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전기차(EV) 시장의 예상치 못한 둔화 조짐에 일본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줄줄이 생산 계획을 연기하거나 중단하며 비상이 걸렸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EV 구매 세액 공제 폐지 결정이 이러한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닛산 자동차는 미국 미시시피 공장에서 생산 예정이던 두 대의 전기 SUV 출시를 최대 1년까지 연기한다고 밝혔다. 당초 2028 회계연도에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2028 회계연도 말 또는 2029 회계연도 상반기로 늦춰질 예정이다. 이들 모델은 닛산 브랜드와 인피니티로 각각 출시될 예정이었다. 닛산 미국법인은 7월 7일 미국 내 EV 수요 둔화를 이유로 생산 계획을 소폭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닛산은 2024년 미국에 5종의 EV 모델을 출시할 계획이었으나, 이미 소형 SUV와 세단 개발을 중단하고 향후 3가지 모델만 출시할 방침이다.
토요타 자동차도 미국 내 전기차 모델 1종의 생산을 2년 연기하고, 인디애나 공장에서의 전기차 생산을 중단할 예정이다. 대신 미국에서 인기 높은 대형 SUV인 그랜드 하이랜더의 하이브리드 및 가솔린 구동 모델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혼다 역시 전략 전기차로 포지셔닝했던 대형 SUV 개발을 중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및 지출법'에 따라 9월 말로 예정보다 3개월 앞당겨진 전기차 구매 지원(최대 7,500달러 세액 공제) 폐지 결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리스를 포함한 모든 전기차 구매 지원이 중단되면서, 일본 및 한국 자동차 업체들이 북미 생산 시설이 적어 의존해왔던 리스 지원마저 사라지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원 종료 결정 전에도 미국 내 전기차 수요는 부진한 상황이었다. 현재 미국 내 전기차 보급률은 목표치인 50%에 훨씬 못 미치는 약 7%에 머물러 있다. 이는 3만 달러 미만 모델의 부재, 넓은 국토 면적 대비 부족한 충전 네트워크, 그리고 장시간 운전 선호라는 미국 시장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자동차 업체들은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전기차 수요 증가를 가정하고 대규모 할인을 통해 판매를 유지해 왔다. 지난 4월 25일 기준 미국 전기차 판매 인센티브는 신차 가격의 14.2%로 최근 3년 중 가장 높았으며, 이는 가솔린 자동차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예상만큼 수요가 늘지 않고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기업들은 결국 투자를 재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완성차 업계의 투자 정체는 배터리 등 관련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닛산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AESC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계획된 배터리 공장 건설을 중단했다. 한 금융 관계자는 앞으로 EV 수요가 정체된 가운데 배터리 생산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미국에 배터리 생산 능력이 과잉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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