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A 시리즈 신작이 출시된다’라는 소식 하나만으로 글로벌 게임 업계 전체가 술렁입니다. ‘GTA6’는 단 한 편의 공개 트레일러만으로도 24시간 만에 유튜브 조회수 1억 건을 돌파했고, 정식 출시일이 발표되기도 전에 수많은 대형 게임들이 발매 일정을 조정하게 만들었죠. 하나의 게임이 업계를 흔드는 거대한 자연재해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도대체 이 시리즈는 어떤 길을 걸어 오늘날 같은 ‘게임계의 자연재해’로까지 성장하게 되었을까요?
■ GTA, ‘락스타 게임즈’가 아니던 그 시절

이후 DMA는 ‘레이스 앤 체이스’라는 도시 배경 레이싱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요. 초반에는 게임의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아 팀원들 간의 개발 방향도 다르고, 만들어지는 작업물도 부실해 프로젝트가 위태로웠습니다.

이에 개발 방향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던 가운데, 게임의 운명을 바꾸는 우연한 버그 하나가 발견됩니다. 은행 강도가 도주하는 게임 모드에서 경찰 AI가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오류가 발생한 건데요. 단순한 추격을 넘어 경찰 차량이 도주 차량을 들이받고, 강도를 차에서 끌어내리려는 등 매우 격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이 버그가 난감하게 느껴졌지만, 개발진은 곧 이로 인해 게임이 훨씬 역동적이고 흥미로워졌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이에 따라 게임의 콘셉트는 경찰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는 강도의 이야기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고, 제목 역시 ‘그랜드 시프트 오토(Grand Theft Auto, GTA)’로 새롭게 정해졌습니다. 이렇게 1995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다시 시작된 GTA는 마침내 1997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GTA는 출시와 동시에 사회적인 파장을 몰고 왔는데요. 차량을 훔치고, 범죄를 저지르며, 도시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콘텐츠가 있는 만큼 학부모 단체와 시민 단체, 종교 단체의 강한 반발이 생겨났죠. 심지어 영국 상원에서는 GTA의 판매 금지를 공식적으로 논의하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은 오히려 게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른바 ‘노이즈 마케팅’ 효과가 자연스럽게 작용하면서, GTA는 약 300만 장이라는 인상적인 판매량을 기록하게 됐죠.
■ 이래저래 혼란 겪은 GTA2, ‘락스타 게임즈’의 시작
GTA가 확고한 콘셉트를 잡은 만큼, 후속작인 GTA2는 출시 2년 만인 1999년에 등장했습니다. GTA2는 약 2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지만, 전작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게임 내적으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탑뷰(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를 유지했고, 그래픽 스타일과 조작 방식 역시 큰 변화 없이 이어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당시 시장에는 ‘파이널 판타지 8’, ‘그란 투리스모 2’ 등 고퀄리티의 3D 게임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었기에, GTA2의 비교적 밋밋한 비주얼과 게임 방식은 다소 구식으로 느껴졌습니다. 시대 흐름을 앞서 나가기엔 한계가 분명했던 셈입니다.
여기에 외부적인 개발 환경 역시 녹록지 않았습니다. 초기 GTA는 음반 회사였지만 게임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미디어 기업 BMG 인터랙티브를 통해 유통됐는데요. GTA가 성공을 거둔 이후, 개발사 DMA의 대표 데이비드 존스는 회사를 영국의 게임 퍼블리셔인 그램린 인터랙티브에 매각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시리즈의 향후 방향성에 불안감이 감돌기 시작했죠.


