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세데스-벤츠가 닛산 지분 3.8%를 전량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3억 4,600만 달러 규모의 이번 지분 매각은 메르세데스 연금 신탁의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에서 추진된 것으로 발표됐지만, 시장은 이 사건을 단순한 자산 매각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소식이 전해진 직후 닛산의 주가는 6% 가까이 급락하며 불안한 기류를 드러냈다.
닛산은 이미 몇 년 전부터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담,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하락,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한 재정적 압박이 겹쳤고, 최근 분기 실적에서도 5억 달러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다. 전동화 시장에서도 테슬라, BYD, 현대차·기아 등에 비해 뚜렷한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메르세데스의 매각 결정은 닛산의 회복 전략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고, 이는 향후 닛산의 글로벌 입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닛산과 메르세데스의 협력은 201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 당시 다임러였던 메르세데스가 플랫폼, 파워트레인, 경량차 개발 등 여러 영역에서 제휴를 추진했다. 인피니티 Q30과 메르세데스 A클래스의 플랫폼 공유, 엔진 공동 개발, 일부 시장에서의 공동 생산 등은 대표적인 협력 사례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협력 모델은 지속력을 잃어갔다. 인피니티의 유럽 철수, 소형차 시장의 부진, 그리고 전동화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는 산업 환경이 양사의 이해관계를 더 이상 맞추기 어렵게 만들었다.
닛산이 2021년 재정 압박 속에서 다임러 지분 1.5%를 매각했던 전례와 이번 메르세데스의 철수는 사실상 양사 관계의 종결을 의미한다. 과거 양사 간 협력의 명분은 ‘윈윈’ 모델이었지만, 전동화 시대로 접어든 지금은 서로의 전략적 가치가 약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오랫동안 대규모 제휴와 동맹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리스크를 나누는 방식을 택해왔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 토요타와 스즈키·마쓰다의 협력, GM과 혼다의 파트너십 등은 모두 이 같은 배경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동맹 구조는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전동화 전환 속도와 방향에서 제조사 간 차이가 뚜렷하게 벌어졌고, 차량의 핵심 경쟁력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로 이동하면서 각 기업은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 유럽을 둘러싼 보호무역 기조와 공급망 재편 압박은 기업들로 하여금 자국 내 생산과 독자 공급망 확보를 우선시하게 만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과거와 같은 전면적인 동맹 모델은 효율성을 잃고 있으며, 프로젝트 단위의 협력이나 모듈 단위 기술 제휴로 형태가 바뀌어가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이번 결정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 전략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메르세데스는 럭셔리와 전동화, 그리고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을 명확히 하며 불필요한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 있다. 닛산은 여전히 회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이번 사건은 투자자들에게 닛산의 중장기 생존 전략에 의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한국의 현대차와 기아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한 독자 노선,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전략 추진은 글로벌 동맹 해체 흐름 속에서 더욱 중요한 경쟁 자산이 될 것이다. 결국 미래 자동차 산업은 과거처럼 폭넓은 제휴에 의존하는 대신, 핵심 기술 영역에서 한정적인 협력을 이어가면서도 독자적 전략을 기반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메르세데스의 닛산 지분 매각은 자동차 산업의 변화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자, 동맹 시대가 끝나고 독자 전략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음을 상징하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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