지만, 이전 모델을 구형으로 만들어버리지는 않는, 합리적 진화를 이루는 독일의 기능주의적 디자인을 보여줬다는 점이 8세대동안의 변화에서 공통적으로 유지해온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2 년쯤 뒤에 등장할 9세대 골프 승용차는 어쩌면 매우 크게 변화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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