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미국 시장에서 4년 연속 판매 증가가 확실해진 가운데, 브랜드 경영진은 과거와는 다른 전략적 톤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LA 오토쇼에서 EV6 미국 생산 계획과 EV9 GT 트림 등 고성능 라인업을 앞세웠던 기아는, 당시 미국 정부의 EV 세액공제 정책 변화와 테슬라식 충전 규격 확산을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하지만 1년 사이 시장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2024년 9월 30일부로 EV 세액공제가 종료되며 EV 구매 수요가 단기 급증 후 급격히 둔화했고,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와 관세 인상 정책이 한국산 EV 가격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EV9 GT는 출시가 ‘무기한 연기’됐고, EV6는 2분기 EV 판매 호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기록 경신에서 멀어졌다.
기아 미국법인 마케팅 수석부사장 러셀 웨이거는 “기아는 고객이 원하는 선택지를 동시에 제시할 수 있는 브랜드”라며, “우리는 특정 파워트레인을 강제하지 않고 시장에 맞는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아는 3열 SUV 시장의 핵심 모델인 텔루라이드에 두 번째 세대 모델과 신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추가하며 판매 기반을 강화했다. EV9은 3분기 판매 기록을 경신했고, 카니발·K5도 각각 48%, 85% 증가하며 폭넓은 성장세를 보였다.
기아 미국법인 영업총괄 에릭 왓슨은 EV 시장 상황에 대해 “올해 여름까지 이어진 세액공제 수요 당겨지기 현상 이후 시장이 크게 식었다”고 설명했다. EV 점유율은 10% 수준에서 최근 4~5%로 떨어졌으며, “2026년에는 다시 6~8% 수준까지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전년 같은 수준의 시장 침투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기아는 2021년 EV6를 통해 컴팩트 전기 SUV 시장의 중심에 선 브랜드였지만, 최근 경쟁이 급격히 심화한 만큼 EV 전략에도 조정이 필요해졌다. EV9은 고급 전기 SUV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으나, EV4는 미국 출시 계획이 ‘무기한 보류’ 상태이며, 시장이 기다리는 EV3는 가격·생산지·출시 일정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소비자의 관심은 다시 하이브리드로 이동했다. 관세 인상과 보조금 소멸로 EV의 가격경쟁력이 약해지면서, 기아의 하이브리드 라인업 확장이 브랜드 전반의 판매를 끌어올리고 있다. 텔루라이드처럼 고가 트림의 수요가 꾸준한 점도 기아의 미국 수익성을 지탱하는 요인이다.
기아는 EV6·EV9의 일부 생산을 북미로 이전한 만큼, 향후 EV3 등 신규 모델도 북미 생산 검토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웨이거는 “생산 거점을 이전하며 확보한 유연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며, 기아가 미국 시장 상황에 맞추어 EV·하이브리드·가솔린 전 라인업을 균형 있게 배치하려는 전략을 시사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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