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성인 게임을 사는 것을 막을 수 있는가?

최근 스팀에 업데이트된 새로운 규정 및 가이드라인에 성인 게임 규제 항목이 새롭게 추가되면서 논란이 계속 커지고 있다.

이번에 추가된 규정은 스팀의 결제 처리업체 및 관련 카드 네트워크, 은행 또는 인터넷 네트워크 제공업체의 규칙과 기준을 위반하는 콘텐츠는 스팀에 게시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전에 스팀이 부적절한 게임을 차단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추가된 규정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스팀 자체 결정이 아닌 카드사의 요청에 의해서도 성인 게임 판매가 중단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즉, 카드사가 마음만 먹으면 플랫폼 자체 규정에 어긋나지 않은 게임이라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7월에 다수의 성인 게임이 스팀에서 판매 중지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인디 게임 유통 사이트 Itch.io에서도 다수의 성인 게임 판매가 중단되면서 현실이 되고 있다. 밸브는 이번 성인 게임 대량 삭제가 신용 카드 회사의 압력 때문이라고 밝혔으며, Itch.io 역시 같은 이유로 플랫폼의 결제 처리 능력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발표했다. 예전에 카드사들이 폰허브 카드 결제를 금지한 것이 게임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가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소통의 필요성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으며, 이용자들도 마스터카드에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위처 시리즈로 유명한 CD프로젝트레드가 운영중인 게임 다운로드 플랫폼 GOG에서는 성인 게임 검열에 반대하는 의미로 48개의 성인 게임을 48시간 무료로 배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마스터카드는 공식 성명문을 통해 “언론 보도 및 주장과 달리 게임 제작사 사이트 및 플랫폼의 게임이나 활동에 대해 평가하가나 제한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우리는 법을 준수한다. 불법적인 구매나 불법 성인 콘텐츠에 사용되지 않도록 결제사들에게 적절한 통제 조치를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입장도 같이 밝혔다. 직접적으로 특정 게임에 대한 제한 조치를 요청한 것은 아니나, 부적절한 게임을 자사 카드로 구입할 수 없도록 관리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게임 이용자 및 개발자들이 이 같은 사태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는 것은, 성인 게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제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광범위한 검열이 진행되면, 모호한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합법적인 성인 게임 개발자까지 위축시키게 되면서, 창작의 자유를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는 성폭행이나 성범죄를 묘사하거나, 미성년자를 성적 대상화하는 게임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이전에도 성인 게임 관련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재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며, 제재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합의 기반의 평범한 성인 게임 등 합법적인 성인 게임 개발자들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Change.org 사이트에 진행되고 있는 카드사 성인 게임 규제 철회 서명 운동은 현재 23만명이 넘게 참여한 상태다.

해외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꽤 익숙하다.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의 사전 검열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뉴단간론파V3라는 게임으로 시작된 이 논란은, 게임위의 사전 등급 제로 인해 성인들이 자유롭게 성인 게임을 구매할 수 없는 것을 비판하면서 헌법소원까지 진행될 정도로 사태가 커졌다.

게임산업법 제32조 2항 3호에 범죄·폭력·음란 등을 지나치게 묘사하여 범죄심리 또는 모방심리를 부추기는 등 사회질서를 어지럽게 할 우려가 있는 게임은 유통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너무 모호하기 때문에, 영화, 드라마보다 게임에 대한 규제가 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해당 헌법소원은 역대 최대 규모인 21만명이 참여하면서 게임 검열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문체부는 이같은 여론 때문인지 게임위가 맡고 있던 게임물 등급 분류를 단계적으로 민간에 이양을 추진하겠다는 방안이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성인이 성인 게임을 자유롭게 즐길 수 없게 만드는 검열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긴 하지만, 이번 사태를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콜렉티브 샤우트 같은 단체들을 필두로 부적절한 성인 게임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올해 4월 노 머시라는 게임은 과도한 성폭력과 근친상간 등 부적절한 내용의 게임 플레이를 담아 전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면서, 결국 판매 금지 당한 바 있다. 창작의 자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같은 반인륜적인 게임들이 등장하지 않도록 플랫폼 자체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