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안심하고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어야 보급 역시 자연스럽게 활성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AI 생성 이미지)
[오토헤럴드 김필수 교수] 전기차 화재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 인천 청라 지역 아파트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사건은 원인조차 명확히 밝혀지지 못한 채 민사 소송만 진행 중이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없는 상황, 그리고 반복되는 불확실성은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불안과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정부가 내놓은 종합대책 역시 현장의 체감도를 높이지 못하면서 불신은 여전하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충전기를 지상으로 옮기거나 충전된 전기차의 주차를 기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전기차 화재의 약 30%가 충전 중 또는 충전 직후 주차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점은 입주자대표회의와 차주 간 갈등을 더욱 키우고 있다. 전기차를 보유하려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량 구매 이전에 입대위와의 협의부터 고민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특성상 완속 충전이 수명을 늘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완속 충전기를 꽂은 채로 100% 충전을 유지하면 과충전 위험이 발생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충전 제어 기능을 갖춘 충전기의 보급이야말로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화재 예방책이다.
문제는 현재 전국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약 25만 기의 완속 충전기가 모두 충전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환경부가 추진하는 ‘스마트 제어 충전기’ 보급도 현실적 제약이 많고, K-VAS 같은 국제적으로 보편화되지 않은 기능까지 요구하면서 충전기 제조사들의 반발과 지연을 불러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논란 많은 부가 기능이 아니라 기본적인 충전 제어 기능의 보편화다.
환경부는 최근 기존 충전기를 교체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추가했지만, ‘5년 이상 된 충전기’라는 조건 탓에 대부분의 설치기기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설치 연식에 따라 차등 지원을 적용하되 교체 대상을 폭넓게 인정하는 방식이다. 연식이 오래될수록 보조금을 최대한 지원하고, 상대적으로 신형일 경우 일부만 지원하는 구조가 현실적이다. 이렇게 되면 지자체와 아파트도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고, 보급 속도도 높아진다.
정부는 지난해 종합대책 발표 시 충전 구역 화재 감시 시스템 설치를 권고했으나 의무가 아니다 보니 비용 문제로 외면받고 있다. 그러나 화재 발생 시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감시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열화상 카메라보다 연기·불꽃 감지 기능을 강화하고, 충전기와 별도 설치를 전제로 보조금(20~30만 원 수준)을 지원한다면 아파트 단지와 지자체 모두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이다. 나아가 원격 스프링클러 제어 기능도 도입하면 화재 확산 방지에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환경부와 지자체의 정책 전환은 전기차 안전 신뢰를 회복하는 핵심이다. 기존 충전기 교체 보조금을 연식과 무관하게 확대하고 화재 감시 시스템을 의무화·분리 지원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비자가 안심하고 전기차를 선택할 수 있고, 보급 역시 자연스럽게 활성화된다.
안전 없는 보급은 불가능하다. 피부로 체감되는 정책이 실현돼 국민이 안심하고 전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김필수 교수/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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