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는 원래 게임을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고, 실제로도 대부분 그렇게 활용됩니다. 하지만 가끔은 음악, 군수, 의료 같은 업계에서 게임기의 저렴한 가격과 높은 접근성을 탐내어 색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도 하는데요.

특히 음악 분야에서는 게임기가 단순히 소리를 내는 도구를 넘어, 무대 위에서 하나의 악기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2008년 도쿄에서 열린 ‘하이퍼 게임 뮤직 이벤트’에서는 ‘DS-10 트리오’라는 팀이 닌텐도 DS의 음악 제작 프로그램 ‘KORG DS-10’을 활용해 무대를 꾸몄는데요.

당시 크로노 크로스의 작곡가 미츠다 야스노리를 비롯한 세 명의 음악가는 DS 여섯 대를 동시에 운용해 다양한 곡을 연주했죠.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손바닥만 한 휴대용 게임기가 무대 위에서 웅장한 신시사이저로 변신하는 순간을 목격했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 네덜란드 듀오 ‘AuxPulse’ 역시 암스테르담의 스테델릭 미술관에서 닌텐도 DS만으로 2시간 30분짜리 공연을 진행했는데요. 손바닥만 한 게임기 하나로 웅장한 소리를 내는 악기로 활용되는 모습은 많은 이용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게임과 관계없을 것 같은 군사 영역에서도 의외로 게임기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미국 해군의 버지니아급 잠수함 ‘USS 콜로라도’는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전용 스틱 대신 Xbox 360 패드를 잠망경 조종 장치로 채택했는데요. 기존 장비보다 훨씬 저렴하고, 젊은 병사들이 이미 손에 익숙한 도구이기에 훈련 시간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 미군의 설명입니다.
이 시도는 무인 헬리콥터, 드론, 폭발물 처리 로봇 등 다양한 군용 장비로 확산되었는데요. 실제로 ‘ARSS’라 불리는 자율 저격 로봇, XM1216 소형 무인 지상차량, XM1219 MULE 차량 같은 체계가 Xbox 게임패드로 조종 가능하게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게임기가 군수 장비의 조종 인터페이스로 자리 잡자 유럽연합(EU)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군이 상용 게임기를 드론 조종에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Xbox와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스위치 등 주요 콘솔 기기의 판매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까지 했는데요.
EU의 16차 대(對)러 제재 패키지에 게임기가 포함됐다. 무역안보관리원 EU의 제16차 對러 제재 패키지 분석서해당 제재안은 지난 2월 실제로 발효돼 EU의 16차 대(對)러 제재 패키지에 게임기가 수출 통제 품목으로 공식 발표됐죠. 여기에 영국도 4월 말 독자적인 수출 금지 조치를 단행하면서, 러시아군의 드론 운용 능력을 차단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사람을 살리는 의료계에서도 게임기는 환영받는 손님입니다. 특히 닌텐도 Wii용 하드웨어 ‘Wii 밸런스 보드’가 저비용 기립 균형 평가 장비로도 주목받은 바 있는데요. 기립 균형 평가는 노인이나 환자의 낙상 위험을 예측하고 재활 효과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지표입니다. 원래 기립 균형(postural balance)을 평가하려면 보통 ‘골드 스탠다드’로 불리는 하중 플랫폼(Force Platform, FP)이 필요하지만, 장비가 워낙 고가라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죠. 이에 로스 A. 클라크(Ross A. Clark)를 비롯한 연구진은 값싸고 휴대가 간편한 Wii 밸런스 보드를 대안으로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직접 실험을 해본 결과, Wii 밸런스 보드는 검사 신뢰도와 결과 일치도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보여 임상 현장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물론 아주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는 민감성은 전문 장비보다 떨어지지만, 일반적인 임상 환경에서는 낙상 위험 선별이나 재활 경과 추적처럼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하다는 평가죠.
이외에도 닌텐도 Wii는 재활 치료에서도 활용되고 있는데요. 국내의 경우 강남구립 행복요양병원이 Wii 스포츠의 테니스, 볼링, 권투 프로그램을 ‘닌텐도재활치료’라는 이름으로 실제 치료에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게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임기가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걸 보니 참 놀랍습니다. 게임기 성능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더 다양한 활용법이 나올 것 같아서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