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컨버터블’을 타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느끼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건 아마도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는 일일 것입니다. 자동차는 효율적인 장소 이동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틀림없지만, 그러한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기보다는 좀 더 ‘멋있게’ 달리기 위한 차가 더 주목받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날은 어느 메이커 든 전동화와, 저탄소 배출에 관심을 두는 시대지만 그러한 ‘효율적인’ 차 이외에도 그보다 훨씬 더 비용이 들고 탄소가 나와도, 즉 ‘비효율적’ 이라도 이목을 끌 수 있는 차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또 개발되곤 합니다. 그리고 미래의 모빌리티 역시 그럴 것입니다.
최초의 가솔린 엔진 자동차를 만든 ‘벤츠’도 오늘날에는 전동화에 의한 ‘효율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벤츠에는 전동화 ‘세단’만 최신형이 있는 건 아닙니다. 속도 무제한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의 나라의 자동차 제조 업체 답게 고성능 스포츠카-사실상 탄소배출이 낮지 않은 차-도 여전히 상품 목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2023년에 등장한 7세대 벤츠 SL43 AMG
물론 ‘독일의 스포츠카’ 라고 하면 포르쉐 같은 ‘고성능 기계’의 기능적 차량이 먼저 떠오르지만, 똑같이 독일 자동차 브랜드이지만 벤츠의 스포츠카는 독일의 기능주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는 조금 다른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벤츠의 스포츠카는 SLR 레이싱 머신의 형태를 거의 그대로 가진 300SL모델이 1954년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이 모델에서 지붕을 없앤 로드스터(Roadster)가 1957년에 나옵니다.
그리고 2세대 모델 1963년형 230SL 파고다(Pagoda), 뒤 이어1971년의 3세대 SL, 1989년의 4세대 500SL, 5세대 2003년형 SL500과 6세대 2013년형 SL클래스, 그리고 2023년형으로 등장했던 7세대 모델,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한 마이바흐 SL680까지 이어져 왔지만, 그 디자인의 변화 또한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1세대 1954년형 300SL(W198)
갈매기가 날개를 펼치듯 열리는 걸 윙 도어(gull wing door)가 인상적이었던 1세대 300SL은 실제로는 구조적 제약조건을 특이한 도어 디자인으로 극복한 차량이었습니다.
일견 300SL의 걸 윙 도어는 단지 멋을 부리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건 멋을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구조의 적용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였습니다.

1세대의 1957년형 SL로드스터(W121)
그 이전의 사다리 형태와 같은 차체 프레임 대신에 스페이스 프레임(space frame)이라고 불리는, 마치 체육관 지붕구조물에서의 트러스(truss) 구조와 같은 프레임이 쓰였고, 그런 스페이스 프레임구조의 채택으로 차체의 강성을 높이면서도 무게는 훨씬 가벼워졌지만, 스페이스 프레임의 특성 때문에 문턱이 운전자 팔꿈치 높이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이에 지붕의 일부분까지도 함께 열리게 함으로써 타고 내리는 데 필요한 출입구의 크기를 얻게 된 것이 바로 300SL의 걸 윙 도어였습니다.
300SL은 또한 낮은 후드를 위해 엔진을 비스듬하게 눕혀서 탑재하면서 엔진의 헤드 커버 모서리와 흡기 포트가 후드와의 간섭되자 그걸 피하면서도 낮은 후드의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두 개의 블리스터(blister)를 후드 위에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건 벤츠 디자인의 아이콘이 됩니다.

2세대 1963년형 SL 파고다(W113)
1963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2세대 모델(W113) 230SL은 일명 ‘파고다(PAGODA)’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파고다 라는 이름은 230SL의 하드탑(hard top) 형태에서 나온 것으로, 이건 지붕 구조에서 나온 이름이었습니다.

3세대 1971년혈 SL(R107)
1971년에 발매된 3세대 모델 350SL(R107)은 벤츠의 SL 시리즈의 근대적 디자인을 보여주기 시작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3대의 SL 시리즈 하드탑 모델은 그 당시 인기 연예인들의 ‘자가용’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모델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원더우먼」 영화 시리즈로 알려졌던 배우 「린다 카터」 역시 3세대 SL을 탔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3세대 SL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는데, 4세대 모델이 나온 1989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이나 판매되었습니다.

4세대 1989년형 SL(R129)
그리고 1989년에 등장한 4세대 SL(R129)은 각진 디자인에 12 기통 5000cc 306마력의 고출력 엔진을 탑재해 고성능 럭셔리 쿠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렇지만 철제 지붕은 떼어서 집에 보관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대신 소프트 톱은 전동으로 여닫을 수 있었고, 전동 롤 바도 있었습니다.

5세대 2002년형 SL(R230)
5세대 모델부터는 철제 지붕을 전기모터와 유압을 이용해서 여닫는 구조가 적용돼서 그야말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지붕을 버튼만으로 여닫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동식 하드톱 구조는 5세대 이후 20년동안 7세대에 이르는 오늘날까지 벤츠 SL쿠페의 특징이 됩니다.
게다가 역대 SL 시리즈 모델의 앞모습 표정을 보면 점차로 강렬한 감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변화돼 온 걸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슬림 하지만 기능적인 벤츠의 SL 시리즈의 스타일 전통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4세대 모델의 표정은 어딘가 약간은 화가 난 듯한 인상이기도 합니다.

6세대 2013년형(R231)
그에 비하면 2002년에 나온 5세대 SL R230은 둥근 헤드램프로 인해 오히려 순진한 인상입니다. 그렇지만 2013년형으로 나온 6세대 SL의 R231에서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형태를 사다리꼴 형태로 아래쪽이 더 넓게 뒤집으면서 사각형 헤드램프의 눈매도 위쪽으로 찢은 것 같은 인상으로 바꾸었습니다.
간혹 서구인들이 이런 눈매를 마치 동양인만의 특징인 것으로 비하하는 태도를 목도하지만, 정작 6세대 2013년형으로 등장한 SL차량의 인상에는 그런 이미지를 차용한 것입니다.

7세대 2023년형 SL43 AMG(R232)
그리고 이런 성향은 2023년형으로 등장했던 7세대에서는 더욱 강조됐습니다. 그리고 이 디자인이 마이바흐 SL 680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물론 후드의 두 개의 블리스터 대신 중앙의 크롬 몰드와 삼각별 벤츠 엠블럼을 올렸습니다. 그렇지만 앞 얼굴은 더 사나워졌습니다.







1~7세대 벤츠 SL의 앞모습

2025년형 마이바흐 SL680의 앞 모습
이처럼 강력한 존재를 선망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하이브리스토 필리아(Hybristo-philia)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종의 우상 숭배와 비슷한 현상으로, 마이바흐 SL680은 강력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차량의 역사성을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강조하는 것이 벤츠라는 브랜드를 내세우면서 SL 모델의 역사성을 나타내는 아이덴티티 전략의 하나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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