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21세기 초와는 전혀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규모를 키워 효율성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섰다. 한 마디로 생존 경쟁이다. 그 방법은 지금까지와는 달라야 한다. 경쟁 상대 바뀌었기 때문이다. 테슬라를 필두로 하는 반도체, 배터리 등 외부의 파괴적 경쟁자들이 시작했고 2020년을 전후해 중국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시장이 기술이라는 말이 구현되고 있다. 최대 1,974만대가 판매됐던 미국도, 1/3이 메이드 바이 재팬이었던 시대와도 다르다. 2030년 4,000만대를 전망하고 있는 중국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했었다. 현대차와 GM의 협력은 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현대차와 GM의 협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짚어 본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2024년 9월 양해각서를 체결한 두 회사의 협력은 여러먼에서 의미가 크다. 핵심은 효율성, 즉 비용절감이다. 플랫폼과 부품 공유화에 더해 연구개발과 미래 파워트레인에서도 접점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궁극적은 목표는 차세대 자동차이고 중국시장이 될 것이라고도 했었다. 경쟁 상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레거시 자동차업계에서는 인수합병의 바람이 불었다. 그때도 비용절감이 목적이었다. 비용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하면 주가가 상승하던 시대였다. 그래서 연간 생산 400만대는 넘겨야 수익성이 보장된다는 논리로 다임러와 크라이슬러가 합병했고 르노와 닛산이 동맹이 되었다.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는 어려움에 처한 기아를 정부가 현대에게 떠 넘기는 형태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2007년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결별했다. 르노와 닛산은 최근 관계를 정리했다. 두 경우 모두 문화적인 차이가 가장 큰 배경이었다. 국가적인 것은 물론이고 사내 문화 역시 큰 차이가 있었다. 20세기 말 합병한 현대차그룹만이 유일하게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후에도 피아트와크라이슬러가 FCA로 합병했다가 PSA와 다시 합병해 지금은 스텔란티스가 되어 있다. 스텔란티스는 수많은 브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크라이슬러와 이탈리아의 피아트, 프랑스의 PSA., 그 산하의 오펠과 복스홀 등 복잡하게 얽혀있다.
무엇보다 20세기 자동차 왕국이었던 미국 빅3의 부진은 전체적인 산업 생태계의 힘을 잃게 했다. GM은 1,000만대 그룹까지 치솟았다가 500만대 수준까지 하락했다. 자동차대중화를 이끌었던 포드는 400만대 수준까지 후퇴했다.
그 과정에서도 레거시 업체들은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하며 시장을 개방하면서 엄청난 기회를 얻었고 많은 부가가치를 올렸다. 그런데 2020년을 전후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기차에서는 물론이고 시장에서도 압도적인 중국의 공격이 거세졌고 지금은 주도권이 바뀌었다. 중국에서 차를 판매하고자 하면 중국에서 개발해야 하고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해야 한다.
여러차례 언급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외부의 파괴적 경쟁자가 시작했다. 자동차산업에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배터리, 반도체,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 등 다양한 새로운 이슈가 등장했다. 자동차산업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용어가 100년만의 대전환이다. 그것을 이끈 것은 테슬라다. 기존 업체들도 이미 체계적으로 준비해왔지만 테슬라는 그것을 일거에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로 만들었다.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배터리를 포함해 센서와 반도체, 소프트웨어가 중심인데 이들 모두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것들이다. 자동차회사들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배터리 내제화는 물론이고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레거시 업체들은 우선은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섰다. 물론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 올 들어 글로벌 빅4, 즉 토요타와 폭스바겐, 현대차그룹, GM는 내용은 다르지만 자체 소프트웨어를 완성했다. 이는 이 시대 화두인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를 위한 첫걸음이다.
그리고 가장 큰 위협은 시장을 무기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은 분명 내부적으로 과잉 생산과 수익성으로 문제가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시진핑이 직접 나설 정도다. 그것이 작동하는.방식은 자본주의 국가와는 다르다. 헝다와 비구이위안 등 부동산 사태와도 크게 다르다. 잘못되면 20세기 미국의 경제 대공황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 가능성 때문에 산업이 멈추지는 않는다. 자주 얘기하듯이 시장의 규모가 다르고 기술의 수준이 다르다.
어쨌거나 지금 레거시 자동차회사들은 외부의 파괴적 경쟁자와 중국 자동차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화를 통한 세계화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었다. 중국에서 생산해 중국에서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시장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자동차왕국 미국의 시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일본의 세계화와는 또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그 새로운 길에서도 필요한 것은 자동차산업의 숙명인 비용 절감이고 미래를 위한 신기술이다. 그래서 현대자동차는 GM과의 협력을 하기로 했고 그 첫 번째 가시적인 결과가 이번에 발표됐다.
