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D 대전 격투 게임을 대표하는 인기 게임 중 하나인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가 31주년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대전 격투 게임 장르를 만든 스트리트파이터2가 만든 공식인 1:1 대결에 8명 정도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다른 격투 게임들과 달리, 3명이서 한 팀을 이뤄서 싸우는 방식이 독특한 느낌을 선사해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기억이 있네요.
제 기억으로는 당시 대전 격투 게임들이 고수를 만나면 정말 순식간에 끝나버렸기 때문에, 100원을 넣으면 최소 3판을 싸울 수 있는 가성비 게임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재미도 있었고요.
요즘 세대들은 테리 보가드나 시라누이 마이 등을 보면 바로 킹오브파이터즈를 떠올리겠지만, 사실 이 캐릭터들은 킹오브파이터즈를 위해 만들어진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아닙니다. 당시 아랑전설 등 다수의 인기 대전 격투 게임을 보유하고 있었던 SNK가 인기 캐릭터들을 총집합시킨 올스타 드림 매치 게임을 만든 것이 킹오브파이터즈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당시 오락실에서 흔했던 벨트스크롤 게임으로 기획되고 있었다는데, 도중에 격투 게임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그때는 흥행을 별로 기대하지 않은 실험적인 작품이었다는데, 당시 활약했던 2D 대전 격투 게임 중에서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게임이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와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뿐이니, 굉장히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에서 가장 간판격으로 활약하고 있는 캐릭터들을 꼽자면 아랑전설 시리즈 출신들이 많습니다. 테리 보가드, 엔디 보가드, 죠 히가시, 김갑환, 시라누이 마이 등이 대표적이죠.

당시 아랑전설 시리즈는 특이하게도 2~3개의 라인을 오가면서 싸우는 독특한 방식으로 주목받았던 게임입니다. 당시 대전 격투 게임들은 한 라인에서 대결이 펼쳐지기 때문에 구석으로 몰리면 끝이었지만, 이 게임은 위험할 때 다른 라인으로 회피할 수 있어서, 눈치싸움이 치열했습니다. 특히, 밸런스 등 격투 게임 완성도가 다소 부족했던 1편을 보완해 등장한 아랑전설2 스페셜은 SNK 간판 게임으로 꼽힐 정도로 많은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아랑전설에 이어 킹오브파이터즈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한국인 캐릭터 김갑환은 당시 네오지오 게임 국내 유통을 담당했던 빅코 김갑환 회장님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국내 최초 대전 격투 게임으로 잘 알려진 왕중왕 역시 이분이 설립한 빅콤 작품입니다.
SNK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3편에서 망한다는 공식으로 그대로 적용되면서 아랑전설3은 폭망했지만, 그 후속작인 리얼 바웃 아랑전설은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 킹오브파이터즈가 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보니, 자연스럽게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로 흡수합병되는 모습이 됐네요.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테리 보가드 같은 초기 캐릭터뿐만 아니라 기스 하워드, 빌리 칸 등 다른 캐릭터들까지 정말 탈탈 털어갔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기스 하워드 아들이자 테리 보가드 제자인 락 하워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랑 : 마크 오브 더 울브스를 재미있게 플레이했었는데,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에 묻혀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에 야심차게 아랑전설 시티 오브 더 울브스로 부활하긴 했는데, 흥행은 안타까운 수준입니다. 테리 보가드는 이제 아랑전설을 잊고, 킹오브파이터즈를 본가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용호의 권 역시 아랑전설과 함께 킹오브파이터즈의 토대가 된 게임입니다. 료 사카자키, 로버트 가르시아, 유리 사카자키, 타쿠마 사카자키, 킹 등이 용호의권 출신들입니다.
이 게임 역시 아랑전설과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격투 게임으로, 100메가 쇼크라는 홍보문구로 유명했던 게임입니다. 당시 오락실 게임과 비교해 압도적인 용량을 자랑한 덕분에, 화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캐릭터들이 거리가 멀어지면 크기가 줄어들었다가, 가까워지면 다시 커지는 연출로 눈길을 끌었네요. 싸우다가 많이 얻어맞으면 캐릭터 얼굴이 망가지는 연출 역시 굉장히 혁신적이었습니다. 참고로 여기에도 기스 하워드가 등장하는데, 동명이인이 아니라 아랑전설에서 등장하는 그 기스 하워드 맞습니다. 두 게임의 세계관이 연결되거든요.
이제 대전 격투 게임에서는 익숙한 개념이 된 초필살기 역시 용호의 권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입니다. 점프하면 피할 수 있는 조그만 크기의 장풍이 날아가는 스트리트파이터2의 파동권과 달리 점프로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패왕상후권 연출이 상당히 임팩트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용호의 권 역시 아랑전설과 같은 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픽을 더 향상시킨 2편은 나름 인기를 끌었으나 당시 경쟁작들이 너무 강력했고, 그 뒤에 당시 혁신적인 모션 캡처까지 동원해서 만든 외전이 폭망하면서, 결국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에 흡수합병됐네요. 그래도 초필살기와 유리, 킹으로 대표되는 복장 파괴 연출은 킹오브파이터즈를 상징하는 콘텐츠로 남아있습니다.

