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공간은 브랜드의 메시지
애플은 언제나 '본질'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제품 디자인부터 브랜드 메시지까지, 애플은 항상 간결함과 명확함을 강조한다. 공간 설계 역시 마찬가지다. 애플의 오피스와 매장은 단순히 제품을 진열하거나 직원이 일하는 장소가 아니라, 애플이 가진 철학을 명확히 전달하는 무대이다. 공간을 통해 사용자는 애플의 브랜드를 직관적으로 경험한다.
스티브 잡스의 유산, 애플파크

애플파크는 스티브 잡스가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이다. 이 공간의 핵심은 자연과의 공존, 절제된 디자인, 지속가능성이다.
먼저, 애플파크는 거대한 원형 구조로 설계됐다. 이는 무한한 협업을 상징하며, 직원 간의 소통과 교류를 극대화한다. 모든 사무실은 개방형으로 구성되어 수평적 소통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원형 건물 중앙은 방대한 녹지와 숲이 자리 잡고 있어, 직원들이 언제든지 자연 속에서 휴식하고 창의성을 충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애플파크 설계 과정에서 지속가능성 역시 철저히 지켜졌다. 100% 재생 에너지로 운영되며, 지붕 전체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은 캠퍼스에 필요한 대부분의 전력을 공급한다. 또한, 자연 채광과 자연 환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했다. 이러한 공간 전략은 직원들에게 회사의 철학을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결국 애플은 단순히 일하는 장소가 아닌, 일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Less is MORE"

애플스토어는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상징적 공간이 됐다. 뉴욕 5번가, 도쿄 긴자, 밀라노 피아짜 리베르티 등 애플스토어가 위치한 지역은 하나같이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매장의 설계는 투명성과 접근성을 핵심으로 삼고, 브랜드 철학을 시각적이고 공간적으로 명확히 표현한다.
애플스토어 공간은 투명한 유리와 미니멀한 내부 구조로 디자인됐다. 방문자가 매장 내부를 쉽게 들여다볼 수 있고, 그들에게 브랜드의 투명성과 신뢰감을 전달한다. 매장 내부는 '포럼(Forum)'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문화 행사, 워크숍, 교육 세션이 열린다. 단순히 제품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방문자가 애플 제품과 철학을 경험하고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느끼도록 유도한다.
특히, 애플스토어 설계에서 로컬 문화는 중요한 요소다. 밀라노의 애플스토어는 이탈리아의 전통 광장(피아짜) 문화를 반영하여, 매장을 열린 광장 형태로 구성했다. 뉴욕 5번가 매장은 도시의 상징적 존재감을 살려 거대한 유리 큐브로 설계됐다. 지역적 맥락을 존중하고 이를 브랜드 철학과 연결하는 방식은 애플이 글로벌 브랜드이면서도 지역사회와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도시의 아이콘

애플의 공간 전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뉴욕 5번가 애플스토어의 리모델링이다. 이미 도시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이 매장은 대대적인 재단장을 통해 브랜드 철학을 더욱 명확히 구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리모델링의 핵심은 매장 입구를 상징하는 유리 큐브다. 기존에는 90개의 유리 패널로 구성된 이 큐브는 리모델링을 통해 단 15개의 대형 유리 패널만으로 간결하게 재구성됐다. 내부로 이어지는 유리 계단과 목재 진열대 중심의 인테리어는 그대로 유지하며, 외부 구조만 간결하게 변화시킨 이 프로젝트에는 총 660만 달러(한화 약 90억 원)가 투입됐다.
결과적으로 뉴욕 5번가 애플스토어의 리모델링은 브랜드 철학과 도시 문화, 미학적 완성도를 하나의 공간에 효과적으로 녹여낸 사례다. 부품 수를 줄이고 단순함을 강조하는 이 변화는 애플이 추구하는 'Less is More(적을수록 더 좋다)'라는 철학을 공간적으로 선명하게 보여주며, 현대 도시의 브랜드 공간이 아이콘으로서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명확한 기준이 되고 있다.
미니멀리즘, 본질로 돌아간다
이 같은 애플의 공간 전략은 결국 '본질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 본질에 충실한 간결함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는지 애플은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필자 역시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며 수없이 많은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만 남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현장에서 늘 체감한다.
애플의 공간들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브랜드가 가진 철학과 신념을 가장 명료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제품과 공간이 명확한 철학 아래 일관성 있게 연결될 때, 브랜드는 그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제안하게 된다. 앞으로 우리가 만들 공간 또한 그런 명료한 철학과 본질에 충실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행과 기술적 화려함에 흔들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를 담는 공간 말이다.
글 / 정훈구 담장너머 대표 (wjdgnsrn95@naver.com)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간기획사인 담장너머의 공동대표. 연세대학교 대학혁신지원사업 전문가이며, 마포문화재단 전시 코디네이터, 하나금융 소셜벤처 창업 퍼실리테이터로도 활동했다.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