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의 환경 규제를 폐기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테슬라와 전기차 제조사는 물론, 전기차 전환에 막대한 투자를 한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백악관)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주의 전기차(EV) 의무 판매 및 디젤차 배출가스 규제를 폐지하는 법안 3건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환경 규제와 자동차 산업 전반에서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대립이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법안 서명식에서 “이번 서명은 캘리포니아의 터무니없는 명령을 영원히 끝낼 것”이라며, “미국 전체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려는 급진적 좌파의 시도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서명으로 2035년 내 연료차 판매 전면 금지를 골자로 한 캘리포니아주의 EV 의무화 계획과 EPA가 바이든 행정부 시절 승인한 캘리포니아 저질소산화물 규제, 무공해 중대형 트럭 비율 확대에 대한 강제적 목표치 등이 폐지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겨냥해 “전기차만을 강요하는 그의 계획은 전기조차 부족한 주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캘리포니아에는 블랙아웃과 브라운아웃(전력 제한)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곳에선 전기차조차 제대로 충전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한 “17개 주가 캘리포니아의 규제를 따르고 있어 연방 차원의 대응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서명식에는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숀 더피 교통부 장관, EPA 국장 리 젤딘 등이 함께 했으며, 이들은 모두 ‘미국 자동차 산업 보호’를 강조했다.
젤딘 국장은 “캘리포니아의 규제는 연방 기준을 훨씬 초과하며, 산업 전반에 비현실적 부담을 지운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는 1967년 미국에서 최초로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도입한 이래, 연방정부로부터 독자적 환경 규제를 허용받아왔다. 지난 1970년 제정된 연방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은 캘리포니아에 연방 기준을 초과하는 규제 권한을 부여했으며, 이후 여러 주가 이를 따르기 시작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캘리포니아의 CO₂ 배출 기준 강화를 승인했고, 2020년 가빈 뉴섬 주지사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욱 강화돼 EPA가 캘리포니아의 규제를 공식 승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번 서명을 통해 바이든 시절 승인된 캘리포니아의 ‘연방 면제권한(Waiver)’ 자체를 박탈, 이를 의회 승인 기반의 ‘의회검토법(CRA)’ 절차로 영구 폐기했다.
산업계에서는 일단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미국트럭운송협회(ATA)의 크리스 스피어 회장은 “오늘은 미국이 ‘캘리포니아화’되는 것을 막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미국석유협회(API)의 마이크 서머스 회장도 “이번 조치는 미국 소비자와 제조업, 에너지 안보를 위한 중대한 승리”라고 말했다.
GM도 공식 입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전국적 배출 기준을 원해 왔으며, 이번 조치는 경쟁력 있는 혁신 투자와 소비자 선택권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테슬라와 같은 전기차 전문 제조사 그리고 전기차 생산 시설 구축 및 전환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완성차들은 타격이 클 전망이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테슬라의 안방이자 최대 시장으로 전기차 판매 의무화가 폐지되면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됐다. 캘리포니아는 테슬라의 미 전체 판매량 가운데 35%가량을 차지하는 시장이다.
가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성명을 통해 “트럼프는 또다시 캘리포니아에 대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며 “우리는 이 불법적 연방 침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 법무장관 롭 본타도 “이번 조치는 캘리포니아 시민의 생명과 공기 질을 위협하는 위헌적 조치”라며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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