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제 색깔을 담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안준석 스튜디오 안 CEO
지금 소개할 개발자는 화려한 팀도, 자본도 없이 오직 한 사람의 감각과 집념으로 게임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스튜디오 안’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이 1인 개발자는, 낮에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밤에는 자신만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게임 세계를 조립해나갑니다.
첫 작품인 퍼즐 게임 ‘고스티드’를 통해 ‘세상에 없던 게임성’을 향한 실험을 시작한 그는, 지금은 더 많은 이용자에게 닿을 수 있는 대중적인 로그라이크 게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진짜, 지뢰 찾기가 재미있어질 겁니다”라는 말처럼, 누구나 아는 고전 게임을 독창적인 시스템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개발자. 어떤 철학으로 게임을 만들고, 어떤 감정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왜 여전히 ‘혼자’ 만드는 방식을 고집하는지. 스튜디오 안의 솔직하고 유쾌한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세요.

■ 혼자서도 시작할 수 있다
Q : 게임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 혹은 게임 개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사실 ‘게임사’라고 하긴 좀 그렇고요. 저는 1인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게임 개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는데, 팀원을 구하거나 현실적으로 시작하는 게 어렵다고 느껴서 미뤄왔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엔진도 좋아지고, 1인 개발 게임들도 점점 많아지면서 저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나이가 좀 들어서 시작하긴 했지만요.
그게 한 8년 전쯤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사실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오픈되는 건 조금 조심스럽긴 해요. 회사 쪽에서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회사 일은 소홀히 하지 않고 잘 하고 있어요. 회사 다니면서 공부도 병행했고, 처음엔 그냥 공부하고 습작도 하다가 ‘이건 꼭 만들어봐야겠다’ 싶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개발을 시작하게 된 게 첫 작품 ‘고스티드’예요.
■ 게임도 디자인처럼, 새로움을 설계하다.
Q : 그럼 스튜디오 안만의 독창적인 게임 철학이나 개발 원칙이 있을까요?
A : 명확하게 정의하긴 어렵지만… 저는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예요. 게임 업계엔 순수 그래픽 디자인 기반의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업계 특유의 아트 스타일이나 장르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것보다는 좀 더 ‘디자이너스러운’ 접근을 해보려고 했어요. ‘고스티드’도 그런 방향성이 강했던 게임이고요.
지금은 차기작에서 좀 더 대중적인 느낌을 주려고 도트 그래픽을 시도 중이에요. ‘고스티드’와는 꽤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죠.
Q : ‘고스티드’는 어떤 계기로 개발하게 되신 건가요?
A : 저는 늘 ‘세상에 없는 게임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미 있는 게임을 벤치마킹하기보단,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요. 당시 ‘Hue’라는 색을 이용한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Baba is You’ 같은 퍼즐 게임에서 퍼즐의 깊이에 매료돼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고스티드’는 그 두 게임이 저에게 준 자극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다음 스테이지, 다른 전략
Q : ‘고스티드’를 개발하시면서 차기작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A : ‘고스티드’는 게임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깨달음을 줬어요. 특히 홍보요. 게임은 만들었지만 홍보를 거의 안 했거든요. 첫 작품이다 보니까 스트리머의 영향력, 게임이 소비되는 방식, 이런 걸 전혀 몰랐어요. 퍼즐 장르라 난이도가 좀 있어서, 이용자들이 초반엔 신기해하다가 금방 떠나는 일이 많았죠.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더 대중적이고 스트리머들이 재밌게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장르적으로도 매니악한 퍼즐에서 벗어나서, 요즘 유행하는 로그라이크를 시도 중이고요. ‘발라트로’를 하면서 분석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 그럼 현재 준비 중인 게임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 이번 게임은 ‘발라트로’에서 영감을 받았고, ‘지뢰 찾기’에 로그라이크 요소를 섞은 게임이에요. ‘지뢰 찾기’를 기반으로 한 게임은 있지만, 제가 원하는 볼륨이나 퀄리티로 만든 게임은 많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뢰 찾기 + 던전 + 로그라이크 조합으로 대중적인 게임을 만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Q : 게임명이나 스토리는 정해지셨나요?
A : 스토리는 거의 배제할 예정이에요. 설정 정도만 있고요. ‘루프 히어로’처럼 약간 분위기만 깔리는 수준의 스토리로요. 게임 제목은 임시로 ‘매크로 스위퍼’라고 부르긴 하는데, 더 멋진 이름을 찾고 싶어요. 아직 로고도 제작 전이고요.

