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EV)의 가치 하락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다. 신차 가격의 절반 수준에 거래되는 중고 전기차 매물이 늘어나면서 소비자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최근 글로벌 중고차 시장에서는 주행거리가 짧은 테슬라 모델 Y가 3만 3,000달러대에 판매되고 있으며, 1,000마력 사양의 모델 S 플래드 역시 5만 달러대에 거래되는 등 전반적인 시세 하락이 뚜렷하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시장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벤츠 EQE나 닛산 리프 같은 모델은 출시 1년 만에 가격이 폭락하며 최악의 감가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는 테슬라발 가격 정책과 배터리 신뢰성 문제가 꼽힌다. 테슬라는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신차 가격을 수차례 인하했으며, 이는 중고차 시세의 동반 하락을 불러왔다. 국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2024년 하반기 발생한 대형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벤츠 등 특정 브랜드에 대한 기피 현상이 생겼고, 최근 테슬라 일부 모델에서 보고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충전 제한 오류 이슈는 보증이 만료된 차량의 감가상각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수천만 원에 달하는 배터리 교체 비용 부담이 중고차 수요를 억제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이다.
다만 2025년 국내 시장은 차급에 따라 명암이 갈리는 양상이다. 대형 세단이나 고가 수입 전기차는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실용성을 강조한 소형 전기 SUV 시장은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 코란도 이모션, 볼트 EUV 등 대중적인 모델들은 2025년 상반기 들어 시세가 7~8%가량 반등하며 회복세를 보였다. 이는 고유가 상황 속에서 유지비 절감을 원하는 실속파 구매자들이 중고 전기차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성능 저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여전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시장의 우려와 다른 수치를 보여준다. 지오탭(Geotab)과 리커런트(Recurrent)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 현대적인 전기차 배터리는 연간 약 1.8%의 용량 감소를 보이며, 대다수 제조사가 8년 이상의 넉넉한 보증 기간을 제공한다. 대규모 데이터 분석 결과, 대다수 중고 전기차가 우려만큼 급격한 성능 저하를 겪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결국 2025년 중고 전기차 시장은 '브랜드'보다 '실질적 가치'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팬데믹 시기 비정상적으로 치솟았던 거품이 빠지면서 전기차 역시 내연기관 차량과 유사한 감가상각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거 환경에서 충전 인프라 활용이 용이하고 장기 보유를 목적으로 하는 소비자에게 현재의 낮은 시세는 고성능 전기차를 합리적인 가격에 소유할 수 있는 적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충전이 불편하거나 단기 보유 후 매각을 고려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감가율이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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