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게 미국은 역사적으로, 산업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손을 내밀어 준 동맹이자, 가장 큰 교역 파트너이자, 중국을 맞대고 있는 한반도에서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겪고 있는 상황을 보면, 이 ‘동맹’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양가적인 현실을 담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 10여 년간 미국 조지아에 대규모 전기차·배터리 생산 기지를 구축하며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이는 한국 기업이 미국에 한 최대 규모의 투자인 동시에, 장기적인 전략적 파트너십을 상징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최근 미국 내 이민 단속과 관세 정책 변화로 인해, 이 대규모 투자가 불확실성의 그림자에 갇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조지아 메타플랜트는 미래 전략의 핵심이다. 전기차·하이브리드·배터리를 현지 생산해 공급망을 안정화하고, 미국 내 점유율을 확대하려는 포석이다. 그러나 최근 이 공장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 중 하나로 꼽히는 이민 단속의 무대가 되었다. 단기 숙련 인력의 비자 발급이 지연되면서 배터리 생산 일정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단순한 행정 문제가 아니라, 첨단 제조업의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는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한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행정부가 재집권 이후 내놓은 자동차 관세 정책은 현대차·기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현재 한국산 자동차에는 25%의 관세가 부과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심각하게 흔드는 요인이다. 반면, 일본은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오는 9월 16일부터 관세가 15%로 낮아졌다. 동일한 아시아 경쟁자인 일본이 혜택을 보는 상황에서, 한국차만이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3,500억 달러(약 480조 원) 규모의 투자 펀드 운용 문제와 관세 인하 문제를 동시에 다루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정책실장이 직접 밝힌 것처럼, 단순히 자동차 관세 격차만 좁히자고 서두를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자칫 투자 자금 운용 조건이 한국 경제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착은 이미 실적 전망에 반영되고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7~9월 분기 영업이익은 직전 분기 대비 10.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기아 역시 9.5% 하락이 전망된다. 관세 부담만으로 2분기에 11억 5천만 달러(약 1조 5천억 원)가 순식간에 빠져나간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산 자동차 구매를 촉진하려 하지만, 문제는 미국 브랜드가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차를 당장 제공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테슬라를 제외하면 뚜렷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한국 기업은 이중의 압박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버티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내에서 가장 모범적인 투자를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용 창출, 현지화 전략, 장기 투자 모두 충실히 이행했지만 돌아오는 현실은 관세와 규제라는 장벽이다. 이는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가 언제든 자국 우선주의에 의해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자동차 업계의 손익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과 동맹의 정치경제학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잘 드러낸다. 한국차가 맞닥뜨린 어려움은 곧 한국 경제가 직면한 불확실성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주 뉴욕에서 투자자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과연 이 자리에서 어떤 해법이 제시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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