근육질 전쟁 용병 컨셉으로 등장했던 브라질팀의 랄프 존스와 클락 스틸은 T.A.N.K와 후속작인 이카리 출신 캐릭터들입니다. 원작이 초창기 슈팅 게임이다보니, 그냥 이름과 외형만 가져온 수준이지만, 타격과 잡기로 구분된 개성적인 플레이로 인기를 얻으면서, 시리즈 대대로 꾸준히 참전하고 있네요.
이카리는 당시 영화 람보2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람보 캐릭터를 오마주한 전쟁 게임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등장한 게임입니다. 워낙 오래된 게임이다보니 지금보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간 캐릭터를 조작하다가 중간에 탱크에도 탑승할 수 있는 등 나름 흥미진진한 게임이었습니다.

중국팀으로 등장하는 아사미야 아테나와 시이 켄수는 횡스크롤 슈팅 게임인 사이코솔저 게임 출신입니다. 이 역시 브라질팀과 마찬가지로 캐릭터만 가져와서 새롭게 설정을 입힌 경우입니다. 아테나는 초반에는 초필살기 버그 등 운용법이 잘 알려지지 않아 버리는 캐릭터로 인식됐지만, 강력한 대공기와 장풍 콤보를 가지고 있었던 시이 켄수와 무한 기절 짤짤이가 있었던 친 겐사이 덕분에 나름 인기 있었던 팀입니다.
사이코 솔저는 지금보면 그냥 흔한 횡스크롤 액션 게임처럼 보이지만, 당시에 아케이드 게임 최초로 가수가 부른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등장해 신선한 충격을 줬습니다.

이렇듯, 아랑전설, 용호의 권 캐릭터들을 주축으로, 쿠나사키 쿄 등 오리지널 캐릭터들을 더하고, 이카리, 사이코솔저 등을 남는 IP 캐릭터로 빈자리를 채워서 만든 게임이 킹오브파이터즈인 것입니다.
당시 SNK 올스타 게임으로 기획됐으면 당연히 들어가야 할 게임이 하나 빠지긴 했습니다. 바로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입니다. 당시 주먹으로 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대전 격투 게임 시장에서 무기를 들고 싸우다는 개념으로 신선한 충격을 줬던 작품으로, 칼 한방에 체력이 모두 사라지는 박력 넘치는 대결 구도와 신체가 절단되는 연출로 많은 인기를 얻었네요.
당시 SNK를 대표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킹오브파이터즈에 넣을 것을 고민했다고 하는데요, 개발팀이 아예 다르기도 했고, 무기를 사용하는 것 때문에 밸런스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결국 포기했다고 하네요.
그 뒤 20년 가까이 지난 뒤 킹오브파이터14에서도 드디어 나코루루가 참전했고, 킹오브파이터즈15에서 나루루루와 하오마루, 달리 대거까지 3명이 참여하면서, 킹오브파이터즈 공식 참전작이 됐습니다.

이렇듯 아랑전설, 용호의 권, 사무라이 스피리츠까지 모두 킹오브파이터즈에 참전하면서 킹오브파이터즈는 진정한 의미의 SNK 올스타 배틀 게임이 됐습니다. 그동안 SNK가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는데,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SNK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킹오브파이터즈가 앞으로도 SNK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