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디펜더는 요즘 쉽게 마주치는 차가 아니다. 도로 위에서 이 차를 발견하면 시선이 자연스레 향한다. 그 존재감은 디자인의 세련됨보다는 일종의 '근본'에서 비롯된다. 신형 전기차 브랜드들이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고, 중국 브랜드들도 국내 시장에 잇달아 진입하는 요즘, 디펜더를 바라보면 아련한 감정이 올라온다. 그리움을 자극하면서도 식상하지 않다. 오히려 신선하고, 내 차도 아닌데 뿌듯하다는 감정까지 든다.
2026년 2월, 뉴 디펜더 부분 변경 모델이 국내에 공식 출시됐다. 디자인의 변화는 크지 않고 기능의 변화도 급진적이지 않다. 연식 변경 수준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디펜더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번 시승차는 인제니움 I6 디젤 엔진을 탑재한 D300 트림, 차명이 말해주듯 300마력의 디젤 파워트레인이다.
디펜더는 차체 크기에 따라 90, 110, 130 세 가지 모델로 나뉜다. 이 숫자는 휠베이스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110과 130의 실제 휠베이스는 동일하다. 130이라는 숫자는 1세대 디펜더가 130인치 휠베이스 모델을 운영하던 시절의 레거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의 디펜더 130은 차체 후미를 연장해 3열 공간을 추가한 형태다.
트림 명칭도 직관적이다. D300은 300마력 디젤 엔진, P400은 400마력 가솔린 엔진을 뜻한다. 재규어 랜드로버 특유의 심플하면서도 명확한 네이밍 방식이다. 디젤 라인업은 D250, D300으로 구성되며, 모두 동일한 인제니움 3.0리터 I6 엔진 기반에 소프트웨어 세팅으로 출력을 구분한다. ZF 8단 자동변속기는 공통 적용된다. 이번 시승 모델인 D300은 최고 출력 300PS, 최대 토크 66.3kg·m의 성능 수치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부분 변경에서 외관이 달라진 부분은 헤드램프와 보닛 디테일이다. 헤드램프는 점등 시 독특한 시그니처 그래픽을 드러내며 안쪽 디테일이 보다 뚜렷해졌다. 다크 플러시 테일 램프는 후면에 일체감을 더하면서 시인성도 높였다.
보닛과 사이드 벤트에 새롭게 적용된 사각 패턴도 눈길을 끈다. 과거 1세대 디펜더에서 보닛 위에 물건을 올릴 때 사용하던 플라스틱 패널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이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안쪽이 뚫려 있어 엔진 열기를 배출하는 기능도 겸한다.
시승차는 완전 올블랙 사양이었다. 도로 위에서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전고를 한껏 높인 오프로드 특유의 실루엣, 칼로 잘라낸 듯한 리어 디자인은 1세대 디펜더의 유전자를 그대로 잇고 있으면서도 구식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 글로스 블랙 그릴 바와 랜드로버 로고가 삽입된 다크 오벌 배지, 보닛의 DEFENDER 레터링이 조화를 이루며 전면부 일체감을 극대화했다.
실내는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견고함, 그리고 고급스러움이다.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한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은 13.1인치로 커졌다. 피비 프로(PIVI Pro) 시스템을 통해 각종 기능을 직관적으로 조작할 수 있고, 오프로드 주행 설정까지 손끝에서 제어된다. 새롭게 추가된 운전자 주의 모니터는 안면 인식 카메라로 운전자 시선을 감지해 시청각 경고를 제공한다.
실내 곳곳에서 시선을 끄는 요소들이 있다. 도어 트레이에 노출된 볼트, 대시보드의 매그니슘 소재 프레임, 조수석 앞쪽에 굵게 새겨진 'DEFENDER' 레터링. 이 차가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안쪽에 하얀색으로 마감된 금속 소재를 직접 만져본다는 경험이 꽤 특별하게 다가온다.
