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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속 멕시코 ‘필센’ 아트&맛집 투어

2026.01.23. 18: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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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센은 어떤 곳인가?

시카고 루프(Loop)에서 남서쪽으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마천루는 온데간데없고 강렬한 색감이 넘실거린다. 필센(Pilsen)은 이름만 들어선 유럽 느낌이 난다. 실제로 19세기 말 보헤미안(체코) 이민자들이 터를 잡으며 그들의 고향 이름을 붙였으나, 1950년대 이후 멕시코 이민자들이 유입되며 이곳은 ‘미드웨스트의 멕시코’로 다시 태어났다.

필센의 거리는 그 자체가 거대한 캔버스다. 웨스트 18번가(W 18th St)를 중심으로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들은 장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이방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투쟁의 역사,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그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정체성이 페인트 겹겹이 스며들어 있다.

여행자는 거리 미술관을 걸으며 강렬한 멕시칸 바이브를 마주한다. 화려한 색감과 함께 그들의 삶을 읽어내는 것도 필센 여행의 매력이다.

예술과 일상의 공존
필센 아츠 & 커뮤니티 하우스

필센 아츠 & 커뮤니티 하우스(Pilsen Arts & Community House)는 이 지역 예술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예술이 지역 주민들의 삶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곳은 단순한 갤러리가 아니라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성장하는 ‘창의성의 허브’를 지향한다.

문턱 낮은 예술을 지향하기에 여행자 또한 부담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내부를 꾸미는 작품들은 수시로 바뀐다. 필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로컬 아티스트들처럼 전문가의 감각을 볼 수도 있고, 지역 학생들의 요즘 감성을 확인할 수도 있다.

또 종종 아트 페어가 열리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즉, 이곳에서 예술은 관람의 대상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지역과 사람을 잇는 언어가 된다.


영혼을 채우는 멕시코의 맛
카르니타스 우루아판

필센 미식 여행의 첫걸음은 현지인의 소울 푸드를 경험하는 것이다. 창업주인 이노센시오 카르바할은 낯선 땅 시카고에서 고향 미초아칸(멕시코 서부에 있는 주)의 맛을 심었다. 1975년부터 자리를 지킨 카르니타스 우루아판(Carnitas Uruapan Restaurant)은 돼지고기를 향신료와 함께 푹 삶아낸 ‘카르니타스(Carnitas)’가 대표 메뉴다.

주문과 동시에 숭덩숭덩 썰어주는 돼지고기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을 머금어 촉촉하다. 토르티야 위에 고기와 살사, 라임을 얹어 크게 베어 물면 이 공간이 멕시코가 된다. 주말이면 이 맛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채운다.

주문은 부위별로, 혹은 무게 단위로 가능하다. 바삭한 돼지 껍데기 튀김인 치차론, 상큼한 맛이 좋은 과카몰레, 감자나 고기, 초리조 등을 채운 바삭한 타코 도라도스도 별미다. 파인다이닝은 아니지만, 손으로 타코를 쥐고 먹는 그 순간만큼은 멕시코 미초아칸 한복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벽 위에 피어난 여성들의 서사
All About The Women 벽화

필센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벽화 앞에서 여행자는 이곳의 다양성에 놀라게 된다. 수많은 벽화 중에서도 ‘All About The Women’은 여행자의 발길을 오래도록 붙잡는다. 거리의 벽면을 가득 채운 이 그림은 제목 그대로 여성들의 삶과 힘을 찬미한다. 멕시코 문화 특유의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에 묘사된 여성들의 표정은 숭고하고 단단하다.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니라, 그림마다 서사가 있어서 그렇다. 멕시코의 유명 예술가인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미국의 민권 운동가인 돌로레스 후에르타(Dolores Huerta) 등 인물들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오랜 삶이 보이는 것 같다. 또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춤을 추는 모습에서 희망과 생명력을 엿보게 된다.

벽화를 충분히 감상하고, 이곳과 맞닿은 국립 멕시코 예술 박물관으로 여행을 이어가면 일정상 딱 맞다.


멕시칸 바이브의 울림
국립 멕시코 예술 박물관

필센 중심부에는 멕시코 예술의 정수를 담은 국립 멕시코 예술 박물관(National Museum of Mexican Art)이 자리한다. 이곳의 지향점은 ‘국경 없는 예술(Sin Fronteras)’이다.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넘어 멕시코 문화의 풍요로움을 나누고 이해하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한다.

ⓒnationalmuseumofmexicanart
ⓒnationalmuseumofmexicanart

전시관은 3000년 전 고대 멕시코의 유물부터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까지 방대한 컬렉션으로 채워져 있다. 화려한 색채의 민속 예술에서는 멕시코인들의 삶과 열정을, 화려한 현대 미술에서는 그들의 정체성을 목격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영감을 ‘매일 무료(Free Every Day)’로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이곳의 철학 덕분에, 여행자는 언제든 부담 없이 멕시코의 영혼과 마주할 수 있다.


달콤한 향기로 가득한 곳
파나데리아 누에보 레온

18번가를 걷다 보면 고소한 버터 향과 달콤한 설탕 냄새에 이끌려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렇다면 파나데리아 누에보 레온(Panaderia Nuevo Leon)에 잘 찾아온 것이다. 필센 사람들의 식사와 간식을 책임지는 유서 깊은 로컬 베이커리다.

가게에 들어서면 갓 구운 빵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 프랑스, 일본처럼 화려한 기교를 부린 디저트가 아니라, 투박하지만 정겨운 멕시코 전통 빵(Pan Dulce)들이 주를 이룬다. 쟁반과 집게를 들고 소라 껍데기 모양의 ‘콘차(Concha)’나 설탕이 듬뿍 발린 도넛을 담는다.

가격은 꽤 저렴하지만, 그 맛의 깊이는 가볍지 않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빵 한 조각을 입에 물면, 미국에서 오래 지낸 멕시코 할머니가 구워준 빵을 먹는 기분이 든다. 현지인들 틈에 섞여 빵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필센의 일상 깊숙이 들어온 것 같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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