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하고 신중하게, 하지만 파격적인 방식으로 전기차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인 스타트업이 있다. 그 기업은 바로 슬레이트오토(Slate Auto).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가족 투자회사가 배경에 있으며, 본사는 미국 미시간주 트로이에 있다. 슬레이트오토는 대중을 겨냥한 2인승 전기 픽업트럭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약 2,500만 원 수준의 ‘첫 차’를 기획하고 있다. 이른바 ‘현대판 포드 모델 T’를 꿈꾸는 셈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이미 2023년 시리즈A 투자 유치 당시 1억 1,100만 달러를 모았고, 이후 시리즈B 라운드에서도 수백만 주의 우선주를 발행하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조스는 직접 경영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그의 투자책임자인 멜린다 루이슨이 슬레이트의 이사회에 이름을 올린 점에서 진지한 관심이 엿보인다.

슬레이트오토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후원자가 베이조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그간 전기차 스타트업이 흔히 따르던 전략을 일부러 거스르고 있다.
대부분의 EV 스타트업은 먼저 고급 모델을 내놓아 높은 수익률을 확보한 뒤, 점차 저가형 대중 모델로 확장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테슬라가 그랬고, 루시드와 리비안도 같은 길을 택했다. 하지만 슬레이트는 첫 제품부터 ‘저가형 대중차’로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2인승 전기 픽업트럭을 2만 5천 달러 수준에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제조원가와 수익성 측면에서 상당한 부담을 의미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슬레이트는 액세서리와 의류, 개인 맞춤형 부품 등 부가사업으로 수익 구조를 보완할 계획이다. 실제로 ‘WE BUILT IT. YOU MAKE IT(우리가 만들고, 당신이 완성한다)’라는 문구로 상표 등록을 마친 상태이며, 이를 바탕으로 고객이 차량을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꾸미고 성장시키는 ‘슬레이트 유니버시티’ 개념도 구상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은 할리데이비슨의 의류사업이나 스텔란티스의 Mopar 부품 브랜드처럼, 자동차 외 부가수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과 유사하다. 슬레이트는 실제로 할리데이비슨 출신 경영진들을 다수 영입하며 이러한 전략에 힘을 싣고 있다.

슬레이트오토는 단순히 베이조스가 투자한 회사가 아니다. 회사의 설립 배경부터 인적 구성까지, 아마존 출신 인재들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슬레이트의 전신은 아마존 소비자 부문 CEO 출신 제프 윌키와 MIT 동문 마일스 아논이 공동 설립한 ‘리:빌드 매뉴팩처링(Re:Build Manufacturing)’의 내부 프로젝트 ‘Re:Car’였다.
슬레이트의 최고경영자(CEO)는 크라이슬러 출신의 크리스틴 바만이다. GM 인턴십으로 자동차 업계에 입문해 20년 넘게 FCA(현 스텔란티스)에서 일했으며,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의 통합을 주도하고, 웨이모와의 협업에도 관여했던 인물이다. 바만은 전형적인 스타트업 창업자 스타일과는 달리, 조용하고 실무 중심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전기차 시장은 한때의 폭발적인 성장세에서 점차 현실적인 속도로 이동 중이다. 리비안과 루시드조차 수십억 달러를 태우며 살아남고 있고, 그 외 많은 스타트업들이 도중에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슬레이트오토의 전략은 분명히 모험적이다. 저가 모델로 시작해 액세서리와 콘텐츠로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은 자동차업계에선 낯선 접근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저가 전기차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존재하며, 북미 시장 내 생산과 유통망을 통해 IRA 보조금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여전히 ‘선택지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테슬라 모델 3나 현대 아이오닉 6도 기본 가격이 4천만 원을 훌쩍 넘는다.
슬레이트오토는 어쩌면 전기차 시장에 필요한 새로운 실험일지 모른다. 스타트업 특유의 유연함과 아마존 출신 인재들의 기획력, 그리고 베이조스의 투자 여력이 조화를 이룬다면, ‘제2의 모델 T’가 다시 미국에서 탄생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슬레이트오토 #SlateAuto #전기차스타트업 #베이조스EV #25K전기차 #픽업트럭EV #ReBuildManufacturing #EV혁신 #크라이슬러출신CEO #전기차시장재편
<저작권자(c) 글로벌오토뉴스(www.global-auto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