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T동아 강형석 기자] 2025년 5월 20일(미국 현지 기준), 구글은 개발자 컨퍼런스 ‘구글 I/O’에서 안드로이드 XR(혼합현실) 기술 기반 스마트 안경(스마트 글라스)을 공개했다. 구글 안경(Google Glass)을 시작으로 스마트 안경 기술을 개발한 구글은 2025년 하반기 이후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플랫폼을 구축해 시장 확대에 나설 방침이다. 안드로이드 XR 스마트 안경 생태계에는 젠틀몬스터(Gentle Monster), 워비 파커(Warby Parker) 등 유명 아이웨어 브랜드가 참여할 예정이다.
구글 안드로이드 XR은 인공지능 서비스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거나 음악을 재생하고 전화 수신도 가능하다. 선택 기능으로 제공되는 렌즈 내장 디스플레이를 쓰면 증강현실(AR) 기반 정보도 볼 수 있다. 안드로이드 XR 플랫폼에 맞춰 최적화하지 않아도 기존 스마트폰, 태블릿용 앱 실행이 가능하게 만들 예정이다. 출시 초기 앱 호환성 혹은 생태계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다.

구글과 달리 메타는 일찌감치 아이웨어 브랜드 레이-밴(Ray-Ban)과 협업해 레이-밴 메타(Ray-Ban Meta)를 출시했다. 투박한 디자인의 스마트 안경이 아니라, 선글라스로 유명한 레이-밴 제품과 큰 차이가 없는 모습으로 출시되어 주목받았다.
1200만 화소 카메라, 오디오 감상, 통화, 메타 인공지능 등 스마트 기기로의 기능도 충실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라이브 스트리밍이 가능한 점도 특징이다. 다만 레이-밴 메타는 안경에 스마트 기기 기능이 포함된 것으로 안드로이드 XR처럼 증강현실 기능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메타는 스마트 안경에 증강현실 기능을 추가한 프로젝트 오리온(Orion)을 개발 중이다. 메타는 증강현실 품질과 안경테 두께를 개선해 실제 양산이 가능하도록 준비할 예정이지만 출시일은 미정이다.
스마트 안경 시장에 구글이 합류한다면 성장은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업 더비즈니스리서치컴퍼니(TBRC)의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스마트 안경 시장은 75억 7000만 달러(약 10조 3436억 원)로 평가됐다. 이는 2023년 67억 1000만 달러(약 9조 1685억 원) 대비 12.8% 성장한 것이다. 시장조사기업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발행한 ‘글로벌 스마트 안경 모델 출하 추적’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스마트 안경 출하량은 200만 대 이상이다. 이 중 메타의 점유율은 60% 가량이다. 2026년 이후 구글의 시장 참여로 두 기업의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정보를 눈 앞에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디지털 광학 기술
스마트 안경의 핵심은 눈앞에 다양한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다. 실내외에서 자유롭게 사용하려면 렌즈 위에 선명한 화면을 구현해야 된다. 따라서 반도체만큼 광학 기술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현재 스마트 안경 렌즈는 일렉트로크로믹(EC – Electrochromic), 서스펜디드 파티클 디바이스(SPD – Suspended Particle Device), 폴리머 분산 액정(PDLC - Polymer Dispersed Liquid Crystal)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쓰인다.

일렉트로크로믹은 렌즈 사이에 투명 전극과 환원ㆍ산화 변색 물질(일렉트로크로믹 층), 전해질 등을 배치해 만든다. 환원ㆍ산화 변색 물질에 전기가 인가되면 투과도가 달라진다. 환원ㆍ산화 변색 물질 구성에 따라 렌즈의 색상을 다양하게 결정할 수 있다. 건물 및 자동차에 적용되는 스마트 창문 다수가 일렉트로크로믹 기술을 쓴다.
일렉트로크로믹 기술은 렌즈를 불투명하게 바꾸는 데에만 전력을 쓰기에 전력 효율이 뛰어난 게 장점이다. 반면, 전기가 흐르는 방향에 따라 색상이 서서히 변하는 구조이기에 전환 속도는 느리다는 평이다. 두 장의 유리 사이에 여러 물질을 넣는 설계 방식은 비용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서스펜디드 파티클 디바이스 기술은 전기로 빛의 투과도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일렉트로크로믹과 같지만 별도 필름을 쓴다는 게 다르다. 필름 내에는 막대 모양의 미세한 부유 입자가 배치되어 있다. 평소에 불투명 상태(검은색)로 존재하다가 필름에 전기가 인가되면 전기장이 형성되고, 막대 입자가 정렬되어 빛을 통과시킨다. 전압에 따라 투과도 조절이 가능하다. 자동차 선루프, 항공기 등에 쓰인다.
