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마약이다.”
게임이 단순한 여가가 아닌 중독성을 지닌 질병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주장은 수년간 지속되어 왔지만,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게임 이용 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를 발표하며 현실화 됐다.
이 개정안은 현재 유예 기간을 거치는 중이며, 한국의 질병 코드 체계(KCD)에 빠르면 2026년에 이를 반영한 개편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 발표는 단순한 의료 행정 절차를 넘어, 게임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정책의 방향성, 그리고 디지털 문화 자체의 해석을 둘러싼 거대한 논쟁을 촉발했고, 현재는 다소 잠잠해졌지만, 게임 산업계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같이 남아 있는 중이다.

[WHO의 결정으로부터 시작된 논란]
한때 과장된 표현 혹은 농담처럼 여겨졌던 ‘게임 중독 질병’이 현실로 다가온 것은 2019년 5월이었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 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국제질병분류(ICD-11) 초안에 포함시켰고, 2019년 제72차 총회에서 이 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 결정으로 게임은 공식 질병 코드(코드 6C51)로 등재되면서, 처음으로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의 영역에 포함됐다.
WHO가 제시한 '게임 이용 장애'의 정의는 상대적으로 명확하다. 디지털 또는 비(非) 디지털 게임의 사용이 개인의 일상생활에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고, 이러한 패턴이 최소 12개월 이상 지속되면 질병으로 본다는 것이다.
치료와 정책 개입을 위한 기준 마련이라는 점에서 일부 의료계는 환영했지만, 이 결정은 게임을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이용자와 게임 산업 전반에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은 WHO의 결정에 민감하게 반응한 국가 중 하나였다. 실제로 한국은 2013년 게임을 술, 도박, 마약 등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정의하는 ‘게임중독법’을 신의진 의원실에서 발의한 바 있었고, 해당 법안 발의 당시 모 교수가 “4대 중독에서 게임을 빼느니 마약을 빼야 한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기도 하는 등 게임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국가로 분류되었다.
정부의 태도도 엇갈렸다. 게임의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게임에 대한 부정적 낙인을 심화시킬 수 있다.”라며, 질병화에 반대했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국회 토론회를 통해 게임 질병화가 국내 콘텐츠 산업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경고했다.
이에 비해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는 WHO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중 보건복지부는 기자간담회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볼 수 있다"라는 발언을 하여 업계 반발을 사는 등 각 부서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게임 중독 논문에 대한 편향성 논란]
학계에서도 ‘게임 이용 장애’ 논의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게임 중독 찬성 측은 “게임 이용 장애는 실제 임상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며, 질병 코드가 있어야 치료 및 통계가 가능하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반대 측은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정신질환의 원인을 단순화시킨다”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국내의 경우 이 찬성 논리를 수용한 논문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2019년 5월 연세대 산학협력단이 제출한 메타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3~2017년 사이 전 세계에서 발표된 게임 중독 관련 논문 중 한국이 가장 큰 비중(13.9%)을 차지했으며, 이 중 89%가 게임 이용 장애를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이 논문 중 82.4%는 정부의 지원을 받은 논문이었고, 정신의학계의 논문 비중은 59.3%로, 세계 평균(28.4%)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여기에 2024년 동명대학교 간호학과의 이미련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게임 중독’을 주제로 한 국내 학위논문은 박사 34편, 석사 446편으로 총 480여 편에 이르며,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연구한 경우가 234편(52.6%)으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생이 151편(33.9%)으로 그 뒤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중국, 미국, 호주 등의 국가에서 청소년을 비롯해 대학생, 성인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논문의 절대다수가 미성년자만을 대상으로 한 연구만이 진행되는 상황인 셈이다.
특히, 이 국내 게임 중독 관련 논문 중 상당수가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전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윤태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포럼을 통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나온 한국의 게임중독 관련 논문 중 89%가 게임 중독을 전제하거나 동의한 상태에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라고 발언하여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WHO의 결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국제사회에서도 WHO의 결정에 대해 의문부호를 내비쳤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협회(ESA), 국제게임개발자협회(IGDA)는 WHO에 항의 서한을 제출하며 “게임 이용장애라는 개념은 문화적 차이를 무시하고, 과학적으로도 불충분하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미국의 표준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을 통칭하는 'DSM'를 편찬하고 있는 APA(미국 정신의학회)는 WHO의 결정 이후에도 DSM-5에서 게임 장애를 여전히 '추가 연구가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기도 하다.
진단 기준의 모호함과 과잉 병리화를 문제 삼는 이들도 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의 낸시 페트리 교수는 "게임 장애의 진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오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고, 워털루 대학의 레나르트 나케 교수는 "정상적 게임 이용자에게 낙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또한, 옥스퍼드대 앤드류 쉬빌스키 교수는 “게임은 질병의 원인이 아니라, 외로움과 우울 같은 심리적 문제의 피난처”라며 WHO가 인과 관계를 단순화했다고 비판했다.

[2019년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게임 중독의 과학적 근거는 밝혀졌을까?]
그렇다면 2019년 WHO의 결정 이후 6년이 지난 2025년 현재 게임 중독의 과학적 근거는 밝혀졌을까?
아쉽게도 이는 아직도 미지수다. 필리핀 마닐라대학교의 한 연구에서는 3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소년의 게임 중독과 우울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r=0.31, p<0.001)가 나타났다고 발표했지만,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 것이 결과인지에 대한 인과성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아울러 게임에 대해 한국 못지않게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던 중국에서도 최근 진행된 종단 연구에서도 게임 몰입이 학업 성취도 저하와 자기조절 능력 저하와 관련이 있지만, 게임 자체보다는 또래 관계나 가정환경 등 외부 요인이 주요 변수로 지목됐다.
여기에 일부 뇌과학 연구에서는 게임 과몰입 이용자에게서 도파민 보상회로의 과활성화가 관찰됐다는 보고도 있지만, 이는 특정 사례에 국한된 결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WHO의 결정 이후에도 ‘게임을 치료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FDA는 2021년 FDA가 ADHD 아동을 위한 게임형 디지털 치료제 '엔데버Rx'(‘EndeavorRX’)를 공식 승인했고, 이후 2024년에는 ‘EndeavourOTC’를 성인 ADHD 치료용 게임으로 승인했다.
여기에 중국에서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갈망 행동 개입(CBI), 수용·인지 재구성 프로그램(ACRIP) 등을 활용한 집단 상담이 게임 중독 증상 완화뿐 아니라 우울과 불안 감소, 학습 집중력 향상에 효과가 있다는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더욱이 게임 질병 코드를 등재한 WHO마저 2020년 코로나 팬더믹이 심화되자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총장이 공식 SNS를 통해 자가 격리 방법의 하나로 게임을 권하여 빈축을 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WHO의 결정 이후 6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게임 이용 장애가 명확한 질병군으로 정립되기 위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더 폭넓고 정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학계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