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6월, 독일 쾰른. 외부에는 간판 하나 없이 조용한 건물이 하나 있다. 하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자동차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는 세계가 펼쳐진다. 바로 '토요타 컬렉션(Toyota Collection)'. 이곳은 토요타의 과거 유산과 미래의 비전, 기술의 집약과 문화적 상징이 맞물려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글,사진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편집장)

'토요타 컬렉션'은 일반 대중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있으며, 전시된 차량을 눈으로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차량은 문을 열고 내부에 탑승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실제 도로 주행이 가능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컬렉션 내 다수 차량에는 독일 번호판이 부착되어 있으며, 미디어 행사나 클래식카 퍼레이드 등에서 실주행에 투입되기도 한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토요타 스포츠카의 계보를 상징적으로 구성한 전시 공간이다. 셀리카 GT, AE86, 그리고 GR86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성능 뿐만 아니라, 토요타가 지향해온 '운전의 즐거움'이라는 철학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AE86은 1980년대 후반 등장한 상징적인 모델이다. 전륜구동이 대세였던 당시, 토요타는 이 모델에 후륜구동 방식을 적용하고, 955kg에 불과한 가벼운 차체에 4기통 16밸브 자연흡기 엔진을 얹었다. 이 조합은 AE86을 드리프트 문화와 튜닝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자동차팬들에서 '86'이라는 숫자가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시된 AE86은 완벽하게 보존된 해치백 트레노 모델로, 한 말레이시아 소유자가 유럽까지 자가 운전으로 여행하며 컬렉션에 차량을 기증한 사례다. 차량 내부에는 말레이시아 번호판과 2019년 비넷이 그대로 부착되어 있어, 그 여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컬렉션의 또 다른 핵심은 기술 혁신 전시 구역이다. 1세대 프리우스는 유럽에서 실제 도로 주행을 통해 개발 테스트를 진행했던 차량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옆에는 프리우스 2세대 모델의 절개형 전시물이 있어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내부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수소연료전지차 미라이도 마찬가지다. 외관뿐 아니라 시스템 구동 원리까지 투명하게 드러낸 전시 구성은, 토요타가 왜 하이브리드 및 수소차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점할 수 있었는지 실감하게 만든다. 일반 방문객도 복잡한 구동계 구조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차량 절개 전시, 설명 패널, 실물 부품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토요타 컬렉션에서는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는 이동성 개념도 엿볼 수 있다.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공개된 다양한 퍼스널 모빌리티 제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동 휠체어, 스쿠터형 이동 장치 등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솔루션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제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모두를 위한 이동의 자유'라는 모빌리티 철학의 구현물이다.

이와 함께 미라이 수소차에 파리올림픽 마스코트를 입힌 차량도 전시되어 있어, 스포츠와 기술, 디자인이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토요타 세라(Toyota Sera)는 위로 열리는 버터플라이 도어와 고음질 오디오 시스템으로 유명한 모델이다. 이 차량은 당대 기술적 완성도를 추구한 모델로 평가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차량으로는 토요타 IQ를 기반으로 제작된 'IQ 디스코'가 있다. 차량 트렁크에 DJ용 믹서와 장비가 탑재되어 있으며, 각종 이벤트에서 실제 퍼포먼스를 위한 장비로 활용된다.

엘비스라는 별명이 붙은 셀리카 역시 눈에 띄는 모델이다. 미국 머슬카 스타일의 외관과 별무늬 장식 인테리어가 결합되어, 전형적인 토요타 차량들과는 다른 느낌을 전한다.

유럽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토요타 센츄리(Toyota Century)도 이곳에서는 감상할 수 있다. 왕실과 정부 고위 관료를 위한 의전용 차량으로, V12 5.0L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유일한 토요타 양산 모델이다. 이 차량은 좌측 핸들 모델로, 유럽 시장에서도 특별히 제작된 희귀 버전이다.

사륜구동 전시관에서는 다양한 세대의 랜드크루저가 눈길을 끈다. 이 모델은 1950년대 군용 지프에서 시작해 오늘날까지 약 1천만 대 이상이 생산된 글로벌 오프로더다.

이 중에는 쉐보레 엔진이 탑재된 '쉐보타'라는 별명의 특이 모델도 있다. 또 한 대는 영화배우 로저 무어가 스위스 별장에서 실제 사용한 차량으로, 스타의 일상과 토요타의 실용성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토요타 컬렉션에서 가장 오래된 차량이자, 일본 스포츠카의 상징인 2000GT는 야마하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으며, 직렬 6기통 2.0L 엔진과 리트랙터블 헤드라이트, 더블 버블 루프 등 독창적 디자인 요소가 인상적인 차량이다. 제임스 본드 007 영화에 등장하면서 세계적 인지도를 얻었으며, 남아 있는 실물은 350대 미만, 경매 시세는 100만 유로를 넘는다.

렉서스의 첫 모델 LS400은 내구성의 상징이다. 전시 차량은 첫 번째 생산 엔진과 변속기로 100만km를 달린 이력이 있으며, 이는 토요타 품질의 상징적 증거로 통한다. LFA는 5.0L V10 자연흡기 야마하 엔진을 장착한 슈퍼카로, 토요타가 가진 기술력의 정점이다.

이어 등장한 LC500은 독일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버전이 함께 판매되며, 브랜드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토요타 컬렉션'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차량들이 여전히 주행 가능 상태로 유지되며, 문화적 상징으로 살아 움직인다. 기술, 디자인, 스토리텔링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이 공간은 '토요타 철학의 물리적 구현물'이다. 직접 탑승하고, 문을 열고, 이야기를 듣고, 과거를 만지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이 컬렉션은 자동차가 단지 이동수단이 아닌 '문화'이자 '기억'임을 말없이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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