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오토쇼 미디어데이 첫날. 2026 NACTOY 유틸리티 부문 수상자 발표 순간, 현대 팰리세이드가 270점으로 호명됐다. 닛산 리프 135점, 루시드 그래비티 85점. 50명의 북미 자동차 전문 기자들이 1년간 테스트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2026년 미국 시장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차는 최첨단 전기 럭셔리 SUV도, 3만 달러짜리 전기 크로스오버도 아닌, 하이브리드 대형 SUV였다.
2025년 미국 자동차 시장의 판도 변화가 숫자로 확인됐다. 전체 승용차량 판매 1,620만 대 중 하이브리드가 205만 대나 팔렸다. 전년 대비 27.6% 급증이다. 같은 기간 순수 전기차는 126만 대로 겨우 1.2% 늘어나는데 그쳤다. 시장점유율로 보면 더 극적이다. 전기차는 7.7%로 오히려 전년보다 소폭 감소했다.
자동차혁신연합 2분기 보고서를 보면 흐름이 더 명확해진다. 하이브리드 점유율이 전년 동기 대비 4.7%포인트 급등했다. 같은 기간 순수 전기차는 0.5%포인트 줄었고, 내연기관차는 4.2%포인트 빠졌다. 계산기 두드려볼 것도 없다. 내연기관차가 잃은 시장을 하이브리드가 싹쓸이했다는 얘기다.
토요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2025년 미국에서 251만8천 대를 팔아 8% 성장했는데, 여기서 118만3천 대가 전동화 차량이었다. 전체 판매의 47%다. 거의 절반이 하이브리드라는 뜻이다. 전년 대비 18% 늘었다.
포드도 만만치 않다. 2025년 한 해 22만8천 대가 넘는 하이브리드를 팔았다. 4분기만 5만5천 대가 넘어 분기 기록을 세웠다. F-150 하이브리드만 8만4천 대, 매버릭은 15만5천 대를 넘겼다. 재미있는 건 포드 혼자서 GM과 스텔란티스가 합쳐서 판 전동화 차량(하이브리드+플러그인+전기차)보다 많이 팔았다는 사실이다.
현대차그룹도 파티에 합류했다. 현대차 미국 판매가 7.8% 늘어 90만1,686대, 기아는 7% 증가한 85만2,155대를 기록하며 양사 모두 3년 연속 최고 기록을 세웠다. 특히 현대차 하이브리드는 12월 한 달만 2만3,573대가 팔려 월간 기록을 세웠고, 연간으로는 71% 급증했다. 팰리세이드, 싼타페, 투싼, 쏘나타, 엘란트라 하이브리드가 견인했다.
전기차는 어떻게 됐을까. 2025년 3분기 시장점유율이 10.5%까지 올랐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방 세액공제가 9월 30일 끝나기 전 구매가 몰린 결과다. 시한부 효과였다는 얘기다.
가격 문제는 여전하다. 2025년 3월 기준 전기차 평균 거래가가 5만9,200달러다. 같은 시기 전체 신차 평균은 4만7,500달러였으니 25%나 비싸다. 전기차가 럭셔리 시장에 쏠려 있는 것도 문제다. 2025년 3분기 판매된 전기차의 70.7%가 럭셔리 모델이었다. 하이브리드는 10.3%만 럭셔리였다.
예일 기후연결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미국인의 70% 이상이 다음 차로 순수 내연기관차를 사겠다고 답했다. 하이브리드 선호는 20%, 전기차 계획은 고작 10% 정도였다. 글로벌 신차 판매의 25%가 전기차인데, 미국은 겨우 10%에 머물러 있다.
충전 인프라도 답답하다. 미국 도로를 달리는 전기차가 650만 대인데, 공공 충전 포트는 21만7,929개다. 전기차 30대당 충전 포트 1개 꼴이다.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가 제시한 필요 인프라 수준을 맞추려면 레벨2 충전기 90만 개, 급속충전기 12만 개가 더 필요하다.
다시 팰리세이드로 돌아가 보자. U.S.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의 존 빈센트는 "재설계된 2026 팰리세이드, 특히 하이브리드 모델이 3열 SUV 클래스의 기준을 다시 세웠다. 오늘날 살 수 있는 최고의 SUV다." '특히 하이브리드 모델'이라는 대목을 주목해야 한다.
현대차는 2026 팰리세이드의 전면 재설계를 통해 실내 공간을 늘렸고, 품질과 마감을 한 단계 끌어올렸으며, 최신 기술을 가득 채워 넣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한 방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추가였다.
미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파악한 결과다. 대형 패밀리 SUV의 넉넉한 공간과 실용성, 프리미엄 브랜드에 견줄 만한 품질과 기술, 합리적인 가격. 여기에 연료비 부담은 줄이면서도 충전 인프라 걱정 없는 하이브리드까지. 전기차의 효율성과 내연기관의 편의성을 동시에 잡은 실용적 전동화가 미국 시장의 정답이었다.
경쟁 모델들을 보면 팰리세이드 전략의 탁월함이 더 선명해진다. 닛산 리프는 3만 달러 이하로 접근성을 무기로 삼았지만, 순수 전기차라는 태생적 한계를 넘지 못했다. 루시드 그래비티는 혁신 기술과 럭셔리를 앞세웠지만, 이것 역시 순수 전기차에다 고가격이라는 두 약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
물론 팰리세이드의 승리를 전기차 시대의 종말로 읽으면 곤란하다. 오히려 전기차로 가는 여정에서 하이브리드가 필수 경유지라는 걸 확인시켜준 거다. 미국 소비자들은 전동화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속도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유럽이나 아시아와 다르다. 장거리 주행이 일상이고, 트레일러 견인이 중요하며, 충전 인프라가 도시 밖으로만 나가면 듬성듬성하다. 이런 환경에서 하이브리드는 타협안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다.
한국 브랜드에게 이건 절호의 기회다. 빅3가 전기차에 올인하느라 하이브리드를 방치한 틈이 벌어졌다. 토요타가 독주하던 하이브리드 시장에 현대차그룹이 강력한 경쟁자로 들어섰다. 2025년 11월 미국에서 팔린 하이브리드 15만7,758대 중 토요타가 48.2%를 가져갔다. 나머지 절반을 현대, 기아, 포드, 혼다가 나눠 먹고 있는데, 현대차그룹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팰리세이드의 성공 공식은 이미 다른 모델들로 확산되고 있다. 텔루라이드, 쏘렌토, 싼타페 모두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갖췄거나 준비 중이다. 대형 패밀리 SUV,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프리미엄 품질, 합리적 가격. 이게 2026년 미국 시장의 공식이다.
팰리세이드가 NACTOY를 탄 이유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줬기 때문이다. 넓은 공간, 좋은 품질, 최신 기술, 합리적 가격, 그리고 하이브리드. 이게 다다.
미국 시장은 전기차 시대로 가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업계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느리다. 하이브리드라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길 위에서 팰리세이드는 지금 가장 완벽한 차다. NACTOY 심사위원 50명이 1년간 운전하고 내린 결론이다.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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