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channel4
영국 공영방송 채널4의 탐사 다큐 시리즈 ‘디스패치(Dispatches)’ 시청자들은 지난 주말 뜻밖의 반전을 맞았다. ‘AI가 내 일을 빼앗을까(Will AI Take My Job?)’라는 주제의 진행자 ‘아이샤 가반(Aisha Gaban)’이 방송 말미에서 돌연 이렇게 고백한 것이다.
“혹시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저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제 얼굴과 목소리는 모두 AI로 생성됐어요.”
채널4는 영국 방송 역사상 처음으로 완전한 AI 앵커를 등장시켰다. 가반은 실제 기자처럼 여러 현장을 누비며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사실은 패션테크 기업 세라핀 발로라(Seraphinne Vallora)와 칼렐 프로덕션이 합성한 가상 인물이었다. 표정, 손짓, 말투까지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돼 시청자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속아 넘어갔다.
출처 : TVBEurope
방송 제작진은 이번 실험이 단순한 화제성 장치가 아니라, ‘디지털 인간이 얼마나 현실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사회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루이사 컴프턴 채널4 보도국장은 “AI가 신뢰할 수 있는 저널리즘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이번 사례는 기술이 얼마나 쉽게 현실을 위조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채널4는 윤리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방송 말미에 AI 사용 사실을 명시했다. 동시에 1000명의 영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도 공개했는데, 응답자의 76%가 이미 인공지능을 업무에 도입했다고 답했다. 41%는 채용을 줄였으며, 절반 가까이는 향후 5년 내 인력 감축을 예상했다. AI가 노동 현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AI 앵커’는 기술이 언론의 역할마저 침범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의 ‘AI 신문 앵커’, 쿠웨이트 뉴스의 ‘페다(Fedha)’, 그리스 공영방송 ERT의 ‘헤르메스(Hermes)’ 등 다양한 가상 진행자들이 등장했다.
쿠웨이트 뉴스의 가상앵커 '페다' (출처 : Khaleej Times)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시도가 언론의 신뢰를 훼손하고, 인간 기자의 존재 가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채널4는 “AI를 기자의 대체재로 쓰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시청자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감각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글 / 김지훈 news@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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