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BOX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헤일로’가 PS5로 출시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이미 포르자 호라이즌, 기어스 오브 워 등 XBOX를 대표하는 인기 게임들이 PS5로 출시됐으니 당연한 수순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헤일로는 XBOX 팬들 입장에서는 정말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게임이니까요. 마지막 자존심까지 팔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동안 팬심으로 XBOX를 지켜오던 이용자들은 허탈하겠지만, PS5 이용자 입장에서는 왜 XBOX 이용자들이 24년간 마스터 치프의 매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드디어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무려 24년 전에 나왔던 게임을 리메이크한 만큼 지금보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인류에게 있어 살아있는 전설이자 희망, 그리고 적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마스터 치프의 활약은 여전히 매력적일 것이니까요.
해외에서는 마스터치프와 더불어, 하프라이프2의 고든 프리맨, 데드 스페이스의 아이작 클라크까지 묶어서 우주를 지키는 3대 공돌이라는 밈이 있습니다. 여기에 지옥으로 뛰어들어가 악마들을 갈아버리는 둠가이까지 더하면 좀비들에게도 예절 교육을 시켜주는 살벌한 모임이 됩니다. 오히려 적들이 불쌍해지는 지구 최강의 인간병기들을 만나보시죠.
앞서 언급한 헤일로, 하프라이프2, 데드 스페이스가 비슷한 시기에 미친듯한 활약을 했다보니 같이 엮여서 3대 공돌이 밈이 유명세를 얻었지만, 누가 뭐래도 원조 슈퍼솔저는 역시 둠 시리즈의 주인공 둠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울펜슈타인의 주인공 B.J. 블라즈코윅즈와 함께 지금의 FPS 장르를 만들어낸 원조이니까요.
원래 둠가이는 이름도 없고, 대사 한마디도 없는 몰개성한 인물이었습니다. 개발자인 존 로메로의 설명에 따르면 주인공에 대한 정보가 없을수록 플레이어가 주인공에 자신의 인격을 대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고 하네요.
그렇다보니, 팬들이 둠의 주인공을 부를만한 호칭이 없어서, 편의상 ‘둠’에 나오는 남자라는 뜻으로 둠가이라고 부르던 것이 굳어져 공식적인 이름이 됐습니다.
초창기 둠은 워낙 오래된 게임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게임에서 보여지는 둠가이의 활약은 정말 미친 수준입니다. ‘마스터 치프’는 아예 스파르탄 프로젝트로 탄생한 강화 인간이라는 설정이 있지만, 둠가이는 그런 것도 없이 괴물들을 때려잡습니다. 게임 내 권총 공격력이 5~15인데, 주먹의 공격력이 2~20이니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요.
당시에는 무기 수납을 표현할만한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에, 전기톱, 산탄총, BFG9000 등 엄청나게 많은 무기들을 한꺼번에 들고다니면서 적들을 그야말로 찢어버립니다. 탄약만 하더라도 수백발씩 들고 다니는데, 평범한 인간이라면서 도라에몽 주머니라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SF 계열의 FPS 게임에서는 기본 플레이가 된 로켓 점프 역시 클래식 둠에서 가장 먼저 탄생한 개념입니다. 당시에는 정상적으로 갈 수 없는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숨겨진 기믹 같은 개념이었는데, 멀티플레이 중심이었던 퀘이크부터는 고수와 하수를 가리는 기준이 됐습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괴력의 소유자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이 말이 안된다는 것을 드디어 깨달았는지, 리부트된 ‘둠(2016)’에서는 천사에게 권능을 부여받아 치천사가 됐다는 설정이 더해졌습니다. 이전까지는 ‘전기톱은 훌륭한 대화수단이지’하면서 다녔는데, ‘둠(2016)부터는 천사의 권능 덕분인지 정말 악마들을 맨손으로 찢어버리는 연출까지 나오게 됩니다.
