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자동차 업계가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이하 EREV, 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다. 중국에서 이미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EREV는 현대자동차가 양산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국내에서의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과연 이 기술은 전기차의 미래를 밝힐 희망인가, 아니면 또 다른 '친환경의 허울을 쓴' 논란의 시작이 될까?

EREV는 배터리와 전기 모터로 움직이는 순수 전기 파워트레인에 발전용 가솔린 엔진을 백업으로 장착한 형태다. 핵심은 엔진이 바퀴를 직접 구동하지 않고 오직 배터리 충전만 담당한다는 점이다. 실제 주행은 전기 모터만으로 이뤄진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가 상황에 따라 엔진으로 바퀴를 직접 구동하는 것과 달리, EREV는 철저하게 전기 모터만으로 주행한다. GM 초기 볼트나 BMW i3 레인지 익스텐더가 이런 방식을 채택했고, 최근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해 올해 2분기 신에너지 차량 시장의 10%를 차지했다.

현대차는 올해 뉴욕에서 열린 CEO(최고경영자) 인베스터 데이에서 2027년 출시될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내놓았다.
첫 타깃은 제네시스 GV70 EREV 북미형 모델이다. 북미 시장에는 현대와 제네시스 브랜드의 중형 SUV를 우선 투입하며 연간 8만대 이상 판매를 목표로 한다. 싼타페와 GV70에 가장 먼저 적용되고, 2028-2029년 출시 예정인 픽업트럭에도 EREV를 탑재할 계획이다.
기술적으로 2개의 모터만으로 사륜구동을 구현해 효율성을 높였고, 기존 엔진을 활용하고 배터리 용량을 약 30% 축소해 동급 전기차 대비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 성능 면에서는 완충 시 9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해 항속거리 불안을 완전히 해소한다는 목표다.

유럽 청정 교통 옹호 단체 트랜스포트 앤 인바이런먼트(T&E)는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했다. EREV가 중국에서 배터리 방전 시 일반 가솔린 차량만큼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우려 배경에는 유럽 PHEV의 뼈아픈 실패가 있다. 유럽 연구들은 충격적인 결과를 보여줬다. PHEV 소유자들은 세금 혜택을 위해 차를 구매했지만 거의 충전하지 않았고, 무거운 배터리를 싣고 가솔린으로만 달려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오히려 더 많은 배출가스를 내뿜었다.
T&E는 EREV도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EREV는 더 긴 주행거리, 강력한 전기 모터, 급속 충전 기능 등 기술적 우위를 갖췄지만, 대형 연료 탱크 때문에 사용자들이 주로 내연기관 모드로 주행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EREV는 실제로 환경적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중국 EREV의 '효용 계수', 즉 전기 모드 주행 비율이 70%를 넘는다. 운전자들이 실제로 충전하고 대부분의 주행을 전기로 한다는 의미다.
중국의 성공 요인은첫째, 세계 최고 수준의 충전 인프라로 어디서든 충전이 가능하다. 둘째, 전기차 운전이 사회적 일상으로 자리 잡아 충전이 습관화됐다. 셋째, 대형 모델에 큰 배터리를 장착해 한 번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길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충전 인프라는 중국에 한참 못 미치고, 전기차 문화도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T&E는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성공 공식이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본다.

T&E는 EREV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은 구현을 요구한다. 핵심은 전기 주행을 장려하는 설계다.
첫째, 연료 탱크를 줄여야 한다. 현재 많은 EREV가 70-80리터 대용량 탱크를 장착해 충전 없이도 수백 킬로미터를 갈 수 있다. 30-40리터로 제한하면 일상 주행은 전기로, 장거리만 엔진을 보조로 쓰게 된다.
둘째, 과도하게 큰 엔진을 피해야 한다. 지프 그랜드 왜거니어 EREV의 3.6리터 V6처럼 모든 작업을 처리할 수 있는 엔진이면 충전할 이유가 없어진다. 1.5리터 정도의 효율적인 소형 엔진을 쓰면 더 나은 성능을 위해 배터리를 충전하려는 동기가 생긴다.
현대차의 접근은 주목할 만하다. 배터리 30% 축소와 2개 모터로 900km를 확보한다는 전략은 효율성과 실용성의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 충전 습관으로 이어질지는 시장이 증명해야 한다.

EREV 논쟁은 전기차 전환 전략의 근본적 질문으로 귀결된다. 불완전해도 당장 배출가스를 줄일 실용적 해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순수 전기차로의 완전한 전환에 집중할 것인가?
실용주의적인 측면에서는 충전 인프라가 완벽하지 않은 현 시점에서 EREV가 항속거리 불안 없이 전기 주행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제대로만 사용되면 70% 이상 전기 주행이 가능하고, 이는 내연기관차 대비 엄청난 배출가스 감축이다. 현대차의 전략도 이런 실용주의에 가깝다. 2030년 21개 전기차 모델 구축 목표를 유지하되, EREV로 전환기를 버티겠다는 것이다.
순수 전기차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PHEV 실패 사례를 든다. 내연기관이라는 편한 도피처가 있으면 결국 그쪽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애매한 신호보다 명확하게 전기차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효과적이며, 과도기 기술에 자원을 분산하기보다 배터리 기술과 충전 인프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5년 현재, EREV의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중국의 성공이 다른 시장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몇 년이 증명할 것이다.
미국 시장에서는 현대차를 비롯한 제조사들이 EREV를 어떻게 설계하고 마케팅하느냐가 관건이다. 단순히 전기차 판매 부진의 임시방편으로 본다면 PHEV의 전철을 밟을 것이고, 진지하게 전기 주행을 장려하는 설계를 한다면 의미 있는 전환 기술이 될 수 있다.
유럽은 2035년 내연기관 판매 금지를 고수한다면 EREV의 수명은 10년에 불과하다. 그 짧은 기간을 위해 제조사들이 얼마나 투자할지는 의문이다.
결국 EREV 논쟁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사용 방식이다. 같은 기술이 중국에서는 환경 개선에 기여하고 유럽에서는 그린워싱이 될 수 있다. 작은 연료 탱크, 효율적인 소형 엔진, 큰 배터리, 빠른 충전 능력이 결합되면 EREV는 일상에서는 전기차로, 장거리에서만 보조 엔진이 작동하는 이상적 형태가 된다.
현대차가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그리고 북미 소비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향후 EREV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배터리 30% 축소가 비용 절감에는 합리적이지만 전기 주행 비율을 높이는 데는 불리할 수 있고, 900km 항속거리가 큰 연료 탱크에 의존한 것이라면 T&E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
T&E의 경고처럼 내연기관 기술의 수명을 무작정 연장하는 것은 자동차 산업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소비자가 당장 순수 전기차로 전환할 준비가 된 것도 아니다. EREV는 이 딜레마의 한복판에서 실용적 해법이 될 수도, 또 다른 그린워싱이 될 수도 있다. 결정적 차이는 제조사의 진정성, 소비자의 태도, 정부의 지혜에 달려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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