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통계청이 게임 과몰입(게임 이용 장애, Gaming Disorder)을 질병으로 등재한 WHO의 제11차 국제질병분류(ICD-11)를 반영한 제10차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의 초안을 2025년 연말 공개하기로 한 것이 알려지면서 게임 산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간 2030년 개정, 2031년 시행을 앞둔 KCD-10에서 질병 등재 여부가 고려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KCD-10 초안이 2025년 내 발표되면 사실상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등재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게임 이용 장애는 WHO가 2019년 ICD-11에 등재한 질환으로, 12개월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게임 이용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를 뜻한다.
이에 게임 이용 장애의 질병 코드 등재와 관련해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의료계는 명확한 치료가 가능해짐을 강조하고 있으며, 반대 입장에서는 과학적 검증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5월 19일 발간한 '2024년 게임 이용자 패널 연구(5차년도)'에서는 게임에 대한 몰입이 게임 이용과는 상관이 없다는 결과도 발표됐다.

만약 게임이 질병 코드로 KCD-10에 등재된다면, 단순히 치료 목적의 질병 코드가 하나 생기는 것을 넘어 교육이나 산업은 물론 국방과 법적인 파장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의료계에서는 KCD-10에 게임 이용 장애가 등재되면 명확한 진단 체계가 정립되고 치료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등에서 정식 진단과 치료가 가능해지며, 일부 항목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도 검토될 수 있다. 질병 코드가 부여되면 전국 보건소 및 중독관리센터를 통한 전문 치료망도 확대될 수 있다.
동시에 게임 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공식 인정되면, 청소년을 중심으로 한 예방 교육이 강화되고 심리 상담, 자가진단 시스템, 학부모 대상 교육 자료 등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단순히 질병 코드 하나가 새롭게 등재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게임업계의 존망이 달릴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최근 게임 이용이 게임 이용 장애와 연관이 없다는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2022년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연구' 보고서를 통해 질병 코드가 등재될 경우 국내 게임 산업이 향후 2년간 약 8조 8,000억 원의 경제적 손실과 8만여 개의 일자리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산업계는 질병 코드화가 현실화될 경우 지금보다 규제 수위가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게임사들은 플레이 시간 알림 같은 과몰입 방지 기능은 물론, 사행성 콘텐츠 축소, 청소년 몰입 방지 장치 강화 등 책임 이행 요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해외 게임들의 경우, 국내 법이나 자율규제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게임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몰입 요소를 배제하는 구조적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로 인해 게임 산업 전반에 악영향이 미치고, 부정적 이미지 확산도 우려된다.
더불어 법적 소송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용자의 과몰입으로 인한 손해를 두고 게임사와의 책임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 국내에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폐암 등의 원인을 물어 53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해당 비용은 흡연 뒤 폐암·후두암 진단을 받은 환자 3,465명에게 지급된 건강보험 급여다. 1심에서는 공단이 패소했지만, 조만간 2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담배 회사들이 개인이나 정부와의 소송에서 패해 거액의 배상금을 물은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에서는 1998년 50개 주 정부가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합의금 2,460억 달러(약 330조 원)를 받았고, 폐암으로 사망한 남성의 유족에게 2,830만 달러(약 384억 원)를 배상하라는 판결도 나온 바 있다. 이런 소송에서 담배가 게임으로 바뀌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여기에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대로 e스포츠 구단이나 행사에 대한 스폰서 지원이 중단될 수 있고, 게임 이용 장애가 정신 질환으로 등록되었을 때 병역 기피 문제 등도 새로운 파생 이슈로 떠오를 수 있다. 특히 인구 감소로 인해 현역 판정률이 83%에 달하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병역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이처럼 게임 이용 장애는 단순히 정신 질환 하나가 질병으로 등재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여러 영역에 걸쳐 큰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입장차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새롭게 들어선 정부가 게임 진흥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번 정부에서는 KCD 개정안에서 게임 이용 장애를 제외하거나 유보할 가능성이 커졌지만, 통계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고려해야 할 변수는 여전히 많다.
정부는 과학적 근거 확보와 산업 영향 분석을 바탕으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