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실리콘 음극재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진입하며 시장의 판도를 바꿀 준비를 마쳤다. 포르쉐가 투자한 배터리 기술 기업 그룹14 테크놀로지(Group14 Technologies)는 배터리 소재 전문 기업 시오닉 에너지(Sionic Energy)와 협력하여 100% 실리콘-탄소 음극재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성과는 기존 흑연 음극재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기차의 주행 거리와 충전 속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음극재는 배터리 충전 시 리튬 이온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며 배터리의 에너지 용량과 충전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지난 수십 년간 흑연은 안정적인 구조 덕분에 음극재의 주류 소재로 쓰여 왔으나, 에너지 저장 용량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면 실리콘은 이론적으로 흑연보다 약 10배 많은 리튬 이온을 저장할 수 있어 차세대 소재로 각광받았지만, 충·방전 시 부피가 급격히 팽창해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룹14와 시오닉 에너지는 특수 탄소 구조와 독자적인 바인더 기술을 통해 실리콘의 팽창 문제를 해결했다. 양사가 공동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100% 실리콘-탄소 음극재는 섭씨 45도와 60도의 고온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유지했다. 특히 에너지 밀도는 kg당 최대 400Wh에 달해 현재 범용되는 배터리(200~300Wh/kg)보다 월등한 성능을 보였으며, 1,200회 이상의 충·방전 사이클을 견디는 내구성까지 확보했다.
이 기술의 또 다른 강점은 기존 배터리 제조 라인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드롭인(Drop-in) 방식이라는 점이다. 제조사들은 대규모 설비 개조 없이도 이 소재를 즉각 생산 공정에 도입할 수 있다. 그룹14는 이 기술을 적용할 경우 배터리 충전 시간을 10분 미만으로 단축하면서도 기존보다 55%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실리콘-탄소 음극재를 활용해 기기 두께를 유지하면서 배터리 용량을 대폭 늘린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2022년 전기 G-클래스에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해 에너지 밀도를 40% 높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으며, 제너럴 모터스(GM) 역시 배터리 크기를 줄이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실리콘 음극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와 같은 차세대 기술이 주목받는 가운데, 현재의 리튬 이온 배터리 체제 내에서 실리콘 음극재 도입은 전기차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끌어올릴 가장 빠르고 강력한 대안이 될 전망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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