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마의 목적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난 주에 제네시스 마그마 브랜드와 관련하여 중요한 행보가 있었다. 하나는 국내에서, 다른 하나는 프랑스와 미국에서였다. 국내와 미국 LA 모터쇼에서는 마그마 브랜드의 첫 모델인 GV60 마그마가 공개되었으며, 프랑스의 폴 리카르 서킷에서는 GV60 마그마와 함께 마그마 GT 콘셉트와 G90 윙백 콘셉트 등이 함께 공개되었다.
마그마의 첫 인상은 좋았다. 작년 이맘때까지도 구체적인 행보가 정해지지 않았던 브랜드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특히 메시지가 좋았다. 마그마의 한글 자음 ‘ㅁㄱㅁ’을 형상화한 엠블렘이 정체성을 시각화 한 점도 좋았고, 고성능 브랜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것을 우아하게 함축한 ‘rewarding, not challenging’이라는 슬로건이 정말 좋았다. 빠른 것만 좋아하는 애들과는 다른, 빠르고 강력한 것에서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느낌, 바로 잉여력이 선사하는 럭셔리의 이미지인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 실행 방안으로 가면서 조금씩 의구심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일단 GV60 마그마는 가장 논리적인 선택이었다. 파워트레인은 최신 N 브랜드의 것과 많은 부분을 공유지만 열 관리 등 GT로서의 성격에 기술 개발이 더해졌다. 그리고 특히 샤시에서 차이가 컸다. 아이오닉 6N이 시도했던 롤 센터를 낮추는 접근법을 GV60 마그마도 채택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롤 센터가 낮아지면 접지력 제어는 좋아지지만 코너에서 롤링이 커질 수 있다는 점, 그렇다고 해서 댐핑을 강하게만 만들면 ‘rewarding’이라는 말이 뜻하는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래서 훨씬 섬세한 접근을 선택한다. 서스펜션 트래블에 따른 섬세한 댐핑 컨트롤, 서스펜션이 끝까지 눌리거나 늘어났을 때의 안정감과 승차감을 위하여 EOT(end of travel) 컨트롤 개념도 적용했다.
그 결과 GV60 마그마는 단순히 빠르고 코너링이 빠를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즐겁게 탈 수 있는 우수한 승차감을 갖게 되었다. 단순히 고급 하드웨어를 사용하여 얻어지는 질감의 향상의 수준이 아니다. 슬로건으로 함축한 브랜드의 성격을 제품 차원에서 구현하기 위하여 어떤 성격을 갖추어야 하는가 정확한 목표를 설계했다는 말이다.
칭찬은 여기까지다.
GV60 마그마는 좋은 차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 첫번째는 새로운 헤일로 서브 브랜드의 첫 모델로서는 임팩트가 약하다는 것. 솔직히 말해서 GV60은 상업적으로도 커다란 성공을 이루었다기 보다는 같은 플랫폼의 아이오닉 5와 분명한 질감의 차이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는 모델이다. 그렇다면 마그마의 첫 시리즈 프로덕션 모델인 GV60 마그마는 흥행보다는 상징성에 더 집중했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왁자지껄하게 만들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폴 리카르 서킷에 모습을 드러냈던 G90 윙백 콘셉트와 주문 제작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언급했다면 GV60 마그마는 GV60의 골격에 새로운 디자인의 스킨을 씌우는 페라리나 포르쉐의 원 오프 프로그램 작품같은 모습을 선택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동커불케 사장이 ‘정규 모델의 고성능 프로그램이 마그마인데 이것 만으로는 아이콘이 부족해서 탄생한 것이 마그마 GT 콘셉트’라고 말했다는 사실에서 제네시스도 GV60 마그마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다.