반응 속도가 빠르고 비교적 구조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다. 투명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전기를 쓴다는 점이다. 스마트 안경의 증강현실 기능을 장시간 쓰려면 상대적으로 고용량 배터리를 쓸 수밖에 없고, 이는 안경 무게 증가로 이어진다. 미세 입자를 활용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빛이 뿌옇게 번지는 형태로 투과되는 헤이즈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폴리머 분산 액정 기술은 액정과 고분자 소재를 혼합해 만든다. 서스펜디드 파티클 디바이스 기술과 유사하게 액정 분자와 고분자 소재가 무작위로 배치된 상태에서는 빛을 차단하는 효과를 낸다. 이후 전기가 인가되면 두 소재가 전기장 방향에 따라 정렬되면서 투명한 상태가 된다. 전압을 조절해 두 소재의 정렬을 제어, 투명도 변경이 가능하다.
자외선ㆍ적외선 차단 능력이 뛰어나고 사용 범위가 다양한 부분은 장점이지만 투명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전력 소모가 이뤄진다는 부분과 헤이즈 현상 발생 가능성은 극복해야 될 요소로 꼽힌다. 어두운 색이 아니라 흰색을 띈다는 점도 한계다. 하지만 전력 공급이 없는 상태에서 투명함을 유지하는 리버스 모드와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구현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어서 잠재력이 높다.
이처럼 다양한 기술이 개발 중이지만, 증강현실과 접목해 상용화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구글도 렌즈에 마이크로 OLED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증강현실을 구현하는 방식을 쓴다. 비교적 현실적인 설계 방식이지만, 일반 렌즈에 디스플레이를 결합하기 때문에 주변 밝기에 따라 증강현실 경험이 저하될 수 있다. 디스플레이 영역만 선명하게 표시하려면 투명도를 조절할 디지털 광학 기술은 필수다.
스마트 안경 시장 경쟁으로 아이웨어, 배터리, 광학 산업 성장할까?
메타와 구글의 경쟁은 아이웨어, 반도체, 광학 기업 등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메타는 레이-밴, 구글은 젠틀몬스터ㆍ워비 파커와 협업할 예정이다. 시장 상황에 따라 글로벌 아이웨어 브랜드가 뛰어들 여지가 있다. 글로벌 광학 제조사도 디지털 광학 기술 개발에 직접 뛰어들거나 타 기업과 협업을 통한 전용 렌즈 출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 안경 시장은 반도체와 배터리 수요에도 영향을 준다. 스마트 기기이므로 데이터 처리를 위한 애플리케이션 처리장치(AP), 메모리, 저장장치 등 반도체가 필요하다. 장치 구동에 필요한 배터리도 필수다. 현재 메타와 구글 스마트 안경 모두 퀄컴 스냅드래곤(Snapdragon) 칩을 쓴다. 향후 증강현실에 특화된 스마트 안경이 주를 이루면 스냅드래곤 XR 칩 사용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증강현실 구현이 가능한 렌즈 기술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다만 디지털 광학 기술을 적용하지 못하고 빛에 반응해 렌즈 투명도를 바꾸는 포토크로믹(Photochromic)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칼 자이스(Carl Zeiss)의 어댑티브 선 렌즈(Adaptive Sun Lens)다. 이 렌즈는 빛에 반응해 변색되는 소재를 적용, 15초 이내에 짙은 색으로 바꾼다. 선글라스 제조사 해리어(Harrier)는 2019년, 일렉트로크로믹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선글라스를 선보인 바 있다. 증강현실 기능을 갖추지 않았으나 배터리와 전압 조절 장치를 탑재해 렌즈 투명도 조절이 가능했다.
먼저 수혜를 입을 분야는 아이웨어가 될 전망이다. 시장에 먼저 뛰어든 메타는 레이-밴과 협업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차세대 스마트 안경에 대한 협업 외에도 2024년에는 레이-밴의 모회사인 에실로룩소티카에 대한 지분 투자까지 논의한 바 있다.
IT동아 강형석 기자 (redbk@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