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벤틀리가 완전 전기차 브랜드 전환 시한을 다시 늦추며 내연기관(ICE) 모델의 수명을 2030년대까지 연장한다. 신임 CEO 프랑크-슈테펜 발리저는 최근 발표에서 브랜드의 ‘Beyond100+’ 전략을 시장 현실에 맞게 조정한다고 밝혔다.
2030년 → 2035년, 그리고 다시 ‘유연한 전환’
당초 벤틀리는 2030년까지 전 라인업을 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했으나, 2035년으로 목표를 늦춘 뒤 이번에 다시 내연기관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를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콘티넨탈 GT, 플라잉스퍼, 벤테이가 같은 주력 모델이 내연기관 사양으로 계속 판매될 예정이다.
발리저 CEO는 “시장마다 전기차 수요가 제각각이고, 전동화 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며 “현실적인 선택을 통해 고객에게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포르쉐와 같은 길
이번 결정은 최근 포르쉐가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모델을 유지하며 전기차 출시 일정을 늦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두 브랜드 모두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 고객 충성도가 높은 만큼, 전기차와 전통적인 파워트레인을 동시에 제공해 수요를 충족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벤틀리만의 전통과 감성
벤틀리는 전통적인 엔진 사운드와 고급 장인정신을 브랜드 정체성으로 삼아왔다. 최근에는 6만 8,000달러(약 9,000만 원)에 달하는 옴브레(Ombré) 페인트 옵션을 선보이며, 최고급 맞춤형 제작 가치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장인정신은 여전히 강력한 내연기관 모델과 잘 어울리며, 벤틀리 고객층이 ICE 모델에 여전히 열광하는 이유다.
브랜드 헤리티지 역시 중요한 자산이다. 최근 브루나이 국왕을 위해 제작된 초희귀 1992년식 벤틀리 발 디제레(Val D’Isere) 왜건이 경매에 등장했으며, 1,800마일 주행에 불과한 2009년식 아쥬르(Azure)도 고가에 매물로 나와 과거와 현재의 벤틀리 모두가 수집가들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줬다.
EV는 계속 준비 중
발리저 CEO는 “전기차 개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첫 번째 벤틀리 EV는 예정대로 출시되며, 하이브리드와 ICE 모델이 최소 2035년까지 함께 시장에 존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간 벤틀리는 EV 기술을 정교화하고, 비용을 조율하며, 미국·중국·중동 등 주요 시장의 수요를 맞추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럭셔리 시장의 특성상 고객은 빠른 변화보다 선택권을 원한다. 규제 환경은 공격적인 전기차 보급을 요구하지만, 벤틀리와 포르쉐 같은 브랜드는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라는 전략으로 더 긴 호흡의 전동화 전환을 택하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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