GV60 마그마에서 부족한 두번째 요소는 브랜드의 방향성이다. 앞서 말했던 ‘rewarding, not challenging’의 이미지는 잘 구현했지만 제네시스 브랜드에 비하여 마그마 서브 브랜드가 지향하는 방향성이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뜻 생각하면 마그마 브랜드가 첫 모델로 GV60을 선택했으니 ‘마그마는 고성능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를 추구하는 모양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금새 알 수 있다. 작년 마그마 브랜드의 출범을 공식화할 때 거론한 것이 WEC 내구 레이스 참전이었고, 이번에 공개된 콘셉트 모델인 ‘마그마 GT 콘셉트’가 그렇다. WEC(세계 내구 선수권)의 최고 클래스인 LMDh, 즉 하이퍼카 클래스에 마그마 브랜드가 출전하고 마그마 GT 콘셉트가 양산된다면 LMGT3 클래스에서 고객 레이싱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물론 WEC 등 프로토타입 레이스는 세계 유수의 스포츠 럭셔리 브랜드들이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 과시 및 브랜드 마케팅의 장이다. 샤시와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은 공통 부품을 사용하고 브랜드는 차체와 리버리, 그리고 엔진만 개발하면 되기 때문에 포뮬러 1에 비해서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고 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출전 브랜드들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제2의 황금기’, ‘자동차 제작사의 UN’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마그마는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좀 더 잘 해서 이기는’, 즉 비교 우위 전략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우려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아무리 WEC가 공통 부품을 사용해서 문턱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현대 – 제네시스 – 마그마는 후발 주자다. 빠르게 따라잡는다고 하더라도 현대차그룹에 지난 수십년 동안 씌워졌던 ‘패스트 팔로워’라는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WRC를 평정한 뒤에 레벨 클리어하듯 상위 레이스로 도전하는 모습은 좋지만 도전자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심지어는 마그마 자신이 내세운 ‘…not challenging’이라는 슬로건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자, 마그마가 WEC 챔피언이 되었다고 치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LMDh 클래스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사용한다고 해도 솔직히 전혀 미래적이지 않다. 내 선입견일지 모르지만 내구레이스는 다분히 유럽 중심의 귀족적 이미지를 가진 레이스라고 생각한다. 유럽과 귀족. 이것이 미래 사회를 상징하는 데에 얼마나 효과적인 요소인지 나는 회의적이다. 이런 키워드가 상징하는 리그에서 챔피언이 되어도 미래의 챔피언이라는 이미지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제네시스가 마그마 브랜드를 통하여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단지 현재의 프리미엄 브랜드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목표다. 왜냐 하면 이런 밋밋한 프리미엄 시장의 주도권이라는 목표는 고성능의 이미지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 AMG도, M도, RS도, 그리고 심지어는 포르쉐 자체도 더 이상 럭셔리의 핵심인 희소성으로 승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시장 조차도 물량의 시장이다. 즉, 마그마가 그들의 리그에서 그들의 규칙대로 승부하고 싶었다면 제네시스가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등에게 했던 가성비와 질감에 고성능과 약간의 디자인 차별성을 더하는 것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그마는 브랜드가 아니라 프로그램’이라는 말에도 부합한다. 그렇다면 헤일로 모델 한두 개 정도로 브랜드만 띄우면 될 뿐 굳이 WEC처럼 비싼 레이스에 참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런 안일한 선택은 더 이상 제네시스에게 남아있지 않다. 왜냐하면 메인스트림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가 과거의 패스트 팔로워에서 전기차 시대에는 리더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기술의 빠른 적용으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이 이끄는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가 첨병, 개척자의 역할을 하고 메인스트림 브랜드가 이를 퍼트려서 시장의 주류 흐름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 분담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전기차 시대에 강력한 리더가 된 현대차와 기아 브랜드에게는 보다 기술적으로 미래 모빌리티의 외연을 밀어올리고 새로운 지경을 개척하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필요한 것이다. 마그마는 이런 제네시스에게 더욱 고관여 성격의 개척자 고객들을 유치하여 미래를 열 지원 세력과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2020년 전후에 현대차와 기아가 보여주었던 공격적인 행보가 오늘의 성공을 가져왔다. 제네시스도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하는 전환기다. 경기 불황으로 잠시 숨을 고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느슨해지고 당기 순익에 천착한 브랜드들은 곧 후회할 것이다. 이미 소비자들의 관심은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그리고 제네시스의 첨병인 마그마는 더 또렷해지기 바란다. 미래의 럭셔리다. 오늘의 럭셔리가 절대 아니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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