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에 창업한 기아 브랜드의 역사가 올해로 81년째가 됐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역사 그대로인 것입니다. 물론 첫 창업 때의 명칭은 ‘경성정공’이었지만, 1953년에 ‘기아(起亞)’라는, 아시아에서 일어난다는 의미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0년대 초의 부침(浮沈)을 거쳐 1998년에 현대자동차그룹의 일원이 되면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기아 브랜드의 디자인 혁신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20년 전이었던 2006년에 ‘디자인 기아’를 선언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동적 이미지와 활기 넘치는 디자인이 중심이 되는 혁신성을 이어왔습니다.
그 연장의 상징으로 이번에 공개된 기아의 콘셉트 카 비전 메타 투리스모는 샤프한 이미지의 디지털 조형과 역동적인 기능성을 강조하는 기아 브랜드의 감성이 공존하는 인상입니다.
전통적인 자동차는 엔진과 변속기 같은 기계로 구성돼 있었지만, 오늘날의 디지털 모빌리티는 단지 기계적 하드웨어로만 이루어진 제품은 아니라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차량의 내/외장 디자인입니다.
즉 자동차는 ‘하드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디자인이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프트웨어는 단지 차량의 내외장을 감성적으로 꾸미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차를 만드는 기업의 기술 철학을 보여주는, 일종의 영혼을 나타내는 수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자동차 기업은 브랜드와 역사를 강조하면서 소비자에게 보다 차별화된 성격을 나타내는 디자인을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벌써 5년이 돼 갑니다만, 지난 2021년 초에 기아는 1990년대부터 사용해 오던 타원형 브랜드 심벌을 디지털 이미지의 형태로 바꾸면서 미래지향적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변화를 선언했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향한 움직임이면서 한편으로 디지털 시대를 향한 또 다른 혁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디자인은 단지 겉모습이 아니라 기술 철학을 나타내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기업 심벌의 변화는 그 기업의 대외적인 이미지 변화 이기도 하자만, 사실은 오히려 내부로부터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각적인 것이 바뀌게 되면, 그 기업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의 변화도 뒤따르게 됩니다.
그런 이유에서 브랜드 심벌로 대표되는 기업 아이덴티티 프로그램(CIP; Corporate Identity Program)이 기업 전략의 하나로 오래 전부터 중요하게 다루어져 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업이나 브랜드 아이덴티티 또는 특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오랜 시간의 활동이 축적되고,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각인돼서 어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기아의 디자인 혁신은 단지 겉모습만의 변화가 아니라, 80년의 시간 동안 실용적인 자동차를 만들어 온 기업의 기술 혁신이 미래를 향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모습은 이번에 공개된 콘셉트 카 비전 메타 투리스모의 전위적 디자인은 물론이고, 이미 2006년에 디자인 혁신을 선언하며 보여줬던 타이거 노즈(Tiger Nose; 호랑이 코)라고 불리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에서부터 나타났습니다.
이 형태는 이제는 기아의 디자인 혁신을 나타내는 아이콘으로 초기에는 K5를 비롯한 K 시리즈에 쓰이기 시작해서, 스팅어에서는 더 진화한 형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기아 브랜드 자동차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인식되는 디자인 요소로 자리잡았고, 디지털 감각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그릴에서 아래 위로 만들어진 형태는 기아가 1970년대에 생산했던 실용적인 소형 승용차 브리사(Brisa)의 앞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도 타이거 노즈와 유사한 구성의 후드와 라디에이터 그릴을 볼 수 있습니다.
세부 형태 비례와 배치는 다르지만, 라디에이터 그릴의 아래와 위에서 서로 대응하는 형태를 배치한 조형 원리에서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결국 기아 디자이너들의 스케치에 은연중에 녹아들어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80년에 이른 기아의 역사는 이제 디지털 모빌리티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기아의 타이거 노즈는 EV6와 EV5와 K8 등 최신형 차량에서 더욱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디지털 모빌리티 시대에도 기아 뿐만 아니라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브랜드나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반영한 디자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건 디자인이 단순한 겉모습 꾸미기가 아닌 기업의 기술 철학과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아 브랜드의 차별성은 무엇일까요?
기아의 역사를 보면 초기에 만들었던 차량 중에는 T600이라는 3륜 화물차(일명 용달차라고도 불렸었습니다)를 비롯해 1980년부터 1987년까지는 정부의 산업 합리화 조치에 의해 5톤 이하의 화물차만 생산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봉고 트럭은 우리나라 소형 화물차 역사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화물차는 당연히 튼튼하고 실용적이어야 합니다. 그런 기술 철학이 바탕이 된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기아가 1987년부터 다시 승용차를 만들면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차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건지 모릅니다. 그 이후 이어진 기아의 고유모델 개발에서는 실용성과 기능성 중심의 기술 철학이 나타나게 됩니다.
기아의 역사상 첫 고유모델이면서 미국 시장 수출의 역사를 시작한 1992년의 세피아(Sephia)는 쐐기형 디자인의 유선형 차체로 높은 주행성능을 가진 승용차였습니다.
그리고 1993년에 등장한 스포티지(Sportage)는 실질적으로 세계 최초의 도심지형 크로스오버(crossover) SUV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그해 동경 모터쇼에 발표됐지만, 몇 달 뒤에 일본 기업이 개발한 소형 SUV로 인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묻히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1995년에 등장한 기아의 첫 고유모델 중형 승용차 크레도스(Credos)는 실용성을 보여주는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의 오늘날 PV5를 비롯한 전동 모빌리티를 통해 기아 브랜드가 보여주는 혁신은 과거의 디자인과는 완전히 다른 감각적 가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감각적으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에 있는 실용성과 기능성이라는 철학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아의 역사라는 울타리 안에서 같은 목표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기능적 디자인으로 이어진 건지 모릅니다. 기아의 구성원들은 그 이미지를 심상(心象)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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