GTA의 저작권은 유통사 BMG가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BMG마저 게임 사업에서 철수하며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미국의 게임 퍼블리셔 테이크투 인터랙티브(Take-Two Interactive, T2)에 넘기게 됩니다. 그 결과, 개발자들은 그램린 인터랙티브에, 판권은 테이크투가 보유하는 복잡한 이중 구조가 형성됐죠. 최종적으로는 테이크투 인터랙티브가 다시 DMA를 인수하면서 GTA의 권한을 모두 얻게 되었고, GTA의 유통을 위한 테이크 투 산하의 자회사를 설립하게 되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락스타 게임즈’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완벽한 3D의 모습을 갖춘 전설, GTA3
완전한 3D 모습을 갖추는 방식으로 게임 개발 흐름을 잡은 락스타 게임즈는 핵심 개발사인 DMA 디자인의 본사를 스코틀랜드 던디에서 수도 에든버러로 이전시켰고, 뉴욕에 있는 락스타 본사 또한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새로운 개발 체제도 마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게임 개발 총괄은 샘 하우저가 맡았고, 프로듀서는 레슬리 벤지스, 시나리오 작가는 덴 하우저가 책임지게 됐는데요. 그들은 몰입감 높은 3D 그래픽에 더불어 본격적인 ‘스토리라인’을 게임에 도입, 모션 캡처 기술을 활용하고 무려 18,000줄에 달하는 방대한 대사를 녹음해, 자유로운 게임 분위기와 탄탄한 서사 두 가지를 잡게 됩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는데요. GTA3는 원래 세가의 콘솔인 드림캐스트로 개발될 예정이었으나, 세가가 게임기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새로운 플랫폼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후 락스타는 MS에 엑스박스 독점 출시를 제안했지만, 폭력성과 과거 GTA2의 아쉬운 완성도를 이유로 거절당했죠. 결국 마지막으로 찾아간 소니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고, GTA3는 그제야 PS2 전용 타이틀로 발매가 결정됩니다.
그렇게 2001년 출시된 GTA3는 또 한 가지의 고비를 넘어야 했는데요. 바로 한 달 전 미국에서는 9.11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에, 게임 내 콘텐츠를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게임의 배경인 ‘리버티 시티’는 뉴욕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하고 있었던 만큼 더욱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했죠.
이에 개발진은 급하게 경찰 트럭 모델을 뉴욕의 NYPD를 모티브로 한 하늘색 바탕에서 로스앤젤레스의 LAPD가 연상되는 검은색 바탕으로 바꾸고, 게임의 표지도 폭력성이 덜 느껴지도록 이미지를 쪼개 바둑판 느낌으로 재배열했는데요. 이게 오늘날 ‘GTA’를 상징하는 하나의 디자인처럼 자리잡은 걸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네요.

이렇게 고비를 넘긴 GTA3는 메타크리틱 평점 97점, 판매량 1,450만 장을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외전 격 작품인 ‘바이스 시티’(1,750만 장), ‘산 안드레아스’(2,500만 장), ‘리버티 시티 스토리즈’(1,100만 장), ‘바이스 시티 스토리즈’(600만 장) 등도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올리며 총 작품 합산 판매량이 7,500만 장에 이르는 대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 GTA 산 안드레이스 ‘핫 커피’ 사건과 논란도 넘은 GTA4
GTA는 시리즈의 성공만큼이나 사회적 논란도 함께 커졌습니다. GTA3는 게임 등급 분류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호주에서 출시가 무산될 뻔했고, 결국 오리지널 GTA3는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에 테이크 투와 락스타 게임즈는 GTA3의 호주 출시에 맞춰 별도로 수정한 버전을 출시해야 했고, 비슷하게 게임 등급 분류가 엄격한 독일에서도 혈흔 묘사가 순화된 버전을 출시해야 했는데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산 안드레아스’에서는 게임계에 길이 남을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제작 총괄 샘 하우저는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까지 게임에 담길 수 있어야 진정한 성인 게임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해당 콘텐츠를 게임에 포함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용 콘솔로 발매되는 게임은 등급 문제와 유통상의 제약이 있기 때문에, 실제 이용자가 접근할 수 없는 비활성화된 데이터 형태로만 남겨두었는데요. 그러나 이 데이터는 모더들에 의해 발견되고 ‘핫 커피’ 모드로 드러나게 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커피 한잔하고 갈래? (한국으로 치면 라면 먹고 갈래? 정도의 느낌이라고 볼 수 있죠)”라는 대사를 수락하면 성행위 장면이 펼쳐지는 이 모드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고, ESRB(오락 소프트웨어 등급 위원회)는 게임 등급을 M에서 AO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AO 등급은 일반적으로 노골적인 포르노 게임에 부여되는 등급으로, 오프라인 매장 판매가 불가능해지는 사실상 ‘시장 퇴출’과 다름없는 조치였죠.
여기서 끝나지 않고 사건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나서 연방 차원의 게임 규제를 요청하는 상황으로까지 번졌고, 샘 하우저는 연방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등 큰 곤욕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후 하우저는 성적 표현을 게임 내에서 직접적으로 구현하는 걸 포기하게 됐죠.