2열 공간은 성인 세 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너비와 높이를 갖췄으며 바닥도 평평하게 마감됐다. 바닥재와 트렁크 안쪽은 물 세척이 가능한 소재로 처리됐다. 야외 활동 후 흙과 오물이 묻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암레스트 아래쪽에는 냉장 기능이 있는 보관함까지 갖춰져 있어, 이 차가 캠핑과 아웃도어를 위해 태어난 모델임을 다시금 실감한다. 트렁크에는 220V 콘센트도 마련돼 있다.
시승차는 디젤 엔진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걱정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디젤 모델이었고, 요즘 분위기에서 디젤은 어딘가 시대에 뒤처진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런데 디젤 엔진이 억울한 면이 있다. 현재의 디젤은 배출가스 저감 기술이 크게 발전해 유해 물질 배출량이 가솔린 엔진 수준에 근접해 있다. 문제가 됐던 건 오랫동안 운행된 구형 디젤이지, 지금 막 출고된 최신 디젤 엔진이 아니다.
뉴 디펜더에 장착된 인제니움 I6 디젤 엔진은 알루미늄 소재로 제작돼 최대한 경량화를 추구했으며, 피스톤 마찰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됐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결합돼 효율을 높이고 배출가스를 줄였다. 결론적으로, 이 엔진은 조용하다. 실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차 밖에서 들어도 아이들링 음이 크지 않다. 거칠게 들리는 디젤 특유의 소음은 찾아볼 수 없다. 직하면서도 부드럽게 회전을 올리는 사운드가 오히려 매력적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초기 반응이 예민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오프로드 지향의 근본을 가진 차량인 만큼 초반 반응은 의도적으로 부드럽게 세팅돼 있다. 하지만 속도가 어느 정도 붙으면 그다음부터는 달라진다. 최대 토크 66.3kg·m의 압도적인 힘이 이 거대한 덩치를 쾌적하게 밀어붙인다. 공차 중량이 상당한 차량이지만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힘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이 부드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아이들링 스탑 과정에서도 제 역할을 한다. 도심 정체 구간에서 엔진이 꺼지고 다시 살아나는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그 순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매끄럽다.
오프로드 지향 차량이지만, 많은 오너들이 실제로는 도심 도로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4코너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은 그 간극을 잘 메운다. 고속 주행에서는 차체를 차분하게 눌러 안정감을 주고, 저속 도심 주행에서는 노면 정보를 적절히 전달하면서도 편안한 승차감을 유지한다. 무조건 푹신하게 받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서스펜션이다.
시트 포지션이 높고 전방 시야가 탁 트여 있어 주변 차량을 살짝 내려다보게 된다. 차량의 크기를 실제보다 작게 느끼게 하는 운전 환경이다. 다만 좁은 도로에 진입하거나 유턴을 시도할 때는 이 차의 실제 덩치가 확실히 다가온다.
디펜더는 오프로드를 이야기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최대 도강 높이 900mm. 보닛 아래쪽을 투시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카메라 기능도 있는데, 실제로 차량 하부에 카메라가 달린 것은 아니다. 차량 앞쪽에서 촬영한 영상을 시간 차를 두고 투사하는 방식이다. 도강 시에는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물살을 강하게 가르면 물이 차량 내부로 유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포트, 에코, 스노우, 머드, 샌드, 암석, 도강 모드 등을 지원하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Terrain Response)이 적용돼 있고, 센서로 수심을 감지해 인포테인먼트 화면에 표시해 주는 도강 수심 감지 기능(Wade Sensing)도 제공된다. 차체는 D7x 알루미늄 모노코크 구조로, 기존 바디-온-프레임 방식보다 3배 더 견고하게 설계됐다. 최대 3,500kg의 견인력과 주행 중 최대 168kg의 루프 적재 하중도 갖췄다.
뉴 디펜더 110 D300은 화려하게 자신을 내세우는 차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여유에서 비롯된 조용한 자신감이 있다. 디젤 엔진에 대한 편견, 덩치에 대한 부담감, 오프로드 전용이라는 선입견. 막상 타보면 그 어느 것도 단점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도심 주행은 쾌적하고, 엔진은 부드러우며, 실내는 견고하면서도 고급스럽다.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이 차는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
글, 영상 / 원선웅 (글로벌오토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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