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표준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와 충전기 보급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토헤럴드 AI)
[오토헤럴드 김필수 교수] 전기차 보급이 한계에 부딪힌 듯 보이지만, 이는 일시적인 정체일 뿐이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전기차는 결국 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 연간 170만 대 수준의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눈높이가 높고, 기술 실증에 적합한 ‘테스트베드’로 평가받는다.
국내에서 입증된 전기차와 충전기는 수출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다는 점에서,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중요하다. 정부 보조금은 전기차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수단이다. 다만 현재 보조금 체계는 충전기와 전기차 기술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스마트제어 완속충전기’와 관련된 기준 정립은 여전히 미흡하다.
급속충전기처럼 ‘PLC(전력선 통신)’이 가능한 스마트제어 완속충전기가 보급될 경우, 충전 시 화재 발생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어 지하주차장 설치에 대한 우려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소방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SoC(State of Charge) 충전 제어는 전기차 화재 확산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많은 국내에서는 충전 시의 화재 예방 기능이 보급 확대의 전제 조건이다. 방재설비보다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충전제어’ 기술은 실질적 대책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환경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제어 완속충전기에는 두 가지 핵심 기능이 있다. 하나는 충전제어(SoC 제어), 다른 하나는 배터리 상태정보 수집 및 분석이다. 문제는 두 기능의 적용 가능성과 기술 성숙도가 현저히 다르다는 데 있다.
충전제어 기능은 이미 ISO 15118 국제표준에 따라 별도의 업데이트 없이 대부분의 전기차에서 작동 가능한 상용 기술이다. 반면, 배터리 상태정보 수집을 위한 VAS Korea(부가가치 서비스 통신 방식) 기술은 2024년 3월에 기준이 마련됐지만, 아직 기술 보완과 차량 적용이 불확실한 상태다.
VAS Korea 기술은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만큼 긍정적 기대도 있으나, 국제표준과 괴리된 채 국내 기준으로만 추진된다면 ‘갈라파고스 규제’가 될 위험이 크다. 실증 없이 의무화를 서두를 경우, 국내 시장에 진입한 해외 제조사들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고, 이는 국제 통상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제조사 또한 내수용과 수출용 제품을 따로 개발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이에 따라, VAS Korea 기술은 당분간 실증과 검증 중심의 장기 과제로 분리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국내 전기차를 대상으로 3년 이상 검증한 뒤, 해외 모델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충전제어와 배터리 정보수집의 분리 운영은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과 국제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현실적 전략이다.
이제라도 환경부는 2024년 여름 발생했던 전기차 화재 사례를 교훈 삼아, 2025년 하절기 대비 스마트제어 충전기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대비해야 한다. 아울러, 충전제어 기능은 조속히 기준화하고, 배터리 상태정보 수집은 국제표준 흐름에 맞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충전기와 전기차 모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국제표준을 기반으로 한 보급 정책이야말로 기업과 소비자, 정부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방향이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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