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비즈니스 영역도 그만큼 복잡해지고 확대되고 있다. 지금은 후발업체 테슬라와 BYD가 주도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 수평 분업이 아닌 수직 통합 방식의 사업을 하고 있다. 그들만의 생태계 구축을 위한 것이다. 아직까지 완성된 단계는 아니지만 영향력은 크다. 레거시 업체들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지만 모든 분야의 제조업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은 것은 문화는 물론이고 자동차와 선박도 직접 설계 생산이 가능하고 반도체 생산능력이 있다는 점 등이 크다. 제조업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큰 그림, 다시 말해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그런데 지금은 비전보다 실행이 중요한 때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혀 다른 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해 나갈지 짚어 본다.
글/채영석(글로벌오토뉴스 국장)
배터리 내재화, 로봇 파운드리, 피지컬 AI. 현대차그룹의 사업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UAM, 소프트웨어 등을 포함하면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미래 기술 모두를 망라하고 있다. 스마트 모빌리티 프로바이더를 선언한 이후 뚜렷한 진전이 없다가 지금은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고 있는 과정이다. 핵심은 현대차그룹 나름의 생태계 구축을 노리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이 가능한 것은 한국 제조업이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나 블랙록, 오픈 AI 등이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그런 배경 때문이다. 한국의 제조업을 활용해 그들만의 생태계 구축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비즈니스에서는 팹리스, 즉 시스템 반도체가 경쟁력을 강조하지만 메모리 반도체가 있어야 한다. 그 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은 한국이 압도적이다. 엔비디아의 GPU든 구글의 TPU든 메모리가 있어야 한다. HBM이 HBF로 또 한 단계 진화한다고 한다.
AI는 메모리 전성기를 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파운드리는 TSMC가 절대 강자이지만 삼성전자도 점유율은 낮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무형자본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빅테크 기업과는 달리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제조업의 한계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독점해 그것으로 수익을 올리는 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AI을 이용해 이들 빅테크기업처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시대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한국 기업들에게도 기회는 있다.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내제화를 추진하는 것은 한국 제조업이 배경이다. 스웨덴 노스볼트가 파산한 것도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철수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영국의 브리티시 볼트의 실패도 제조 부문의 인력 부재가 원인이었다. 그래서 유럽 업체들은 그동안 LG엔솔이나 SK온 삼성SDI에 의존해왔다. 그것이 LFP 의 경쟁력 상승으로 지금은 중국업체들과 협력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내재화는 배터리, 모터 등 전기차 핵심 부품을 직접 설계하고 검증하여 원가 절감 및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안성시에 배터리 캠퍼스를 구축해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BYD와 같은 경쟁사와 유사한 수준의 수직 계열화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배터리 셀 생산 시설을 미국에 SK 온, LG 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하여 건설하고 있다. R&D 시설을 추가로 현지화 할 경우, 지역별 특성에 최적화된 배터리 시스템을 현장에서 설계하고 검증할 수 있으며, 이는 현지 고객 요구 반영에 유리하다.
또한, 현지 R&D와 생산을 연계하여 공급망 내 기술적 문제 발생 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해지며, 이는 대규모 리콜 리스크를 줄이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안성의 미래 모빌리티 배터리 캠퍼스가 통합 핵심 허브 역할을 하되, 미국과 유럽의 R&D 시설은 지역별 특화 연구 및 선행 기술 확보 거점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고체 배터리 스타트업과의 전략적 투자나 M&A를 통해 글로벌 R&D 거점을 확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이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생태계는 기존의 다른 업체들과는 결이 다르다. 차세대 배터리, 특히 전고체 배터리 기술은 단순히 전기차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을 넘어, 그룹의 미래 핵심 사업인 로보틱스와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분야에 혁명적인 기술적 시너지를 제공할 핵심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고체 배터리가 가져 올 가장 큰 변화는 에너지 밀도의 증가와 안전성의 혁신이다. 로봇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움직임의 자유와 구동 시간이다. 가벼우면서도 오래가는 전원은 로봇의 실용성을 결정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 대비 에너지 밀도가 높아 더 작고 가벼우면서도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배터리 경량화는 작업자가 착용하는 로봇의 무게를 줄여 피로도를 낮추고 활동 시간을 크게 늘려준다. 이는 건설, 물류, 제조 현장에서의 로봇 도입 확산에 필수적이다. 스팟 등 서비스 로봇은 더 긴 작동 시간을 보장하여 복잡한 임무나 광범위한 지역 순찰을 배터리 교체 없이 수행할 수 있게 해, 로봇의 활용 가치와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여 화재 위험이 현저히 낮다. 이는 로봇이 인간과 가까운 환경에서 작업하거나, 충격에 노출되기 쉬운 산업 환경에서 운용될 때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준다.