■ 지뢰판 위에 로그라이크를 펼치다
Q : 이 게임만의 새로운 요소는 무엇인가요?
A : 지뢰 찾기를 단순히 숫자 찾기로만 쓰지 않고, 다양한 요소를 섞었어요. 지뢰 외에도 아이템, 트랩, 몬스터, 상자 같은 요소가 있고요. 목표는 보드를 탐색하면서 출구를 찾아 나가는 거예요. 보드를 내가 직접 구성하고 바꾸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덱 빌딩처럼 내 전략에 따라 진행 방식을 바꿔가며 플레이하는 거죠.
Q : 출시는 언제쯤 예상하시나요?
A : 원래는 올해 4월 완성을 목표로 했지만, 지금은 BIC 출품용 데모를 먼저 준비 중이에요. 출시까지는 1년 정도 더 걸릴 것 같고요. ‘고스티드’ 때와 달리 이번엔 데모부터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홍보에도 힘을 쏟고 있어요.
Q : 출시 시점에 맞춰 인터뷰 한 번 더 진행해도 좋을 것 같네요.
A : 좋습니다. 저는 트위터에 이미지도 종종 올리고 있고, 인디 개발자 모임에도 나가면서 꾸준히 공유하고 있어요. 언제든지 인터뷰는 환영입니다.

■ 제 색깔을 담은 게임, 그게 목표입니다
Q :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을 들려주세요.
A : 목표는… 잘 돼서 퇴사하는 거죠. (웃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취미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한 게임을 너무 오래 만들면 힘들다는 걸 알아서, 2년 안에 하나씩 완성해보자는 게 제 방향입니다. 그리고 계속 1인 개발자로 작업할 것 같아요. 협업은 하겠지만, 기본은 혼자 만들고 싶어요. 게임잼에서 만들었던 추리 게임도 정말 애착이 커요. 7600개 중 200위 정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어요. 미니멀한 라인 드로잉 스타일이 반응이 좋아서 언젠가 정식 게임으로 만들고 싶어요.
Q : 그거 뺏기면 안 되죠! (웃음)
A : 이미 공개된 게임이라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언젠가 꼭 다시 만들어보고 싶어요.
Q : 인디 게임 시장에서 목표나 방향성이 있으실까요?
A : 사람들이 “이 사람, 좋은 게임 만든다”라고 해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인디 게임계에 뭔가를 주장할 입장은 아니고, 그저 제 색깔을 담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Q : 플레이어에게 전하고 싶은 감정이나 메시지가 있다면요?
A : 게임마다 다르지만, ‘고스티드’는 ‘신박하다’는 감정을 주고 싶었어요. 퍼즐을 다 클리어한 이용자들이 그 감정을 느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정말 뿌듯했죠. 추리 게임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으로, 머지 게임은 무지성 타임킬링용으로, 각 게임마다 전달하고 싶은 감정을 조금씩 이뤄냈던 것 같아요. 이번 지뢰 찾기 게임은 ‘발라트로’처럼 성취감과 중독성을 주고 싶어요. 완성되면 더 많은 고민 끝에 좋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 지금 정말 중요한 시기 같네요.
A : 그렇진 않아요. 이건 생업이 아니라서요. 저는 회사도 잘 다니고 있고, 게임은 즐기면서 만드는 거라 큰 부담은 없어요. 물론 데모는 빨리 만들어야 하긴 하지만요. (웃음)

■ 인터뷰를 마치며: 다음 스테이지를 향해
‘게임은 즐겁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는 인터뷰였습니다. 생업이 아닌 취미로 시작하셨지만, 그 속에 담긴 열정과 고민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스튜디오 안은 혼자서, 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게임을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쌓여가는 깊이와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아직 이름도, 로고도, 완성도도 정해지지 않은 이번 지뢰 찾기 로그라이크 게임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할지, 천천히 기대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 안이 만들어나갈 다음 한 수는, 분명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입니다.
기고 : 게임 테스트 플랫폼 플리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