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의 시계는 빠르게, 그리고 또렷한 방향으로 흐른다.
중국 심천, 그러니까 센젠을 방문한 것은 7년만이었다. 7년 전의 쉔젠은 활기차기는 했지만 우리의 옛 세운상가처럼 작은 가게들이 북적거렸던 곳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스타트 업들의 온상이었다는 기억이다. 하지만 그 동안 무슨 일어난 것일까. 이제는 우리나라보다도 미래를 살고 있는 느낌이다. 단순히 건물이나 자동차 디자인 같은 것 이야기가 아니다. 화훼이나 DJI, 그리고 오늘 방문하는 BYD의 본사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쉔젠 바오안 공항에서 쉔젠 시내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공사중이었다. 이미 왕복 8차선인 도로를 무려 16차선으로 넓히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 현장에 공장이 있었다. 교량의 상판을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공급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가 한창 가속성장을 하던 20세기 말이 떠오른다. 16차선 고속도로라. 그것도 빠르게 건설중인. 돈이 돌고 있다는, 게다가 빠르게 모여들고 있다는 뜻이다.
쉔젠 시내에서 내 눈을 붙잡은 것은 스쿠터들이었다. 거의 100%가 전동 스쿠터다. 자동차의 전동화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퍼스널 모빌리티 디바이스인 스쿠터는 완전하게 전동화를 끝냈다는 뜻이다. 나중에 방문한 정저우 시내에서도 스쿠터는 95% 전기 스쿠터였다. 우리보다 한참 빠르다.
그리고 스쿠터가 놀라게 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보도블럭 위의 우리로 치면 자전거 전용 도로를 전기 스쿠터들이 달리고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심한 자동차들의 교통 체증을 뒤로 하고 전동 스쿠터들은 원활한 퍼스널 모빌리티를 제공하고 있었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서 엄연한 교통 수단으로서 자리를 잡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도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천대받는 우리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렇듯 중국은 단순히 큰 나라, 세계의 공장이 아니었다. 성장하는 경제와 함께 모빌리티에 관한 한 세계를 리드하는 나라였다. 그리고 단순히 빠르게 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말로만 퍼스널 모빌리티 디바이스, 자동차에서 모빌리티로의 전환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그들이 설 자리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과 대조되기 때문이다. 전동 킥보드의 퇴출을 이야기하기 보다 새로운 디바이스의 활용도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정확한 제도를 수립하는 것이 정책이 아닐까.
2. 다 만드는 BYD, 그러나 언젠가는 효율성을
BYD 본사 안, 그리고 정저우 시내의 브랜드 홍보관인 ‘디 스페이스(D space)’를 살펴보면서 매우 놀랐다. 그것은 BYD가 1994년에 배터리 제작사로 출발한 젊은 회사라는 것도, 세계에서 전기차와 전동화 자동차를 가장 많이 만드는 자동차 제작사라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놀란 것은 내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수직계열화 수준이었다.
BYD는 배터리 회사로 출발했으니 배터리와 인버터, 고성능 전기 모터 등 전동 파워트레인, 반도체 등을 자체 생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완성차 제작사이므로 자동차의 차체 부품들을 직접 만드는 것도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정저우 공장 내에서 ‘신의 눈’ 자율 주행 시스템의 핵심 부품인 라이다까지 직접 생산하고, 전기 슈퍼카인 양왕 U9이 사용하는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디스크까지 사내에서 생산한다는 것은 아마도 현존하는 자동차 제작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직 계열화 수준일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BYD 오토 자체 생산에서 BYD 계열사 설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20년에 설립하여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등 새시 모듈을 상샌하는 푸디가 대표적 예이고, 전장용 반도체는 BYD 반도체에서 공급한다. 직접 제작에서 계열사 설립, 시장 조달의 단계로 개방형 생태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만 미래 경쟁력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자율 주행과 관련된 라이다 센서는 BYD 오토 내에서 직접 제작중인데 이는 기술적 안정성과 규모의 경제가 이루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현대차 그룹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직 계열화 수준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현대제철이 철판까지 만들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품은 계열사는 물론 기술 협력을 통하여 성장한 시장의 사외 파트너사 등 복수의 공급선으로 안정감을 더 갖추었다는 점에서 BYD보다 좀 더 진화한 서플라이 체인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술 전문 기업이며 체계 통합 능력을 보유한 티어 0.5 수준의 현대 모비스를 갖고 있다는 점도 현대차 그룹의 장점이다. 즉, BYD는 좀 더 진화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라이다를 포함한 자율 주행 시스템, 배터리와 반도체 등 전동 파워트레인 분야에서는 BYD가 현대차보다 진일보했다는, 즉 미래 모빌리티 영역에서는 BYD 생태계가 보다 견고하다.
