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인가, 마세라티인가. 이 질문은 그레칼레 폴고레(Grecale Folgore)를 시승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물음이었다. 내연기관 모델과의 간극을 최소화하면서도 브랜드의 고유성을 유지하려는 그레칼레 폴고레는, 화려함 대신 정제된 감성을 택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마세라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트로페오(Trofeo)와의 비교 속에서 어떤 차별점을 보여주는지, 이번 시승을 통해 풀어보았다.

그레칼레 폴고레는 외관만 보면 내연기관 모델과 거의 구별이 가지 않는다. 전기차 특유의 막힌 라디에이터 그릴이나 미래지향적 디자인 요소를 기대했다면 다소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의도다. 마세라티는 전기차에서도 브랜드 고유의 분위기, 즉 고급스럽고 클래식한 이미지를 지키고자 했다. 익숙함 속에서 전동화를 느끼게 하는 접근법이다.

실내 공간 또한 적당한 수준이다. 지나치게 넓지도, 좁지도 않다. 대형 SUV 수준의 공간감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운행에서는 부족함을 느낄 일이 없다. 외관에서 느껴지는 균형 잡힌 비례감은 실내로도 이어진다.

폴고레는 듀얼 모터 시스템을 기반으로 최대 558마력의 출력을 발휘한다. 제로백은 4.1초. 수치만 보면 고성능 전기 SUV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주행 질감은 의외로 부드럽고 절제되어 있다. GT 모드에서의 주행은 부드러운 서스펜션과 정숙한 실내 덕분에 매우 안정적이며, 에어 서스펜션과 전자제어 시스템의 조합은 전기차 특유의 낮은 무게중심과 어우러져 편안함을 극대화한다.
특히 회생 제동 시스템은 인상 깊다. 대부분의 전기차처럼 회생 제동을 강하게 세팅하면 이질적인 감각을 주기 마련인데, 폴고레는 이 감각마저 절제했다. 운전자가 직접 조절할 수 있는 레버가 있어 단계별로 회생 제동을 조정할 수 있지만, 가장 강하게 설정해도 급격한 제동감은 덜하다.
다시 말해, 폴고레는 전기차이지만 전기차 같지 않은 주행 질감을 제공한다. 조용하지만 둔하지 않고, 부드럽지만 물렁하지 않다. 마세라티는 이 차를 통해 전기차에 기대되는 모든 "감각"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GT 모드에서의 정숙함은 분명 인상적이다. 하지만 스티어링 반응이 살짝 늦고, 차체의 반응도 여유가 있다. 반면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서스펜션은 단단하게 바뀌고, 조향 반응도 즉각적으로 바뀐다. 특히 고속 구간에서는 이 차가 갖고 있는 고성능 전기 SUV로서의 본색이 드러난다.
의외로 스포츠 모드에서도 승차감은 거칠지 않다. 오히려 더 단단한 반응이 차량을 정제되게 다듬는 느낌이다. 단단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민첩하지만 과도하지 않다. 이는 무게가 2.5톤에 달하는 차량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인상적인 밸런스다.

폴고레를 시승한 뒤, 바로 이어서 트로페오를 탔다. 단번에 드러나는 차이는 사운드였다. 전기차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우렁찬 엔진음이 귀를 자극했고, 페달을 밟는 족족 반응하는 가속감은 폴고레와는 또 다른 종류의 짜릿함이었다.
트로페오는 V6 3.0L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하고, ZF 8단 자동변속기와 짝을 이룬다. 최고출력 530마력, 최대토크 63.2kg〮m,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을 3.8초 만에 끝낸다. 최고시속은 285km. 출력은 폴고레보다 낮지만, 중속 이후의 가속감은 오히려 더 강렬하다. 가속 페달을 밟을 때 전해지는 기계적인 떨림과 사운드는 마세라티가 고집해온 감성의 정점에 있다.
놀라운 점은 주행 질감이다. 폴고레와 트로페오의 파워트레인은 전혀 다르지만, 코너에서의 반응성, 서스펜션의 작동 감각 등에서 두 차량은 유사한 특성을 공유한다. 동일한 서스펜션 세팅 덕분일 수도 있지만, 마세라티가 의도적으로 양쪽 차량의 질감을 맞추려 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폴고레와 트로페오, 두 차량은 지향점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일상에서의 여유와 전통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트로페오는 폭발적 사운드와 강렬한 가속감, 그리고 날카로운 반응으로 운전자를 자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차량은 공통된 마세라티적 감성을 공유한다. 단순히 파워트레인의 차이로 두 차량을 나눌 수 없는 이유다. 폴고레는 내연기관 마세라티에 익숙한 고객들이 전기차로의 전환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면 트로페오는 여전히 엔진의 떨림과 사운드에 매료되는 이들에게 마지막 선물 같은 존재다.

만약 마세라티를 처음 접하고자 하는 이라면 폴고레는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반면 운전의 감각과 사운드를 중시한다면 트로페오가 분명 매력적이다. 특히 가족과의 일상을 고려한다면 정숙하고 부드러운 폴고레는 현실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결국, 이 둘의 선택은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물음이 된다. 마세라티는 두 모델을 통해 전동화의 길과 내연기관의 마지막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갈래의 길 위에서 소비자는 단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쉽지않은 선택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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