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을 휩쓴 전동화의 물결은 스포츠카 장르에 실존적 물음을 던졌다. 효율과 정숙함이 핵심인 전기차의 특성이 소음과 진동, 기계적 직결감을 생명으로 삼던 스포츠카의 가치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가솔린을 태워 폭발력을 얻던 시대에서 배터리와 모터가 성능의 중심이 된 현재,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들은 속도 경쟁을 떠나 각자의 정체성을 어떻게 증명할지 고민하고 있다. 주요 브랜드들은 전동화 기술을 활용해 자신들의 고유한 색깔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전략을 취한다.
로터스 에바이야, 무게와의 사투에서 얻은 정밀함
로터스는 전기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정공법으로 돌파했다. 하이퍼 전기차 에바이야는 2,000마력 이상의 출력을 갖췄으면서도 탄소 섬유 모노코크와 초경량 소재를 전방위적으로 적용했다. 91kWh 용량의 무거운 배터리를 탑재하고도 공차중량 1,894㎏을 실현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무게 감량은 즉각적인 토크를 정밀한 드라이빙 감각으로 전환하는 핵심 요소다. 노면 정보를 선명하게 전달하고 운전자와 차의 소통을 돕는 로터스식 전동화는 130대 한정 생산을 통해 그 가치를 증명한다.
페라리, F1 유산으로 빚어낸 단계적 전동화
페라리는 순수 전기차 출시 전 하이브리드 모델을 거치며 브랜드 특유의 감정 곡선을 유지하는 방향을 설정했다. 2013년 라페라리를 시작으로 최근의 SF90 스트라달레에 이르기까지 포뮬러 1(F1)에서 축적된 기술을 양산차에 이식하고 있다. 최신 모델인 SF90 XX 스트라달레는 V8 트윈터보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해 7,900rpm에서 폭발적인 성능을 발휘한다. 페라리는 오랜 기간 축적한 전동화 연구를 바탕으로 2열 좌석과 사륜구동을 갖춘 순수 전기 모델 일레트리카를 선보일 계획이다.
람보르기니, 야성의 본능을 증폭하는 모터
람보르기니는 전기모터를 엔진의 대체재가 아닌 보조 장치로 활용해 특유의 거친 매력을 극대화했다. 하이브리드 모델 레부엘토는 V12 엔진을 유지하면서 모터를 통해 가속 초반의 반응성과 체감 충격을 높였다. 이는 효율을 따지는 일반적인 하이브리드와 궤를 달리하며 람보르기니가 추구하는 제어 가능한 광기를 구현한다. 콘셉트카 란자도르를 통해 예고된 미래 전략 역시 1,300마력 이상의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전기차의 밋밋함을 지우고 야수 같은 성격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마세라티 폴고레, 그란투리스모의 우아한 진화
마세라티는 전동화 라인업 폴고레를 통해 장거리 주행의 편안함과 정숙성이라는 그란투리스모의 가치를 강조했다. 전기 파워트레인의 매끄러운 가속은 마세라티의 지향점과 부합한다. 특히 내연기관 배기음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모터와 인버터의 고주파 소음을 정밀하게 튜닝한 디지털 터빈 사운드를 도입했다. 과거의 소리를 복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전기차 고유의 새로운 소리 미학을 창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세라티에 전동화는 브랜드의 품격을 유지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글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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