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는 오랫동안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중심에 서왔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전기차 전환은 예상보다 더디고, 테슬라와 중국 브랜드들은 빠르게 세력을 넓히고 있다. 독일차가 자랑해온 ‘완성도’와 ‘브랜드 가치’만으로는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들에게 컴팩트 SUV는 핵심 수익원이다. BMW X3, 메르세데스 GLC, 아우디 Q5는 수년 동안 유럽과 미국 시장에서 꾸준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켜왔다. 문제는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이 ‘황금 세그먼트’가 제대로 공략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BMW의 첫 iX3는 중국 생산에 발목 잡혀 미국 시장 진출에 실패했고, 메르세데스 EQC는 출시조차 무산됐다.
이런 배경에서 새롭게 등장한 BMW iX3 50 xDrive와 메르세데스-벤츠 GLC 400 EQ 테크놀로지는 신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두 모델은 ‘독일차가 전기차 시대에도 여전히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GLC 400 EQ는 수치만 놓고 보면 확실히 인상적이다. 최고출력 483마력, 최대토크 596lb-ft,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3초면 충분하다. SUV라는 체급을 고려하면 ‘과하다’ 싶을 정도다. 벤츠는 전통적으로 주행 감각과 승차감을 강조해왔지만, 이번에는 숫자 경쟁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반면 BMW iX3는 출력과 토크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469마력, 475lb-ft라는 수치는 경쟁 모델과 비교하면 부족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BMW가 집중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다. WLTP 기준 최대 805km, 이는 테슬라 모델 Y를 포함해 동급 어떤 SUV와 비교해도 최상위권이다.
즉, 메르세데스가 ‘즉각적인 힘’을 무기로 삼았다면, BMW는 ‘멀리 가는 힘’으로 응수한 셈이다. 두 브랜드의 철학이 전기차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주행거리 불안’이다. BMW와 메르세데스 모두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기 다른 전략을 내세웠다.
메르세데스는 94kWh 배터리로 WLTP 기준 최대 713km를 달린다. 효율성 면에서도 1kWh당 4.7마일이라는 성적을 강조한다. 벤츠가 그동안 내세운 ‘효율적인 럭셔리’의 연장선이다.

BMW는 더 단순하다. 아예 108.7kWh의 대용량 배터리를 얹어 최대 805km를 확보했다. 효율성에서는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길게 달리는 차’를 만들어냈다. 장거리 운행이 많은 유럽, 미국 고객 입장에서는 이런 접근이 더 설득력 있을 수 있다.

충전 성능에서는 BMW가 확실히 앞선다. iX3는 최대 400kW 급속 충전을 지원해 10~80% 충전이 21분이면 끝난다. 단 10분 만에 370km 가까이 주행할 수 있는 전력을 채울 수 있다.

GLC는 최대 330kW로 24분이 걸린다. 수치상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 이용자는 충전소에서 몇 분이라도 덜 기다리는 경험에 민감하다. ‘길게 달리고, 빨리 충전된다’는 BMW의 메시지는 여기서 힘을 얻는다.

전기차 시대의 진짜 경쟁은 배터리나 모터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 벌어진다.
BMW는 ‘파노라믹 iDrive’를 중심으로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강조한다. 자사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자체 가상 비서를 두고, 데이터 보안과 브랜드 통일성을 우선한다.

메르세데스는 ‘하이퍼스크린’ 위에서 ChatGPT, 구글 제미니, 마이크로소프트 빙 AI까지 동원하는 멀티 에이전트 방식을 택했다. 고객이 어떤 질문을 하든 최적의 답을 내놓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승부는 사용자가 얼마나 직관적이고 편리하게 체감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프트웨어는 ‘보이지 않게 작동할 때 가장 좋은 것’이라는 점에서, 두 회사의 접근법은 시장에서 흥미로운 평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BMW iX3는 기존 X3의 실루엣을 유지하면서도 전기차다운 요소를 더했다. 강렬한 키드니 그릴과 간결한 라인은 BMW 특유의 스포티함을 강조한다.

메르세데스 GLC는 EQ 라인업의 둥글둥글한 실루엣에서 벗어나, 훨씬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인상을 준다. ‘전기차여도 메르세데스는 다르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주행 감각은 역시 BMW는 운전 재미, 메르세데스는 정숙성과 편안함으로 갈린다. 전통적인 브랜드 DNA가 그대로 이어진 셈이다.

BMW iX3는 2026년 여름, 6만 달러 미만에서 시작할 예정이다. 엔트리 모델은 5만5천 달러 수준으로 책정된다. 가솔린 X3와 큰 차이가 없는 공격적인 가격이다.
메르세데스 GLC는 가격을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벤츠 특유의 정책을 고려하면 BMW보다 다소 높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두 모델의 승부는 스펙이 아니라 가격 대비 만족도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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