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대 초반까지의 자동차 업계는 전동화 흐름 속에서 배터리 전기차(BEV)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단일 전동화 전략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배터리 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충전 인프라 구축 지연, 겨울철 주행거리 저하 문제 등 현실적인 한계가 노출되면서, 소비자와 제조사 모두가 하이브리드 모델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최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흐름은 분명하다. 유럽연합(EU)은 2035년 내연기관 퇴출 정책의 유예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일본, 한국은 이미 하이브리드 중심의 다변화 전략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는 단연 '하이브리드 기술의 원조' 토요타다. 특히 최근 출시된 렉서스 LX700h는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전략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국내 출시된 렉서스 LX700h는 혹독한 주행 조건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하이브리드 SUV다. 이 차량에 탑재된 파워트레인은 3.5리터 V6 트윈터보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단일 모터 기반의 파라렐(병렬형) 하이브리드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기존 LX600의 V35A-FTS 엔진과 10단 자동변속기를 기본으로, 그 전단에 클러치와 최고출력 40kW, 최대토크 290Nm의 전기모터를 삽입한 구조다. 이 시스템은 앞에서부터 엔진 → 클러치 → 모터 → 토크컨버터 → 10단 변속기로 이어지는 순서로 배치되며, 하이브리드 방식으로는 '1모터 파라렐형'에 해당한다. 클러치를 해제하면 모터 단독 EV 주행이 가능하고, 회생제동도 구현된다.
특이한 점은 이 구조가 이미 북미에서 판매되는 픽업트럭 '툰드라'에 선행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즉, 혹독한 환경에서의 고출력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검증된 구조를 프리미엄 SUV인 LX700h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특히 극저속 영역에서 모터와 토크컨버터를 활용한 토크 증폭 기능은 견인력과 험로 주행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LX700h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렉서스 최초로 알터네이터와 스타터가 동시에 탑재되었으며,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고장 나더라도 스타터로 엔진 시동이 가능하고, 알터네이터를 통해 12V 보조 배터리를 충전함으로써 내연기관만으로 주행을 지속할 수 있다. 이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주행가능한 하이브리드'라는 콘셉트를 강조하는 설계다.
주행용 배터리는 약 1.8kWh 용량의 니켈수소 방식으로, 화물공간 바닥에 위치한다. 배터리와 AC 인버터는 방수 처리된 트레이에 수납되어, 700mm 수준의 도하 능력을 보장한다. 이는 동급 내연기관 SUV와 동등한 수준이며, 실제 오프로드 환경을 고려한 설계라 평가할 수 있다.

토요타는 차량의 용도, 파워트레인의 레이아웃, 소비자 성향 등에 따라 다양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 전략의 중심축은 여전히 토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THS) 이다. 1997년 1세대 프리우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진화한 이 시스템은 MG1(발전)과 MG2(구동)를 동력분할기어와 함께 조합해 고효율을 극대화하는 구조다.
2022년에 등장한 5세대 THS는 프리우스보다 먼저 노아/복시(Voxy)에 적용됐고, 이후 프리우스에도 탑재되었다. 이 시스템은 효율성과 정숙성, 고출력 대응 등 모든 면에서 진화했으며, 여전히 토요타 하이브리드 전략의 중심에 있다.
한편, 수직배치형 레이아웃이 필요한 고급 세단과 대형 SUV에는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렉서스 LS나 토요타 크라운 세단이 대표적인데, 여기서는 THS 기반 구조에 4단 자동변속기(유성기어 + 결합요소)를 추가하여 총 10단 변속 제어를 실현했다. 이는 저속에서의 토크 응답성과 고속에서의 효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22년부터는 새로운 방향성의 하이브리드도 등장했다. '크라운 크로스오버'에 처음 적용된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1모터 파라렐 방식에 6단 AT를 결합한 구조다. 2.4리터 가솔린 터보(T24A-FTS) 엔진과 결합되며, 최고출력은 349마력에 달한다. 여기에 리어 액슬에도 전기모터를 더해 e-AWD 기능과 순간 부스트력을 제공한다. 연비보다는 가속 성능과 주행 감각에 중점을 둔 세팅으로, 새로운 프리미엄 하이브리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전략은 단일 플랫폼이나 구성에 머무르지 않고, 상황과 목적에 따라 유기적으로 설계를 바꿔가며 확장되고 있다. 단순히 연비만을 위한 기술이 아닌, 고성능, 내구성, 다용도성을 포함한 통합적인 파워트레인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LX700h는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혹독한 환경, 즉 극한의 오프로드와 장거리 고부하 주행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차량으로, 전동화 시대의 SUV가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델이다.

토요타의 시스템이 이미 시장에서 신뢰를 구축한 반면, 현대차그룹은 다소 늦은 출발을 보였으나 최근 들어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2024년 말 발표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1.6 터보 기반 직렬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함께 "고출력 통합형 드라이브 모듈(IDM)", "배터리와 인버터의 집적 최적화", "더 넓어진 EV 주행범위" 등을 내세운다.
현대차의 새로운 하이브리드 플랫폼은 단지 연비 향상을 위한 기술이 아닌, EV 시대의 과도기적 기술로서, 시스템 무게 저감과 전동 주행 거리의 증가라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있다. 특히 통합형 구동 시스템은 전기모터와 감속기, 인버터를 일체형으로 구성함으로써 공간 효율성과 동력 전달의 일관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토요타의 다층적이고 입증된 기술체계와는 달리, EV 기반 기술을 하이브리드에 역설계(reverse engineering)한 방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즉, 하이브리드에서 전기차로 향했던 과거의 흐름이, 이제는 EV 기술을 활용한 하이브리드 재해석의 흐름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전기차가 여전히 전동화의 궁극적 목표임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기술과 인프라, 그리고 소비자 니즈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하이브리드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토요타는 그 현실을 가장 일찍, 가장 치밀하게 준비한 제조사이며, 현대차그룹은 뒤늦게나마 빠른 추격에 나서고 있다.
'전기차냐 내연기관이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상황에 맞는 전동화'라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지금, 하이브리드는 그 정답에 가장 가까운 기술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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