3.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BYD, 그러나 사용자 시나리오는…
중국 현지에서 취재된 BYD 시승기들을 보면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깊은 물에서도 안전하게 떠서 자력으로 탈출까지 할 수 있는 SUV 양왕 U8, 그리고 두번째는 제자리에서 서스펜션을 움직이며 춤을 추거나 달리면서 점프해서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 슈퍼카 양왕 U9일 것이다.
기술적으로 대단하다. 실제로 양왕 U8이 무려 28도의 모래언덕을 가속하며 올라가는 장면, 그리고 42도의 포장 언덕에 정지했다가 다시 출발하는 장면에서 1200마력에 육박하는 쿼드 모터 파워트레인이 엄청났다. 트랙에서 직접 운전해 보았던 양왕 U9은 1300마력의 최고 출력보다도 2.5톤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플랫한 자세와를 유지하는 DiSus-X 액티브 서스펜션과 e4 쿼트 모터의 정교한 토크 제어가 실현하는 접지력이 놀라웠다.
한 마디로 BYD는 엄청난 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도 효율의 DM-I, 고성능의 DM-P, 저회전 토크 제어 등 오프로드에 최적화된 DMO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으며, 전자 제어 서스펜션도 댐핑 제어, 에어 서스펜션, 유압 높이 제어, 액티브 세스펜션 등으로 DiSus를 C, A, P, X 등으로 세분화할 정도로 기술 개발 수준이 엄청나다.
그런데 차를 살펴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왜 할까?” 차를 물에 띄우고, 춤을 추거나 점프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이른바 ‘사용자 시나리오’에 대한 질문이다. U8은 홍수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서, U9은 노면에 파손된 부분이 있을 경우에도 차량이 파손되지 않도록 점프해서 피할 수 있다는 나름의 시나리오를 BYD 측은 말한다. 하지만 ‘홍수가 났는데 차를 타?’, ‘노면 균열을 점프로 피한다고? 오히려 차가 더 충격을 받지 않을까?’하는 또 다른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사용자 시나리오가 견고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그보다는 다른 브랜드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을 BYD의 최상위 럭셔리 브랜드로 구현해서 보여준다는 것은 BYD 브랜드의 실력을 과시하는 것에 더 큰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새로운 기능들을 구현하는 데에는 동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노크만 하면 열리거나 닫히는 도어처럼 실용성보다는 과시용인 기능도 많다. 게다가 출력도 과잉이다. 양왕 U8과 U9은 1천마력이 넘고 어지간한 모델들도 600마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즉, 전동화 친환경 브랜드라고 하기에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불필요하고 과한 기능들이 상당히 많다는 뜻이다.
물론 BYD는 여러 개의 서브 브랜드를 통하여 다양한 시장과 이미지를 시험하고 개척하는 과정일 것이다. 메인스트림 시장의 BYD 브랜드의 오션 시리즈와 왕조 시리즈, 그 위의 프리미엄 시장에 서구적 첨단 이미지의 덴자와 정통 오프로더의 터프함을 갖춘 포뮬라 바오, 최정점에 럭셔리 브랜드인 양왕이 각각의 시장과 이미지를 시험하고 있다.
어느 시점에서는 부품사를 계열 분리하고 외부 공급망을 두텁게 성장시키듯이 스펙과 사양도 시장과 브랜드의 성격에 알맞게 최적화할 시점이 올 것이다. 과도한 스펙과 사양은 경쟁력과 수익성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계속 갈 수는 없다. 이미 중국내 신에너지 자동차 시장의 성장 둔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은 중국 자동차 제작사들이 많다. BYD는 서유럽 수출을 통하여 수익성을 보존하고 있지만 제조 원가와 사양의 최적화는 어느 시점에서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타협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BYD의 막내 모델에서 보았다.
4.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오히려 막내였다.
전언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BYD의 이미지는 우리 나라 안에서 현대차와 비슷하다고 한다. 즉, 많이는 팔리지만 힙하지는 않은 이른바 무난한 선택지라는 뜻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양왕이나 덴자, 포뮬라 바오 같은 개성과 클래스가 높은 브랜드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데 메인스트림 시장의 주류 브랜드의 힘은 무섭다. 주류 브랜드 만이 시장의 흐름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많은 고객들이 받아들여야만 그것은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다.
