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칼럼에서 고급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Jaguar)가 기존의 아날로그적 성향의 로고에서 크게 변화된 형태, 즉 뉴 모피즘(new morphism)적 성향의 로고를 공개한 것에 대한 글을 썼었습니다.
기존의 점프하는 맹수의 근육질 이미지를 가진 심벌과 마스코트는 전문 용어로는 스큐어 모피즘(Skeuor Morphism) 이라고도 표현됩니다. 이것은 ‘사실적인 형태’ 라고 설명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만, 다른 관점으로는 아날로그적 형태 이미지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재규어의 새로운 뉴 모피즘의 경향을 반영한 콘셉트 카 Type 00을 공개했습니다.

새로이 공개된 콘셉트 카 Type 00의 모습은 새로운 형태의 재규어 심벌만큼이나 충격적이고 개혁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디자인은 재규어 브랜드를 1922년에 21세의 젊은 나이에 설립한 월리엄 라이온즈(William Lyons)가 강조했던 아무것도 베끼지 않는다(Copy nothing)의 개념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과연 그러한 모토(motto)답게 새로운 콘셉트 카 Type 00의 모습은 매우 급진적이고 충격적 모습입니다. 샤프한 모서리를 가진 차체 형태는 물론이고 슬림 헤드램프, 각으로 구성된 C-필러 디자인과 마치 컴퍼스로 돌린 듯한 형태의 둥근 휠 아치와 휠 아치 플랜지 등이 지금까지 우리들이 봐 왔던 재규어 승용차의 근육질 이미지의 아날로그적 감성과는 완전히 다른 급진적 이미지로 어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렇게 급진적인 디자인은 많은 논란을 일으킬 걸로 보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지금까지의 재규어는 매우 유기체적이고 우아한 곡선을 쓰면서도 역동적인 디자인 감성이 공통적인 특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콘셉트 카 Type 00의 앞모습은 날카로운 인상의 슬림 LED 헤드램프와 완전한 시각형의 틀 안에 수평선으로만 구성된 그릴(처럼 보이는) 형태로 과거의 재규어와 완전히 다른 시대라는 선언을 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뒷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뒤 유리가 없이 막혀 있는 모습과 아울러 사각형 틀 속에 수평적 조형 요소만으로 구성된 반복된 선 처리, 그게 전부입니다. 정말로 생소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반복된 선 처리는 앞 펜더 측면에 달린 후방 카메라의 커버에서도 쓰였고, 커다란 직경의 휠 스포크에서도 역시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실내의 디자인도 급진적 성향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직선적 형태로 디자인 된 좌석의 형태를 비롯해서, 타원형 스티어링 휠, 그리고 미니멀리즘적 디자인으로 디테일을 모두 없애 버린 인스트루먼트 패널과 콘솔 형태에서는 자동차이기보다는 하이 엔드 오디오나 전자제품 같은 형태 언어를 볼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천지 개벽하는 듯한 인상입니다.

이런 조형 사조를 가리켜서 뉴 모피즘 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만, 새로운 재규어 콘셉트 카 Type 00은 갈 데까지 가보자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적어도 차체 내/외장 형태에서는 말입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재규어는 전통적으로 고성능을 추구하는 브랜드였고, 차체 디자인에서는 약간은 보수적이라는 인상도 사실 강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재규어의 디자인은 지금까지 재규어가 추구했던 디자인 가치를 일거에 내 던진 듯한 이미지를 주고 있습니다.

뇌 과학 분야에서 연구되는 바에 의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제품의 디자인이나 형태에 대한 선호도는 과거의 기억을 어느 정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새로운 디자인이 과거의 기억을 너무 많이 떠올리면 사람들은 거기에서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반대로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한 완전히 다른 디자인 이라면 이 또한 환영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재규어의 콘셉트 카 Type 00은 과거의 기억을 너무 없앤 걸까요?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재규어의 콘셉트 카 Type 00은 전체 비례와 차체 구성이 1961년에 처음 등장했던 재규어 E-Type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1961년의 E-Type은 매우 곡선적이고 유기체적 차체 조형으로 재규어의 역동성을 강조했던 대표적인 디자인의 하나로 꼽히기도 합니다.

E-Type은 쿠페와 로드스터 등의 차체로 나왔으며, 레이싱 기술을 그대로 양산형 차량에 적용한 차량으로 재규어 브랜드의 전통을 이루는 핵심 모델이라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급진적 디자인을 가지고 등장한 새로운 재규어의 콘셉트 카 Type 00의 차체 조형을 보니, 그의 바탕에는 60년 전의 재규어 E-Type의 유산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완전히 천지개벽의 디자인이라고 여겨졌던 모델의 콘셉트 카 디자인이 사실은 과거에 사람들에게 인상을 깊게 남겼던 클래식 카를 무의식 중에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 의도가 있었던 건 지도 모르겠습니다.

뇌 과학 분야 연구에서의 주장처럼 우리들이 선호하는 대상의 특징은 우리들이 이미 익숙하다고 느꼈던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급진적으로 보이는 감각의 디자인이라도 그 바탕의 기억은 우리들이 이미 익숙하고 좋아했던 것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재규어의 새로운 콘셉트 카 Type 00의 차체 디자인은 60년 전에 혁신을 보여준 재규어 E-Type의 디지털적 재해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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