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에게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영상이 아니다. 음악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아티스트의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자,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다. 팬들은 이 MV를 통해 음악의 감정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아티스트 고유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그만큼 중요하고도 공들여 만들어지는 MV 속에 게임이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명 아티스트들의 MV에서도 이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아이유가 공개한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셋’의 수록곡 ‘네모의 꿈’ 트랙 티저 MV는 그 자체가 마인크래프트 세계다. 티저에서 아이유는 아예 마인크래프트 캐릭터로 등장하며, 영상 전체가 마인크래프트 특유의 네모난 블록들로 이루어진 구조 안에서 진행된다. 티저의 시작도 게임 접속 화면을 연상시키는 폰트와 함께 ‘KKOT-GALPI3’, ’아이유 네모의 꿈’이라는 텍스트가 떠오르는 형태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티저 영상이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식 지원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이다. 유튜브 구독자 232만 명을 보유한 마인크래프트 크리에이터 ‘잠뜰’도 영상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단순히 게임 콘셉트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곡 자체와의 의미적 연결을 고려해 연출된 컬래버다.

유명 걸그룹 에스파의 ‘Hold On Tight’ MV는 게임 ‘테트리스’와의 연결이 핵심이다. 곡 자체가 테트리스 테마곡의 멜로디를 샘플링한 테크노 기반의 중독성 강한 리듬으로 구성돼 있고, MV 안에는 실제 테트리스 화면이 삽입되어 있다. 블록이 쌓이고 지워지는 고전 테트리스 플레이 장면과 에스파의 콘셉트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영상의 리듬감을 극대화한다.

사실 이 곡은 원래 애플TV+ 오리지널 영화 ‘테트리스’의 OST 중 하나로 제작됐다. ‘킹스맨’ 시리즈로 유명한 태런 에저튼이 주연한 이 영화는 테트리스의 탄생과 소유권을 둘러싼 정치적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

게임 팬들의 공감을 유발하는 장범준의 ‘장범준 싱글’ 타이틀 곡인 ‘실버 판테온’도 있다. 이 곡은 제목부터가 ‘리그 오브 레전드(LoL)’ 이용자들이 익히 아는 단어로 구성돼 있다. LoL 캐릭터 중 하나인 ‘판테온’과 (비교적) 낮은 랭크 티어인 ‘실버’를 조합해, 평범한 게이머의 자조 섞인 감성을 담아냈다.

MV에는 실제 게임 플레이 장면과 함께 “난 몇 달째 실버 3, 4에 있었어”, “근데 난 플레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와 같은 표현들이 이어지며 게임 이용자의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참고로 해당 곡은 유명 프로게이머 ‘페이커’(이상혁)도 방송 중에 언급을 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해외 가수들의 MV 속에서도 게임이 숨어있다.

최고의 미국 래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미넴의 ‘Survival’이 대표적이다. 2013년 ‘콜 오브 듀티: 고스트’ 멀티플레이 트레일러와 함께 처음 공개된 이 곡은, 뮤직비디오에 군복을 입은 병사와 전장의 긴장감이 그대로 담긴 인게임 영상이 포함돼 있다. 에미넴은 이 장면이 투사되는 빔프로젝터 앞에서 랩을 선보이며 몰입감을 더한다.

이 곡은 같은 해 11월 발매된 정규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 2’에 수록되며 정식 음원으로 자리 잡았고,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최고 16위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WWE 2K19의 공식 사운드트랙으로도 채택된 바 있다.

유명 록 밴드 링킨 파크의 ‘CASTLE OF GLASS’ 역시 게임과 긴밀하게 연결된 뮤직비디오를 남겼다. 이 곡은 FPS 게임 ‘메달 오브 아너: 워파이터’의 공식 프로모션 싱글로 제작됐고, 밴드의 다섯 번째 정규 앨범 ‘LIVING THINGS’에 수록됐다.

MV는 전쟁으로 인한 상실과 감정을 중심에 둔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과 가족의 슬픔,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버지를 따라 특수부대원이 되는 이야기가 전작의 게임 속 캐릭터 ‘래빗’의 서사와 연결된다. 실제 인 게임 장면 삽입과 함께 정지 애니메이션, CGI, 무너지는 배경 등 링킨 파크 특유의 감각적 연출이 더해져, 게임과 음악의 세계관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이외에도 캐나다 펑크 록 밴드 펍(PUP)의 ‘DVP’에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 ‘모탈 컴뱃’ 등의 플레이 영상을 MV에 활용해 주목을 받은 바 있고, 저작권으로 인해 MV를 교체하게 되었지만 영국의 밴드 고릴라즈의 더 밸리 오브 더 페이건스에는 GTA5의 인 게임 영상이 사용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