부정적인 여론으로 GTA가 몰락하나 싶었지만, GTA는 엄청난 퀄리티의 GTA4로 다시 일어납니다. GTA3의 엄청난 성공을 거둔 개발사 DMA는 2002년 락스타 노스로 사명을 바꾸고 락스타 스튜디오 그룹에 완전히 편입됐는데요. 개발 규모와 인력도 점점 커져 당시로는 천문학적이었던 1억 달러(약 1425억)를 개발비로 사용했고, 개발 인력도 락스타 노스만 220명, 전체 락스타 스튜디오 직원까지 합치면 약 1,000명이 투입되었습니다.
훌륭했던 게임에 자본과 인력이 붙으니 결과도 뛰어났는데요. GTA4는 660명의 배우가 8만 줄 이상을 녹음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과 전작에 비해 3배 넣은 맵, 아낌없는 투자로 만들어진 화려한 연출과 그래픽으로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 되었죠.
그 결과, 메타크리틱 기준 98점이라는 역대급 점수를 기록했고, 발매 하루 만에 360만 장을 가뿐히 판매하더니 3억 1천만 달러 수익을 올렸습니다. 최종 판매량은 약 2,800만 장으로, GTA3의 두 배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논란을 몰고 다니지만, 그만큼 성과도 확실했습니다.
■ GTA를 이긴 GTA, GTA5
GTA4가 워낙 큰 성공을 거둔 만큼, 후속작인 GTA5가 이를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관심도 자연스럽게 집중됐습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GTA5는 출시와 동시에 전작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을 세우며, 다시 한번 게임 업계의 판도를 바꿔 놓았습니다.
기존 GTA 시리즈는 뛰어난 세계관과 자유도에도 불구하고, 총격전의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요. 하지만 GTA5에서는 락스타가 ‘레드 데드 리뎀션’, ‘맥스 페인3’에서 다듬은 총기 액션의 노하우를 그대로 게임에 담을 수 있었고, 이는 전반적인 액션 퀄리티의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락스타게임즈의 개발 노하우는 ‘로딩’에서도 빛을 발했는데요. GTA5는 세 명의 주인공을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캐릭터 전환 과정에서 긴 로딩이 발생해 게임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었던, 매우 도전적인 시도였죠. 지금이야 로딩 없는 게임 플레이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실시간 전환을 구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락스타게임즈는 1,000명이 넘는 개발 인력을 투입하고, 무려 2억 6천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들여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캐릭터 전환 시스템을 완성해 냈습니다. 이는 당시 오픈월드 게임의 기준을 다시 쓰는 혁신적인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9월 17일 출시된 GTA5는 발매와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게임은 출시 첫날 24시간 만에 1,100만 장 이상이 팔리며, 약 8억 1,500만 달러(한화 약 1조 700억 원)의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개발비의 세 배를 훌쩍 넘는 수치였죠. 이후 게임은 6주 만에 2,900만 장 이상을 판매하며, 기존 시리즈의 판매량을 뛰어넘는 놀라운 흥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GTA5 출시 이후 10년이 넘은 지금, 락스타게임즈는 GTA6를 오는 2025년 가을에 발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이번에는 또 어떤 혁신을 보여줄지, 그리고 과연 쌓아온 업적을 넘어설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