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D 씨라이언7은 왜 이런 스펙을 선택했을까? 그런데도 왜 성공했을까?
최근 BYD 씨라이언7을 시승했다. 궁금한 점이 많았던 모델이었다. 특히 8월에 800대 이상 출고되어 테슬라 모델들을 제외하면 수입 전기차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BYD는 ‘명실상부’ 중국차다. 유럽이나 미국 브랜드에 생산지만 중국인 이른바 ‘신분세탁’ 모델들과도 다르다. 즉, 고가의 소비재에서는 여전히 대표적인 디스카운트 요소인 중국이라는 꼬리표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라이언7이 대박을 친 것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에 도입된 씨라이언7은 스펙에도 의구심이 있었다. 먼저 출시된 BYD의 고성능 세단은 씰과의 스펙 차이다. 배터리 용량은 똑같지만 모터 한 개와 약 220마력이 부족하고 제로백이 3.8초에서 6.7초로 대폭 느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속거리는 398km에서 407km로 아주 조금 늘어났을 뿐이다. 사양에서도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인오디오 하이파이 시스템, 헤드 업 디스플레이가 삭제되었다.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과 15.6인치 대형 스크린이 추가되었기는 하지만.
즉, 가격이 200만원 낮다고는 해도 씨라이언7은 씰에 비해 스펙만 놓고 보면 분명한 다운그레이드인 셈이다. 해외에서는 씨라이언7에도 듀얼 모터를 포함하여 씰에 적용되었던 거의 모든 사양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 이것은 BYD 코리아에서 다운그레이드를 선택한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씨라이언7의 중국 내수형이나 유럽 수출형에 적용되는 800볼트 아키텍처와 12-in-one 통합 시스템이 적용된 e-플랫폼 에보가 적용되지 않은 점도 그렇다.
여기에 하나 더 불안 요소를 덧붙이자면 이제 판매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는 금년에 출발한 브랜드가 고작 3개 있는 모델 가운데 두 모델이 거의 겹치는 가격 포지션에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최소한 한 모델은 거의 반드시 희생되기 마련이다. 최악의 경우는 고객들이나 판매 네트워크가 스스로 혼란을 일으켜서 둘 다 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듯 원산지 디스카운트와 제품 다운그레이드 등 불안 요소들을 한꺼번에 끌어 안고 출시된 BYD 씨라이언7. 그런데도 씨라이언7은 시쳇말로 대박을 쳤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게 된다. 오늘 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첫번째 성공 요인은 누가 뭐래도 SUV 바람이다. 크로스오버 SUV 시장은 이제는 완벽한 대세 시장이 되었다. SUV는 더 이상 라이프스타일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브랜드 파워나 네트워크의 판매력에서 부족한 신흥 도전자 입장에서는 더 넓은 고객층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시장이 더욱 중요하다. 즉, 타율이 부족한 타자가 안타를 많이 치려면 타석에 많이 들어서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타석에 많이 들어서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만일 홈런만 노리고 이슈의 중심에 서기를 원한다면 거의 100% 실패할 것이다. (그러면 곧 타석에 들어 설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다.) 즉, 장타를 노리고 큰 스윙을 하는 대신 진루타를 친다는 현실적인 목표를 겨냥하는 것이다. 씨라이언7이 고급 사양을 포기하는 대신 넓은 실내와 낮은 가격이라는 대중적 경쟁 포인트를 강화한 것이 바로 이런 방향성이다.
그리고 여기에 아주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씨라이언7이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본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BYD 코리아가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조용하고 매끄러운 주행 품질이다. 만일 씨라이언7의 주행 특성이 씰과 비슷한 스포티한 성격이었다면 아무리 무난하게 제품 사양과 가격을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씨라이언7은 유틸리티 SUV와는 분위기가 다른 고급스러운 실내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요즘은 크로스오버 SUV가 대세 장르다. 즉, 라이프스타일 또는 레저용 모델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SUV를 이전에 세단처럼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큼지막하고 푹신한 시트, 아늑한 분위기의 실내 디자인을 가진 씨라이언7의 분위기가 더 어울릴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이 BYD 코리아의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800볼트 아키텍처를 포함한 e-플랫폼 3.0 에보를 적용하지 않은 것이다. 플랫폼의 업그레이드는 분명 기본 가격의 상승으로 직결될 것이고, 높은 가격의 800볼트 아키텍처와 고급 플랫폼은 대중적 모델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가능하다면 고성능 첨단 이미지가 중요한 씰에게 적용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어쨌듯 BYD 코리아는 한 달에 1천대를 판매하는 수입차 브랜드가 되었다. 만일 이 실적을 앞으로 꾸준하게 굳힐 수 있다면 토요타와 폭스바겐을 제치고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메인스트림 브랜드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굳이 비슷한 판매량의 렉서스나 볼보와 경쟁할 필요는 없다. 메인스트림 브랜드의 선두주자인데 그것도 전기차로만 이룩한 실적이라면 그것은 훨씬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에서 BYD가 의미 있는 수익성으로 지속 가능성을 증명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내수 시장에서 가격 전쟁으로 망가진 회사의 수익성을 서유럽 시장 수출에서 복구하는 수준을 너머 역대급 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BYD가 우리 나라 시장에서도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정확하게 파악한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핵심 시장을 명료하게 공략하는 전략적 기동이 빛나는 BYD 코리아의 한국 시장 첫 해. 생각보다 빠르게 정착하고 있다. 살짝 두렵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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