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도시'를 표방하며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게임사들을 유치해 엄청난 세금 수혜를 입어온 성남시가 전 지자체 중 가장 앞장서서 '게임업계 죽이기'를 시도해 논란이 예상된다.
성남시는 최근 '중독예방 AI 콘텐츠 공모전'을 개최하면서 ‘알코올·약물·도박’과 함께 게임을 ‘4대 중독' 요소로 묶으며 대표적인 사회적 해악 요소로 분류했다. 매년 게임업계와 IT업체들을 통해 수천억 원의 세금을 거둬들이는 성남시에서 전 지자체 중 가장 먼저 '게임 질병화'를 공식 천명했다는 소식에 게임업계의 공분이 쏟아지고 있다.

게임업계 덕에 재정자립도 1위 기록한 성남시.. '게임은 4대 악?'
성남시는 경기도 31개 시· 군 중에서 재정자립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재정자립도는 총예산규모 중 자체수입인 지방세와 세외수입의 비율을 측정한 것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지자체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자립 능력이 높다는 뜻이다.

이렇게 성남시가 부유한 이유는 게임사와 IT업체들의 지방소득세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성남시는 지방세로 1조 4,932억 원을, 지방소득세로 7,448억 원을 거둬들이며 게임업계로부터 톡톡히 수혜를 입었다.
실제로 성남시는 올해 4월에 보도자료를 통해 "풍부한 재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업의 유치와 첨단산업 중심지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과학고, AI 교육연구시설 등 교육 인프라 확충, 민생경제 활성화 및 복지 정책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게임업계에 대한 진흥을 해도 모자랄 판에 세금을 활용해 '중독예방 AI 콘텐츠 공모전'을 진행하고, 게임을 ‘알코올·약물·도박’과 동일 선상의 해악요소로 분류하면서 성남시는 '인면수심', '잡은 물고기에 농약을 뿌린 격'이라는 거친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생존의 기로에 선 국내 게임업계, 성남시 행보에 '망연자실'
현재 국내 게임업계는 지난 2019년에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에서 발표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로 인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 개정안은 현재 국내에 바로 적용되지 않고 유예 기간을 거치는 중이지만, 빠르면 오는 2026년에 이를 반영한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고 있다.

만약 2026년에 정부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화를 공식화하면, 게임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 질병으로 정의되고, 직·간접적으로 게임사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매출 하락은 물론이며 고용 불안, e스포츠 축소 등 전 방위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잃을 것임이 자명하다.
때문에 세금 수혜를 입고 있는 성남시 입장에서는 게임의 질병화에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밝혀야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오히려 전 지자체 중 가장 먼저 게임을 질병처럼 취급하면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남시 내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이번 사안이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짤막하게 답변했다.
성남시의 이해 못 할 행보, 도대체 왜?
그렇다면 성남시는 왜 섣불리 게임을 4대 중독 물질로 정의했을까. 성남시 내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지침'이라고 답변했지만,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의견을 내고 있다. 성남시 자체가 신상진 시장(국민의힘) 체제로 오면서 게임에 부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1년 7월에 성남시는 국내 최초로 e스포츠진흥위원회를 발족하며 e스포츠 육성을 전면 약속했지만, 신상진 시장이 당선된 후 유명무실해졌다. 재임 기간 동안 e스포츠 경기장 사업이 백지화되는 등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또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 때 국민의힘에서 공약집을 통해 게임을 도박, 알코올, 마약 등과 함께 분류하며 중독을 예방하고 치료 회복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성남시의 행보가 해당 공약과 괘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신상진 성남시장이 의사 출신이며, 대한의사협회장 등 다양한 협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쏠린다.
과거 보건복지부 산하의 '한국중독정신의학회'에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게임을 포함한 '중독관리법' 통과와 '국가중독관리위원회' 설치가 반드시 입법화를 이뤄내야 할 '숙원사업'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만약 신 시장이 이러한 의료 집단과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이번 사태도 그 연계선상에 놓일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고심 중인 게임업계.. '판교 탈출해야 하나'
현재 성남시 판교 일대에는 넥슨, 엔씨소프트, NHN, 스마일게이트, 네오위즈 등 국내를 대표하는 게임사들이 집결해 있다. 게임 개발의 총 산지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들 대형 개발사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사들이 꼭 판교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3대 게임사로 도약한 크래프톤은 일찌감치 판교를 떠나고 역삼 사옥을 지나 서울 성수 쪽에 사옥을 건설하고 있다.
넷마블도 서울 구로동에 있는 사옥을 판매할 것이라 발표한 후 과천에 대규모 사옥을 건설하고 있으며, 펄어비스도 과천에, 컴투스 그룹은 가산에서 을지로에 새로운 터를 잡고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아직까지는 굵직한 게임사들이 여전히 판교를 지키고 있지만 ▲비싼 임대료 ▲교통 체증 ▲비싼 밥값 등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성남시가 게임업계를 계속 자극하고 푸대접할 경우 판교를 떠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민주당 게임특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김정태 동양대학교 교수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12년 전 게임인들의 결사반대로 불발된 4대 중독법을 재점화·현실화하려는 것이냐"라는 게임인연대를 대표한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다음은 게임인연대의 입장문 전문이다.
[게임인연대 입장문]
게임인연대는 4대 중독 연상 '성남 AI공모전'을 결사 반대합니다.
게임인연대는 게임셧다운제 반대와 게임중독법 반대 및 게임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개설되어 운영되어 오고 있습니다.
12년전 게임인들의 결사반대로 게임을 알코올,약물,도박과 함께<4대 중독>으로 규정하려다 불발된 적이 있습니다.
새정부 출범 직후부터,<4대 중독법>발의에 재점화 및 현실화하려는 성남시 주최 "AI를 활용한 중독예방 콘텐츠 제작 공모전" 즉,<2025 AI공모전> 은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2025 AI공모전>의 주최가 성남시로 명시되었는 바, 성남시장은 이 공모전을 즉각 중단 및 게임인들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성남시장은 본 공모전이 개최된 해당 경위를 게임인에게 소상히 밝히길 촉구합니다.
이 공모전이 계속 운영될 시에는 게임인들은 무기한 공모전 저지를 위한 후속 캠페인을 전개할 것을 밝히는 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