AAM도 이착륙 시 막대한 출력을 요구하며, 무게와 안전성이 지상 이동 수단보다 훨씬 엄격하게 요구된다. AAM 기체(eVTOL)에서 무게는 곧 효율이다. 배터리 에너지 밀도가 높아지면, 같은 무게로 더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게 되어 AAM의 경제성과 상업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이다. 기존 배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도시 간 이동까지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공항이나 버티포트에서 승객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초고속 재충전이 필수다. 차세대 배터리는 이러한 고출력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고, 빠른 충전 속도를 지원하여 운항 효율을 높여준다. 도심 상공을 비행하는 AAM은 안전이 최우선이다. 화재나 폭발 위험이 낮은 전고체 배터리는 규제 당국의 안전 요구사항을 충족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는 데 핵심적인 기술 기반이 된다.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캠퍼스를 통해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선도하고자 하는 것은 전기차 시장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로봇과 AAM이라는 미래 모빌리티 포트폴리오 전체의 기술적 한계를 돌파하고 상업화를 가속화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물론 전고체 배터리는 토요타 등이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며 월등히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어 선도한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에 유사한 연구 시설을 추가로 설립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단순히 생산 시설 현지화를 넘어, 미래 기술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인재 및 기술 허브 전략의 일환이다. 글로벌 R&D 허브를 확대할 경우, 미국 시장에서 주력 경쟁사인 테슬라가 자체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배터리 기술과 어떤 방식으로 기술 경쟁을 펼치게 될지 궁금하다.
로봇 파운드리는 다양한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로봇을 위탁생산하겠다는 것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이후 축적된 로봇 구동, 제어 기술과 현대차의 제조 역량을 결합하여 로봇 분야의 전문 제조사로 포지셔닝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산업에서 로봇은 익숙한 장비다. 생산공장에는 수많은 로봇이 정밀하게 생산하고 조립하는 일을 인간 노동자를 대신해 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로봇지수에서 압도적으로 세계 최상위에 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로봇이 있다.
최근 거론되고 있는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이후 이 분야에서도 많은 노하우를 축적해 오고 있다. 다만 그 로봇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전이 늦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것을 어떻게 사업화 하느냐는 질문이 많았다.
현대차그룹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와 4족 보행 로봇 스팟 등 첨단 로봇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지금은 단순 제조를 넘어 서비스 및 물류 분야로 로봇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 선 보인 모베드라는 로봇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이는 스마트 팩토리 및 물류 자동화 비즈니스로도 확대할 수 있다. 로봇 기술을 제조 공장과 물류 시스템에 통합하여 생산 효율성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이다.
현재 서비스 로봇과 산업용 로봇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과 대형 IT 기업들이 로봇 하드웨어 제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들에게 안정적인 대량 생산 솔루션을 제공하며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다. 로봇 제조는 단순히 부품을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액추에이터, 센서, 정밀 제어 시스템을 통합하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다만 자동차는 대량 표준 생산에 유리하지만, 로봇은 고객사별로 요구 사양이 매우 다양하고 초기 생산 물량이 적을 수 있다는 어려움이 있다. 다양한 품종의 로봇을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탁 생산을 맡기는 고객사의 핵심 기술 및 설계 정보 보호를 위한 철저한 보안 시스템과 신뢰 구축도 필수적이다. 간단한 사업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로봇 기술을 자율주행을 비롯해 PBV(목적 기반 자동차), 그리고 AAM에 통합해 이동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서비스형 로봇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 중심의 움직임을 실현하기 위한 광범위한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로보틱스와 AAM을 통해 MaaS(Mobility as a Service) 영역 선점을 노리고 있다. AAM 사업(슈퍼널)은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며, 로봇은 제조 및 물류를 넘어 일상 생활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할 잠재력이 크다.
