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급등한 신차 가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형 초소형 차량을 위한 새로운 규제 체계를 추진한다. 핵심은 기존 승용차에 의무 적용돼 온 일부 안전 사양을 완화한 새로운 차량 분류, 이른바 ‘E 카(E car)’를 도입해 도심 이동에 특화된 저가형 신차 시장을 다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EU에서 판매되는 신차는 차급을 가리지 않고 가격이 크게 올랐다. 그 배경에는 각종 첨단 안전 장비의 의무화가 있다. 자동 비상 제동, 차로 유지 보조, 운전자 주의 감지 시스템 등은 안전성을 높였지만, 소형차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차량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됐다. EU는 이러한 구조가 도심 이동 수단으로서 소형차의 본래 역할을 약화시켰다고 보고 규제 조정을 검토 중이다.
이번 논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경차를 미국에서 합법화하는 방안에 관심을 보였다고 밝힌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다. EU가 구상 중인 E 카 역시 일본 경차 규제와 유사하게 차량 크기와 출력에 엄격한 상한선을 두는 방식이 유력하다. 일정 기준을 충족한 차량만 새로운 분류에 포함시키는 구조다.
E 카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세제 혜택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세금 감면을 통해 소비자 구매 부담을 추가로 낮춘다는 전략이다. 안전 사양이 일부 줄어드는 만큼 일반 승용차보다는 안전성이 낮아지지만, 충돌 시험조차 면제되는 시트로엥 아미와 같은 사륜 바이시클이나 중국산 초소형 전동차보다는 훨씬 높은 안전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EU가 구상하는 E 카는 정식 충돌 시험을 거치고, 차체 강성 역시 일반 차량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한다. 다만 자동 비상 제동, 졸음 및 운전자 주의 감지, 차로 유지 보조 같은 능동 안전 시스템은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현재 소형차 대비 10~20% 수준의 가격 인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
관심은 어떤 모델이 이 기준에 포함될 수 있느냐다. 르노 5 E-Tech, 소형 전기차 트윙고 같은 인기 모델이 거론되지만, 차체 크기와 출력 면에서 기준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 업계에서는 다치아가 공개한 힙스터 콘셉트가 E 카의 방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한다.
다치아 힙스터는 전장 3m, 전폭 1.55m, 전고 1.53m로 일본 경차보다 폭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더 작다. 일본 경차 규제가 배기량 660cc 또는 최고출력 64마력으로 제한되는 것과 달리, 힙스터는 최고속도 90km/h에 그치며 도심 주행에 초점을 맞췄다. 차체 중량은 약 800kg 수준이지만 4인 승차가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다치아는 이와 같은 차량의 판매 가격을 전기차 보조금 적용 전 기준 1만5,000유로 이하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EU가 목표로 삼는 도심형 신차 가격대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기존 모델에서 전자 장비를 일부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20% 가격 인하가 쉽지 않은 만큼, E 카는 기존 차종 개조보다는 전용 플랫폼 기반의 신규 모델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EU의 이번 움직임은 전동화와 안전 중심으로 치우쳤던 규제 흐름을 현실적인 도심 이동 수단 쪽으로 다시 조정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최종 기준이 확정될 경우, 유럽 소형차 시장은 오랜만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전망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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