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설립한 이탈디자인이 디자인한 폭스바겐 1세대 골프(VW Golf Mk1).(출처:이탈디자인)
[오토헤럴드 김흥식 기자] 세계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탈디자인(Italdesign)이 15년 만에 아우디 품을 떠난다. 아우디는 최근 이탈디자인의 지분 대부분을 미국 캘리포니아 기반의 테크 기업 UST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아우디와 함께 폭스바겐 그룹에 속한 람보르기니는 지분을 유지하며 부분적인 동행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탈디자인 매각은 아우디가 최근 실적 부진 속에 비용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정이다. 아우디는 매각 이후에도 이탈디자인을 전략적 파트너이자 주요 고객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1968년 설립한 이탈디자인은 유럽 자동차 디자인의 문법을 만든 디자인 하우스이자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정체성을 사실상 구축한 곳이다. 1970년대 ‘아우디 80’, ‘아우디 100’을 비롯해 현대적인 비례와 직선적 디자인 언어로 당시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탈디자인과 아우디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고 2010년 아우디가 지분을 인수하면서 그 관계는 사실상 통합에 가까운 개발 체계로 발전했다. 콘셉트 디자인부터 프로토타입 제작, 소량 생산 연구, 전기차 시대의 선행 구조 설계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이탈디자인의 역량이 활용됐다.
이탈디자인이 자동차사에 남긴 족적은 그 자체가 역사다. 폭스바겐 골프 Mk1, 피아트 판다, 로터스 에스프리, 델로리안 DMC-12처럼 아이코닉한 모델들은 모두 이탈디자인이 구축한 ‘산업적 디자인’ 철학의 산물이다.
단순한 형태 작업이 아니라 제조·원가·구조·안정성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설계가 특징이었고, 이 철학은 오늘날 글로벌 OEM의 표준 프로세스로 자리 잡았다. 이탈디자인은 람보르기니의 차세대 모델 연구를 비롯해 아우디의 고성능 한정 프로젝트, 경량 구조 개발 등에서 ‘슈퍼카 실험실’ 역할도 맡아 왔다.
최근 10여 년 동안에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범위를 넘어서 엔지니어링, 전자 설계, 디지털 검증, 소량 생산 등 종합 기술 기업으로 진화하며 전통적 디자인 하우스 이상의 역할을 확장해 왔다.
이탈디자인은 현대차의 첫 독자 모델 포니를 디자인 한 곳으로 국내에 더 잘 알려진 곳이다. 1990년대에는 기아 ‘세피아·스포티지 1세대’ 초기 개발 단계에서 일부 디자인 및 설계 협업을 진행한 바 있다.
한편 이탈디자인을 인수한 UST는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전 세계 3만 명 이상의 인력을 보유한 테크 기반의 디지털 전환 컨설팅 회사다.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AI 분석, 모듈화 플랫폼 설계 등 자동차 제조사와 20여 년간 협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 향후 이탈디자인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탈디자인 CEO 안토니오 카수는 이번 매각을 “새로운 시장 확장과 서비스 다변화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UST의 소프트웨어 기반 역량과 이탈디자인의 깊은 설계 기술이 결합하면 차세대 자동차 개발 플랫폼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반면, 정통 디자인 하우스의 정체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특히 기존 폭스바겐 그룹과의 긴밀한 관계가 느슨해지거나 중국 등 외부 OEM의 대형 계약이 유입되며 이탈디자인의 브랜드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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