그러니까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첨단 로봇 플랫폼과 현대차그룹의 대량 생산 노하우를 결합하여 로봇 제조 단가를 낮추고 품질을 표준화하는 것이 로봇 파운드리 모델이다. 이 모델은 제조 경험이 부족한 첨단 로봇 스타트업들에게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상업화할 수 있는 패스트 트랙을 제공하여 로봇 생태계 확산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2026 CES에서 작업 정밀도를 높인 3세대 아틀라스 모델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미국 매타 플랜트에서 실증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봇은 이미 HMGMA 차체 공장에서 스팟을 활용한 차량 차체 점검에 투입되고 있으며, 향후 물류 자동화, 건설 현장, 개인 이동 지원 등 광범위한 분야로 확산될 전망이다.
엔비디아로부터 공급 받기로 한 차세대 반도체 블랙웰로 인해 피지컬 AI 사업 추진이 가능해진 것이 전환점일 수 있다. 이는 로봇 강국 도약을 위한 핵심 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 사업은 단순히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미래 로봇 산업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피지컬 AI는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등이 현실 세계에서 인간처럼 환경을 인지하고 판단하여 작동하는 물리적 지능을 의미한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와 대규모 투자를 통해 피지컬 AI를 미래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피지컬 AI의 뿌리인 데이터센터 설립부터, 로봇 실증 및 완성품 제조/위탁 생산을 위한 로봇 파운드리 공장 조성까지, 국내에 피지컬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거기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블랙웰이다. 이를 기반으로AI 팩토리 구축한다는 것이다. 5만 장 규모의 GPU가 투입되는 이 통합형 인프라는 로봇 및 자율주행 AI 모델 개발의 핵심 두뇌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이 GPU를 활용할 수 있는 인력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그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이야기하면 완성차회사들은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가 더 높아질 수 있다.
엔비디아는 AI 기술 센터와 현대차그룹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 등을 한국에 설립하여 AI 기술 개발과 하드웨어 구현 등 현실 적용을 동시에 추진할 예정이다. 아직 MOU단계이지만 업계에서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피지컬 AI 사업은 로봇과 전기차, 자율주행 기술의 양방향 시너지를 통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시스템을 현실화하기 위한 기술적 도전 과제 역시 크다. 로봇 파운드리와 고 지능 로봇인 3세대 아틀라스의 상용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주요 난제는 고도화된 AI 모델 학습, 액추에이터 가격 및 성능 확보, 인간-로봇 상호작용(HRI)의 안정성 등 적지 않다. 특히 제조 현장에 투입될 때, 인간 작업자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협업하기 위한 실시간 충돌 회피, 의도 파악,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HRI 기술의 완성도가 중요하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핵심 인재 및 기술력 확보가 절대적이다. 수년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고급인력이 해외로 유출되어 그로 인한 우려가 크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최근 연구개발 책임자들의 이직 등 내부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다. 제조업과 IT산업 종사자간의 갈등설도 있다. 서로 의사 소통이 안되는 것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고급 인력이 최우선인 시대다. 자동차도 잘 알고 IT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전문가들이 많이 필요하다. 자동차산업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은 그런 점을 말하는 것이다. 현지 생산 및 규제에 대응하는 것도 만만치 한다.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각자도생의 시대에 시장을 그냥 내어 줄리는 없다.
현대차그룹이 그리는 새로운 생태계 구상의 진전은 분명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방향은 정해졌다.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은 물적 인적 투자다. 그것이 모두 갖추어졌는지 궁금하다. 수평 분업을 해오던 자동차회사가 수직 통합으로 전환이 가능할까도 알 수 없다.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에너지와 인력 등 기업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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