귀국하기 전 나는 정저우에서 약간의 여유 시간이 있어서 BYD 디 스페이스를 다시 방문할 수 있었다. 각 층마다 자리잡고 있는 브랜드 쇼룸 가운데 1층의 BYD 쇼룸을 방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BYD의 엔트리 모델인 돌핀이었다. 그런데 뒤에 가서 보니 ‘천신지안’ 즉 신의 눈이라고 불리워지는 DiPilit 시스템이 적용된 모델이었다. 금년 초에 BYD가 전 모델에 DiPilot 자율 주행 시스템을 기본 적용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그것이 엔트리 모델인 돌핀의 중국 내수용 모델에 적용된 것을 발견한 것. 아마도 엔트리 레벨인 DiPilot 100일 텐데 그렇다면 라이다는 사용하지 않지만 레이다 5개, 카메라 12개, 그리고 초음파 센서 12개 등으로 적잖은 센서를 갖고 있다. 실제로 한쪽 도어 미러에만 카메라가 두 개나 장착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BYD 모델들은 거의 모두 도어 미러 끝에 청록색 라이트가 달려 있었다. 물어봤더니, 청록색 램프는 레벨 3 수준의 자율 주행에 대응할 수 있는 모델이라는 뜻이란다. 아직 법률이 발표되지 않아서 지금은 사용할 수 없지만, 레벨 3 자율 주행이 공식화되는 순간 BYD 자동차들은 청록색 램프를 켜고 자율 주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청록색 자율 주행 표시등이 막내인 돌핀에 ‘천신지안’ 엠블렘과 함께 달려 있었던 것. 내게는 이번 BYD 방문에서 물에 뜨는 차나 춤 추는 차보다 이 막내가 훨씬 놀랍고 두려운 존재였다.
우리 나라도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유지 보조가 기본 장착되는 모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 모빌리티가 앞서가려면 ABS와 ESC가 법으로 의무 사항이 되었듯이 부분 자율 주행도 법 제도로 정확하게 정의되고 가능하다면 의무화되기를 바란다. 신기술에 대한 감수성이 높기로 유명한 우리 나라 고객들이 아닌가.
5. 하지만 우리의 기회도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과 BYD의 기세는 거침이 없다. 넓은 중원이 주는 우리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스케일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아직은 중국이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BYD 방문 마지막 공식 일정은 정저우 공장 견학이었다. 중국 중원에 자리잡은 정저우 공장은 중국 전역을 커버하기 위하여 이곳에 자리잡은 새 공장이었다. 현재 축구장 1500개 면적일 정도로 이미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아직 두 살 밖에 안 된 어린 공장이므로 미래가 더 기대되는 공장이다.
그런데 공장의 관리 상태는 아쉬웠다. 조명은 어두침침하고 바닥도 깨끗하지 않았다. 로봇으로 진행되는 용접 라인은 필요 이상으로 용접 불꽃을 통로까지 튀기고 있었다. 게다가 값비싼 독일 쿠카의 로봇은 먼지를 두텁게 뒤집어쓴 채 일하고 있었다. 겨우 두 살 된 공장인데 한 십 년은 된 듯했다.
공장의 청결 상태는 생산 라인의 관리 상태와 직결되고, 결국은 제품의 품질과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보기 좋으라고 청소하고 관리하는 것 만은 아니다. 청소의 품질 개선 효과가 고객의 만족도와 기업의 이윤과 연관된 데이터로 축적되고 경영에 반영되기 전에는 단순한 지출처럼 느껴질 수는 있다. 앞으로 경험이 쌓이고 보다 고급 시장을 상대하게 되면 94년생 젊은 회사인 BYD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완공된 기아의 PBV 전용 ‘에보 플랜트’를 방문했었다. 확실하게 차이가 있다. 청결도에서도, 자동화 수준에도 상당한 수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생산 라인에 투입된 로봇도 현대 계열사 – 아마도 현대 위아일 것이다 - 의 제품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차이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그것은 라인 중간에 자리잡은 휴게실이었다. 거의 완벽한 무인 프레스 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생산 라인의 직원들이 쉴 공간을 충분히 확보한 것이다. 이것은 안전 사고의 우려와 제품 품질 향상에 직원들의 근무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그 동안의 데이터가 증명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투자다.
중국의, 그리고 BYD의 발전 속도와 기세는 무섭다. 우리가 해 보지도 못한 것을 이미 실현한 부분도 분명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빠르면서도 착실하게 쌓아올린 견고함이 있다. 그 견고함을 무기로 무서운 기세의 중국 모빌리티 산업이지만 분명 우리의 비교 우위를 만들어갈 기회가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처럼 이것 저것 다 시도해 볼 수 있는 리소스를 갖고 있지도 않다. 정확한 SWOT 분석을 통한 미래 전략의 수립과 전력투구가 절실하다.
앞으로 3년? 길어야 5년 정도의 시간이면 결판이 날 듯 하다.
흥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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