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덩치가 이 좁은 도로에서 U턴을 할 수 있을까?"
운전석에 앉아 광활하게 펼쳐진 보닛을 바라보며 든 첫 번째 생각이었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의 전장은 무려 5,715mm, 전폭은 2,055mm에 달한다. 국내 도로에서 마주칠 수 있는 승용차 중 가장 거대한 덩치다.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같은 집안의 픽업트럭인 GMC 시에라 정도다. 주차 칸을 꽉 채우다 못해 넘쳐흐르는 이 거구를 도심에서 운전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스티어링 휠을 감고 첫 번째 유턴을 시도하는 순간, 막연한 의구심은 순식간에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비결은 사륜 조향 기술에 있었다. 에스컬레이드 IQ에 적용된 사륜 조향 시스템은 뒷바퀴를 최대 10도까지 꺾어준다. 일반적인 후륜조향 차량들이 4~5도 정도 꺾이는 것을 감안하면 두 배에 가까운 각도다. 덕분에 11m 남짓한 회전 반경만 있으면 이 5.7m짜리 거구를 가볍게 돌려세울 수 있다. 좁은 골목길이나 지하 주차장의 급격한 코너를 돌아나갈 때 느껴지는 회두성은 마치 싼타페나 쏘렌토 같은 중형 SUV를 모는 듯 경쾌했다. 물리적인 크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운전자가 체감하는 심리적인 크기는 절반으로 줄어든 느낌이다. "덩치에 겁먹을 필요 없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뻥 뚫린 자유로에 올라 스티어링 휠 왼쪽 아래에 있는 'V' 버튼을 눌렀다. 캐딜락의 고성능 라인업 'V-시리즈'의 DNA를 계승한 '벨로시티(Velocity)' 모드다. 계기판에 V 로고가 뜨고 750마력의 최고출력과 108.5kg·m의 최대토크가 즉각적인 명령을 기다린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4.2톤이라는 무게가 허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맹렬하게 튀어 나갔다. 내연기관의 으르렁거리는 배기음 대신, 등 뒤를 떠미는 듯한 엄청난 G-포스만이 이 차의 힘을 증명했다. 0km/h에서 100km/h까지 5초 미만에 도달하는 폭발력은 이 정도 크기의 차량에서는 짐작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힘을 다스리는 세련된 태도다. GM의 원 페달 드라이빙 세팅은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전기차보다 자연스럽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때 느껴지는 감속 감각은 인위적인 울컥거림 없이 매끄럽다. 내연기관 차량의 숙련된 운전자가 엔진 브레이크를 거는 듯한 부드러움이다. 여기에 에어 라이드 어댑티브 서스펜션과 4.0세대로 진화한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의 조합은 24인치라는 거대한 휠이 주는 노면 충격을 마법처럼 지워낸다. 고속 주행 시 바닥에서 올라오는 소음과 풍절음은 철저하게 억제되어 있어, 마치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라운지에 앉아 이동하는 기분이다. "초호화 전동 열차의 비즈니스석"이라는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번 시승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국내 최초로 도입된 '슈퍼 크루즈'였다. 속도로에 진입하자 스티어링 휠 상단의 인디케이터에 녹색 불이 들어왔다. 손을 떼고 주행해도 된다는 신호다. 조심스레 운전대에서 손을 놓자, 차는 차선의 중앙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매끄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이나 FSD가 국내에 도입되며 자율주행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 캐딜락이 보여준 슈퍼 크루즈의 완성도는 한국 GM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신감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곡선 구간에서도 불안함 없이 조향을 유지했고, 장거리 주행의 피로도를 획기적으로 낮춰주었다.
다만, 자동 차선 변경 기능은 운전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방향지시등을 켜거나 앞차의 속도가 느릴 때 시스템이 스스로 판단해 차선을 바꾸는데, 그 움직임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민첩하다. 느긋하게 차선을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틈이 보이면 즉각적으로 파고든다. 이 기능을 처음 접하는 초보 운전자라면 "어?" 하는 순간 이미 옆 차선에 들어가 있는 차의 거동에 짐짓 놀랄 수도 있겠다. 물론 설정에서 이 기능을 비활성화할 수 있지만, 시스템을 믿고 맡겼을 때의 편리함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실내 공간은 '아메리칸 럭셔리'의 정점을 보여준다. 운전석부터 조수석 끝까지 하나로 이어진 55인치 커브드 LED 디스플레이는 시각적인 압도감을 넘어 하이테크의 절정을 보여준다. 다행히 미국 사양과 달리 국내 출시 모델에는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가 무선으로 완벽하게 지원된다. 자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완성도도 훌륭하지만, 익숙한 티맵이나 카카오내비를 55인치 대화면으로 띄울 수 있다는 점은 한국 소비자들에게 결정적인 구매 포인트가 될 것이다. 보닛 아래 숨겨진 345리터 용량의 'e-트렁크'는 골프백 2개가 넉넉히 들어갈 만큼 넓어, 이 차가 가진 공간 활용성의 끝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차에도 이해하기 힘든 '옥에 티'가 있었다. 바로 2열 시트다. 시승차는 2억 7,757만 원이 넘는 최상위 풀옵션 사양임에도 불구하고, 2열 시트의 등받이 조절과 슬라이딩이 모두 수동이다. 등받이를 눕히려면 엉덩이를 들썩이며 레버를 당겨야 한다. 썬바이저와 발 받침대도 없다. 55인치 화면과 38개의 AKG 스피커로 꾸며진 호화로운 실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성이다. 2열 공간 자체는 성인 남성 세 명이 앉아도 남을 만큼 광활하고 HDMI 포트로 영상을 즐길 수도 있지만, '쇼퍼 드리븐' 용도로 이 차를 고려했던 오너라면 이 투박한 수동 레버에서 묘한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에스컬레이드 IQ는 분명 모순적인 매력을 지닌 차다. 친환경을 외치는 전기차지만 4.2톤의 무게와 205kWh의 막대한 배터리를 탑재해 효율성보다는 풍요로움을 택했다. 최첨단 디지털 장비로 무장했지만 2열 시트에는 아날로그 방식을 남겨두었다. 하지만 도로 위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존재감, 그리고 그 거구를 깃털처럼 다루는 후륜 조향과 슈퍼 크루즈의 기술력은 이 차를 대체 불가능한 영역에 올려두었다. 비록 볼륨 모델은 될 수 없겠지만, 캐딜락이 그리는 전동화의 미래가 얼마나 웅장하고 강력한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델임은 틀림없다. 언젠가 이 차를 끌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충전 없이 한 번에 달리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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