중남미와 북미 시장을 겨냥한 총 5개 차종을 공동으로 개발한다는 것이 시작이다. 공동 개발 차종은 중남미 시장용 중형 픽업, 소형 픽업, 소형 SUV, 소형 승용 4종과 북미 시장용 전기 상용 밴 등 총 5개 차종이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멀티 파워트레인을 표방하고 있다. 양사는 해당 차량들이 본격 양산될 경우, 연간 80만 대 이상 규모의 생산 및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협력 구조는 양사가 개발을 주도하는 영역을 명확히 나눴다. GM은 중형 트럭 플랫폼 개발을 담당하고, 현대차는 소형 차량 및 전기 상용 밴의 플랫폼 개발을 주도한다. 이를 통해 각 사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개발 범위를 확장하는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플랫폼은 공유하지만 차량의 내외장 디자인은 각 브랜드 정체성을 반영해 차별화한다. 공동 개발하는 차량 중 중남미용 4종은 2028년 출시를 목표로 한다. 북미 시장용 전기 상용 밴은 빠르면 2028년부터 미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북미의 급성장 중인 라스트 마일 상용 전기차 시장을 직접 겨냥한다.
우선 제품은 그렇지만 더 크게는 글로벌 소재 및 물류 공동 조달 이니셔티브로까지 확장된다. 양사는 부품, 복합 시스템, 원자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공동 소싱을 추진할 계획이다.
탄소 저감형 강판 사용 등 지속가능한 제조 방식 실현에도 협력한다. 이는 친환경 소재 활용,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통해 제조 과정의 탄소 배출 및 자원 고갈을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수소 전기차도 포함됐다.
일단은 두 회사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다시 정리하면 협업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급변하는 자동차 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 핵심에는 효율성이 있다. 플랫폼, 파워트레인, 부품 등을 공유하면 막대한 개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특히, 신흥 시장인 중남미와 경쟁이 치열한 북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유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전동화 시대의 위기 대응이다. 테슬라와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비용 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GM의 얼티움 플랫폼과 현대차그룹의 E-GMP 플랫폼이 어떤 시너지를 낼 지가 관건이다.
여기에 중국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두 회사가 다른 주요 시장에 역량을 집중해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전략도 내포되어 있다.
20세기 말 인수합병 열풍 이후 자동차 업계에는 다양한 협력 모델들이 있었다. 같은 차를 만들어브랜드 로고만 바꾸어 파는. 뱃지 엔지니어링이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GM은 1980~90년대 쉐보레 카발리에, 폰티악 선파이어 등을 같은 차체로 만들어 판매했다. 사브의 모델을 익스테리어만 바꿔 캐딜락 브랜드로 판매하기도 했다. 포드 이스케이프와 마쓰다 트리뷰트, 미쓰비시 이클립스와 크라이슬러의 이글 탈론 등도 그 예다.
거기에서 발전한 것이 플랫폼 공유다. 대표적으로 브랜드가 많은 폭스바겐 그룹은 다양한 브랜드의 핵심 차종이 이 플랫폼을 공유한다. GM의 엡실론 플랫폼은 쉐보레 말리부, 캐딜락 XTS, 오펠 인시그니아 등 GM의 여러 중형차 모델에 사용됐다. 현대차그룹의 N3 플랫폼이 쏘나타, K5, 싼타페, 쏘렌토 등 현대-기아차의 주요 중형 및 SUV 모델에 사용됐다. 20세기에는 매 모델마다 플랫폼을 개발했던 때도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자동차회사가 플랫폼 한 두 개, 또는 두 세 개로 전체 모델을 커버한다.
플랫폼 전체가 아닌 엔진, 변속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핵심 부품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눈치채지 못했던 방식으로 지금은 널리 확대되어 있다.
이번 현대-GM 협력은 뱃지 엔지니어링보다는 플랫폼 및 부품 공유를 포함하는 좀 더 고도화된 협력 단계에 해당한다. 특히, 단순히 차량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 생산부터 판매까지 포괄적인 전략적 협력이 될 가능성이 높아, 두 회사의 미래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새로운 형태의 협업이 시작됐다. 합병이나 동맹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폭넓은 공유가 시작됐다.
핵심은 경쟁 상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시너지를 낼지, 그것이 미주 지역은 물론이고 중국시장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다.
다시 한 번 시장이 곧 기술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기술은 시장을 이길 수 없다라는 명제도 테슬라가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래도, 자동차는 네 바퀴로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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