지난 2001년 헤일로 전쟁의 서막과 함께 탄생한 마스터 치프는 스파르탄 프로젝트로 탄생한 슈퍼솔저로, 외계 생명체인 코버넌트와 지구의 전쟁에서 인류의 마지막 희망으로 활약합니다.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는 헤일로 리치에서 대부분의 스파르탄들이 전멸한 뒤, 마지막 희망이 된 마스터 치프는 전 우주의 운명이 달려 있는 헤일로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인류를 위협하는 적들과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마스터 치프는 스파르탄 프로젝트 덕분에 강화 인간이 됐다고는 하나, 나름 군사 훈련을 받았을 다른 병사들과 말도 안되는 전투 능력 차이를 보여줍니다. 인간측 무기는 기본이고, 코버넌트 측 무기와 전술까지 능통하며, 수백 척의 함선과 함대 정거장까지 날려버리는 등 사실상 혼자서 코버넌트 전체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헤일로3 프롤로그에서는 우주선에서 뛰어내린 후 대기권을 돌파해서, 숲에 불시착하고, 멀쩡히 다시 깨어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고위 간부는 물론이고, 말단 병사에게서도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으며, 심지어 적으로 만난 코버넌트 캐릭터도 마스터 치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치프라는 계급은 우리나라도 따지면 원사 계급인데, 10대 때 이미 원사 계급을 달았고, 나중에 전 우주를 구하는 활약을 펼쳤음에도 계속 원사 계급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진급을 못한 한을 적들에게 푼 것일까요? 아니면 캡틴 존보다는 마스터 치프라는 칭호가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요?
위 주인공들은 나름 군인이라는 설정이 있으니 잘 싸우는 것이 이해가 되지만, 하프라이프2의 주인공 고든 프리맨은 정말 공돌이입니다. MIT 출신 이론 물리학 박사이자, 블랙 메사 연구소 소속 연구원이었는데, 다른 차원에서 쳐들어온 외계 괴물과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되자, 내제되어 있던 학살 본능을 깨우치게 됐나봅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하기도 바빴을텐데, 권총, 산탄총, 무반동포 등 다양한 무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전문 훈련을 받은 군인들은 물론, 전차, 헬리콥터, 그리고 보기만 해도 겁이 날 것 같은 외계 생명체까지 모두 때려잡습니다. 아무리 연구소에서 지급한 HEV 보호복을 착용했고, 재난 대비 훈련을 받았다고 하나, 결국 일반인인데 말이 되나요?
더욱 황당한 것은 빠루, 정식 명칭으로는 쇠지렛대입니다. 별다른 무기가 없는 초반에만 잠깐 쓰게 되는 무기이지만, 단순한 대미지 계산 시스템 때문에, 외계인도 때려잡고, 전차까지 터트리는 무지막지한 모습을 연출하기 때문에 고든 프리맨을 상징하는 무기가 됐습니다. 제작사에서도 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하프라이프 알릭스에서는 “그는 쇠지렛대 하나로 블랙 메사를 탈출했다고 하더군. 믿거나 말거나!”라는 대사가 나오며, 엔딩에서 고든에게 쇠지렛대를 건내주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연배가 좀 있는 위 선배들과 비교하면 나름 신세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데드스페이스 아이작 클라크 역시 순수 공돌이입니다. 1편 무대가 되는 이시무라호에 엔지니어로 탑승한 그는,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습격해오면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공돌이답게 무기로 사용하는 것들이 전부 공구라는 점입니다. 별도의 군사훈련을 받은 적이 없지만, 우수한 엔지니어답게 주변의 공구들을 개조해서 괴물들을 상대하고, 괴물들로 인해 반파된 이사무라 호를 혼자서 고쳐내는 천재의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데드 스페이스를 상징하는 무기가 된 플라즈마 커터입니다. 원래는 초고온의 플라스마 빔을 사출해서 대상을 절단하는 산업용 공구이지만, 아이작은 이걸로 괴물들의 사지를 절단하는 용도로 활용합니다. 게임 중 등장하는 괴물들은 불사의 존재들이기 때문에 완적히 죽일 수 없으니, 팔다리를 잘라서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게 무력화시키는 것이죠.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나는 괴물들 때문에 무서워서 게임을 포기했다는 이들이 많았는데, 역시 고인물들이 많아지니 가로 모드로 다리를 썰고, 세로 모드로 팔을 썰어서, 기어오는 적들을 짓이기는 그로테스크한 플레이가 일상이 됐네요.
다들 나온지 꽤 된 게임들이다보니, 플레이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조만간 최신 기술로 부활한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둠가이는 둠(2016) 이후로 후속작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헤일로는 PS5 출시 때문에 1편을 시작으로, 계속 리메이크가 나올 듯 합니다.
하프라이프3 루머는 심심하면 나오는 소식이고, 데드 스페이스는 원작자인 글렌 스코필드가 후속작 제작을 위해 최근 EA를 인수한 사우디 경영진에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괴물들이 불쌍해지는 이들이 동시에 활약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기대가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