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이 미국 현지에서 자동차와 철강을 생산하기 위해 향후 4년간 총 210억 달러(약 28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무관세 등 인센티브를 언급하며 전폭적인 환영 의사를 표했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공급망 회복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 대형 투자 유치로 평가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국내 산업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경고음이 제기되어 왔다. 원자재뿐 아니라 완제품까지 공급망이 미국으로 이동하면, 한국 내 산업이 공동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자, 한국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의 수익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특히 환경규제가 강화된 시대에 생산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출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틀에서 보면 자유무역을 전제로 구축된 ‘최적지 생산체계’가 무너지고, 전 세계 원자재 가격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미국 우선주의 요구는 세계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으며, 그 여파는 특정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글로벌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구조다. 한국산 차량의 미국 판매 비중은 전체의 약 40% 수준으로, 일본(60%)이나 유럽(70%)에 비해 낮다. 2024년 기준, 국내 자동차 생산량 중 67%가 수출 물량이었으며 이는 지난 10년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그만큼 수출시장 보호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응해 미국 내에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은, 가장 많은 판매가 이뤄지는 미국 시장을 방어하는 현실적인 전략이지만, 그 반대급부로 한국 산업의 공동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산업연구원은 트럼프의 관세에 대응해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생산을 늘릴 경우, 국내 생산량이 연간 70만~90만 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현재 국내 전체 생산량의 약 20%에 해당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가 국내 부품산업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4월 중 공급망 강화 및 자금 지원 방안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투자에 대해 환영 의사를 나타냈지만,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 철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의 성향상, 투자 약속만으로 관세를 철폐할 이유는 없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가 부활하면서 자유무역의 근간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지탱해온 자유무역 시스템은 자원을 전 세계에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가장 적합한 지역에 조달과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추가 관세와 보호무역 조치는 이러한 공급망 체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특히 철강산업은 자동차산업과 직결된다. 철강 가격의 변동은 곧바로 자동차 가격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다시 철강 수요의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 산업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지금, 한국은 단순한 ‘대응’을 넘어서 새로운 산업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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