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는 보기도 힘든 수십억원 슈퍼카들을 직접 몰아볼 수 있는 레이싱 게임은 대중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탄탄한 마니아층을 자랑하는 장르입니다. 정말 푹 빠지면 집에 레이싱 휠 거치대까지 마련해서 본격적으로 즐기게 되는 경우도 있죠.
현실에서는 내 자동차 근처에만 와도 식은 땀이 나면서 평소보다 안전거리를 더 벌리게 되지만, 게임에서라면 마음껏 몰아볼 수 있으니까요. 특히 요즘 레이싱 게임들은 그래픽의 발전 덕분에 현실과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된 자동차가 등장하고, 실시간 날씨 변화까지 적용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더욱 더 운전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남들을 부러워할만한 슈퍼카들을 직접 몰아볼 수 있다는 것이 레이싱 게임의 최고 장점인 만큼, 정말 페라리, 람보르기니, 멕라렌 등 보기만 해도 헉 소리나는 차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차들의 위상이 많이 올라가면서 레이싱 게임에서도 다양한 한국차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됐습니다. 시티레이서 같은 한국에서 개발된 게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란투리스모, 포르자 등 해외 인기작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국차가 레이싱 게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그란투리스모 컨셉 2001 도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PS2 국내 런칭과 함께 마케팅에 전력을 다하던 소니가 PS2를 대표하는 인기작인 그란투리스모 신작을 국내에 선보이면서 현대 자동차와 협업해 한국 자동차들을 선보인 것이죠. 당시 등장했던 차가 투스카니, 베르나, 컨셉카인 HCD06, 클릭입니다.
투스카니는 티뷰론으로 스포츠 쿠페 시장에 뛰어든 현대가 티뷰론 터뷸런스의 후속작으로 선보인 자동차입니다. 물론 해외 명품 스포츠카들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격 대비 뛰어난 성능과 매끈한 디자인 덕분에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영국 BBC의 유명 자동차 프로그램인 탑기어에서 베이비 페라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네요. 지금은 후속 모델인 벨로스터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지만, 튜닝 잠재력이 높은 차라서, 요즘도 잘 튜닝된 중고차라면 괜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 클릭은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차는 아니지만, 유럽식 해치백 디자인의 실용성이 높은 차라서 유럽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덕분에, 게임에도 들어간 것 같습니다. HCD06은 2인승 MR 로스스터 컨셉카로 양산되지는 못했지만 이후 그란투리스모 시리즈에 꾸준히 등장했습니다.

그란투리스모4에서는 스피라도 추가됩니다. 스피라는 지금은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만 국내 최초의 수제 자동차이자, 미드십 스포츠카로 당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자동차입니다. 중소 회사의 한계로 인해 출시도 많이 지연됐고, 많이 판매되지는 못했지만, 1995년 호주 랠리 반개조 부분에서 세피아로 우승을 차지한 아주자동차대학의 박정룡 교수가 개발에 참여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예전에 스피라 김여사라는 사진이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었는데, 부자집 사모님의 사치인것처럼 조롱하는 덧글이 달렸다가, 박정룡 교수의 아내이자 한국 최초 여성 카레이서인 김태옥씨였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져셔 모두 조용해진 일도 있었네요. 스피라를 만든 어울림 모터스는 계속 고전하고 있긴 하지만, 아이코닉 2.0을 발표하면서 계속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후 그란투리스모5, 포르자 모터 스포츠3 등 후속작들에서도 한국 자동차들이 꾸준히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란투리스모5에는 티뷰론 터뷸런스, 투스카니, 스피라 등이 등장했고, 포르자 모터 스포츠3에는 제네시스 쿠페가 들어가 화제가 됐습니다. 가성비뿐만 아니라 성능으로도 화제가 된 자동차들이 계속 늘어나게 되면서 게임에서도 조금씩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 차들은 그란투리스모6, 포르자 모터 스포츠4 등에도 꾸준히 등장합니다.
계속 현대차 위주로 나와서 기아차주 분들은 서운할 수도 있는데, 요즘 가장 핫한 레이싱 게임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포르자 모터스포츠7과 포르자 호라이즌4에 기아 스팅어가 등장합니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명 슈퍼카들과 비벼볼 수 있는 놀라운 성능으로 화제가 됐던 그 차입니다.
덕분에 가족용 저렴한 차만 만들던 기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을 받았으며, 호주의 퀸즐랜드주 경찰청에서 고속 추격용으로 스팅어를 도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현대차도 등장하는데, 투스카니의 후속작이자 스팅어와 라이벌 포지션인 벨로스터N입니다. 이 역시 가성비에 개성적인 외모를 가진 차량으로 해외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네요.

포르자 호라이즌5에는 4에도 등장했던 벨로스터N을 비롯해, I30N, 코나N 등이 등장했고, 아이오닉5N, EV6 GT 등 전기차들도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요즘 한국 전기차들이 좋은 성능으로 호평받고 있는데, 게임에서도 꽤나 준수한 성능을 보여줘 호평받고 있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추가된 비전N74입니다. 해외에서도 백투더퓨처에 등장했던 드로리안 DMC12를 닮은 디자인으로 엄청난 화제가 됐는데, 단순히 외관만 보여주는 컨셉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주행도 할 수 있는 모델로 나와서 더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들 얼마에 나와도 상관없으니 팔아달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는데, 탑기어의 리뷰 영상은 최근 몇 년간 올린 영상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2022년 탑기어 올해의 인스턴트 아이콘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포르자 호라이즌5에서도 매력적인 외관이 그대로 재현됐으며, 성능도 좋게 나와서 많은 이들이 이 차를 획득하기 위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해외에서도 계속 주목받은 차라서 앞으로 더 많은 레이싱 게임에서 이 차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예전에는 국산차는 저렴하고, 성능이 뒤쳐진다는 인식이 강했고, 게임에 등장해도 그냥 구색만 맞추는 수준으로 등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점점 더 고성능 브랜드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고, 평가도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보니, 게임에서도 슈퍼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까지 올라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레이싱 게임에서 한국차들이 활약하는 모습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